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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풍속

진세미(陳世美)는 왜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에 조강지처를 버릴 수 없었을까?

by 중은우시 2017. 7. 9.

글: 정정(丁丁)


진세미는 청나라때의 고전명저 <삼협오의>의 속서 <속칠협오의>의 허구인물이다. 이야기는 북송때의 것인데, 빈한한 가정 출신인 진세미는 처인 진향련(秦香蓮)은 서로 사랑했다. 진세미는 10년간 힘들게 공부하여,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에 송인종이 부마로 삼는다. 나중에 진향련은 오랫동안 남편 진세미로부터 소식이 없자, 아들을 데리고 상경하여 남편을 찾아간다. 그러나, 진세미는 그녀와 만나주지 않을 뿐아니라, 한기(韓祺)를 보내어 그녀를 한밤중에 추살하려 한다. 한기는 그러나 차마 손을 쓰지 못하고 스스로 자결하여 의리를 지킨다. 진향련은 오히려 흉수로 오인받아 감옥에 갇힌다. 진세미의 지시로 진향련은 변방으로 유배를 간다. 가는 도중에 호송관리가 그녀를 죽이려 하지만 다행히 전소(展昭)가 구해준다. 포증(包拯, 포청천)은 진세미의 죄를 처벌하고 싶으나 증거가 없었다. 진세미는 거짓으로 그녀를 부마부로 돌아오게 해서 두 아들을 시켜 휴서(休書, 이혼서)에 날인하도록 핍박한다. 전소는 진세미의 고향으로 가서 증인이 되어줄 기붕가 부부를 데려오는데, 부인은 도중에 살수에게 죽임을 당한다. 포증은 증인과 물증을 다 가지고, 부마 진세미의 죄를 처벌하려 한다. 공주와 태후는 급히 달려와서 막지만, 포증은 진세미를 용두찰(龍頭)로 보낸다. 진세미는 부심한(負心漢)이 대명사가 되고, 영원히 치욕의 기둥에 못박히게 된다. 


기실, 당금 현실에서, 진세미와 유사한 부심한이 수도 없이 많다. 특히 당금은 남녀평등의 시대여서, 여성 진세미도 그에 몾지 않게 많다. 그래서, 문학작품에서의 진세미는 만일 뒤에 조강지처 진향련을 박해한 이야기만 없다면 우리가 그다지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진세미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혹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장원급제한 후의 진세미는 사회적 지위나 견식이나 재산이나 인생에 대한 견해나 모두 조강지처인 진향련과는 천양지차가 되어 버렸다. 부부간에 공동의 언어도 없다. 진세미는 더 이상 예전의 시골산촌이나 농촌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현재의 많은 사람들 생각대로, 진세미와 진향련의 결혼은 기실 이때 끝날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비록 당시의 진향련이 남편 진세미가 장원급제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지만, 현실은 어쩔 수가 없다. 1970년대 중국에서 대학입시가 부활되었을 때, 대학입시가 운명을 바꾸어놓아 당시에 얼마나 많은 진세미를 만들어 냈던가. 그러나 최종적으로 이혼을 통하여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러나 왜 문학작품의 진세미는 장원급제한 후에 휴처(休妻, 이혼)의 방식으로 혼인관계를 해제하지 못햇을까? 북송은 남존여비의 사회이고, 남자들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혼인해제는 남자가 휴서 한 장만 쓰면 끝이다. 그리고 진세미는 휴처하고나서 다시 공주와 결혼하면 더 낫지 않았을까? 이후의 여러가지 골치거리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기실 현재 보면, 중국고대의 혼인에서 표면적으로 남성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혼인을 헤제하는데 남자가 휴서 한장만 쓰면 된다. 다만, 당시의 현실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과 달랐다. 남자가 휴서를 한장 쓰는 것도 조건이 필요하다.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봉건시대에 남자가 휴처하려면, 반드시 규정된 7가지 요건중 한 가지가 나타나야 했다. <대재예기.본명>의 기록에 따르면, "부인에게 만일 칠거(七去)가 있으면, 즉, 불순부모(不順父母)하면 버릴 수 있다. 무자(無子)면 버릴 수 있다. 음(淫)하면 버릴 수 있다. 투(妬)하면 버릴 수 있다. 유악질(有惡疾)하면 버릴 수 있다. 다언(多言)이면 버릴 수 있다. 절도(竊盜)하면 버릴 수 있다." 즉, 고대 남자들이 휴처하려면, 전제는 처가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혹은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혹은 혼인을 배신하고 음란하거나, 혹은 남편이 첩슬 취하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거나, 혹은 친척간에 시비를 불러일으키거나, 혹은 집안의 재산을 훔쳐야 한다. 그중 심각한 질병은 마풍병(麻風病, 한센병)을 가리키고 다른 병은 포함되지 않는다. 고대에 비록 "불효에 세 가지가 있고, 그중에 후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크다"는 말이 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서 휴처 당하는 것은 나이가 49살이 넘어야 한다. 49살이전에는 휴처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비록 위의 7개 요건중 하나에 해당하는 처라고 하더라도, 남자는 마음대로 휴처할 수 없다. 왜냐하면 휴처에는 또 다른 요건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아래의 세 가지 요건중 하나에 해당되면, 남자는 휴처할 수 없다. 즉, 처가 돌아갈 본가가 없어서 의탁할 곳이 없으면 휴처할 수 없다; 남편과 함께 시부모의 3년상을 지낸 경우에는 휴처할 수 없다; 결혼때는 남편집이 빈한했으나 부부가 같이 노력하여 나중에 부귀하게 된 경우에는 휴처할 수 없다.


