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화/중국의 풍속

"거세(去勢)"에 관하여

중은우시 2017. 4. 25. 16:28

글: 이자지(李子遲)


"세(勢)"라는 것은 사람 및 동물의 고환(睾丸, 불알)을 가리킨다. <진서.형법지>를 보면, "음탕한 자는 그 세(勢)를 벤다(割). "거세"라는 것은 고환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거세'는 처음에 수의(獸醫)의 전용용어였다. 동물 특히 집안에서 기르는 가축에 대하여 외과수술적인 방법으로 후손을 두지 못하게 하는데 쓰였다. 동물의 주요 생식기관을 제거했다. 기실 주로 수컷동물의 고환을 베어버림으로써 사정을 할 수 없게 하고 성교를 할 수 없게 했다. 그렇게 하면 빨리 커지고, 육질이 좋았다. 또한 성격도 온순해져서 집안에서 기르기 좋았다. 당연히 암컷동물에 대한 거세도 있었다. 난소적출수술이라고 한다. 중국민간에서는 "도화술