여기까지 들었으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세미가 왜 장원급제한 후에 휴처할 수 없었는지. 문학작품의 소개에 따르면, 그의 조강지처인 진향련은 휴처할 수 있는 7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향련에게는 남편이 절대 휴처할 수 없는 한가지 요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진향련이 진세미에게 시집갈 때는 진세미의 집안이 가난했는데, 그들 부부가 같기 고생하면서 그리고, 진향련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진세미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결국 상경하여 과거를 치를 돈도 마련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해서 과거에 장원급제한 것이다. 그래서, 봉겅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남자가 휴처할 수 없다는 것은 고대에 부인들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남편이 공부를 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공명을 얻게 만드는 근본원인이었다. 왜냐하면 남편이 고귀해지면 부인도 같이 고귀해지는 것이다. 과거에 남편의 집이 얼마나 가난했더라도, 일단 남편이 성공하면, 처도 같이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은 자신이 성공한 후에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된다. 그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진향련에게는 상경하여 남편을 찾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만든 근본원인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의식에는 남편 진세미가 과거에 합격했던 아니든 그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다. 남편은 그녀를 버릴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남편을 고발할 수 있다.


그래서 고대의 과거는 남자가 일평생동안 공부하며 치게 되는데, 처는 계속 지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올해 합격못하더라도 내년에 합격하면 된다. 처는 계속 밀어줄 것이다. 한편으로 비록 현재는 가난하지만, 만일 일단 합격하기만 하면 즉시 운명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을 치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과거에 급제한 나다음에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발생하여 휴처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제도상 과거급제한 남편은 부인을 버릴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중국고대에 왜 남존여비의 사회인데도, 혼인은 현재보다 안정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이유이다.


그래서, 진세미가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에 휴처할 수 없었다. 처를 배신할 수 없었다. 남녀평등사회인 요즘에도 본받아야 할 점이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혼인은 갈수록 발안정해지기 때문이다. 주요 원인은 바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부부간의 배반이고, 다른 하나는 부부간의 지위가 돌연 거대하게 발생하여 남녀 진세미가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현대의 혼인관계중 부부간에는 신뢰감이 점점 줄어든다. 보기에 현재의 혼인을 조화롭게 하고 부부간에 서로 신뢰하게 하고, 가정의 안정을 원한다면, 고대 혼인해에 관한 일부 내용은 본받을 수 있을 것같다. 단지 과거에는 부부중 한 명에게만 요구했던 것이지만, 지금은 부부 모두에게 요구해야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이고, 중화문화의 전통을 체현하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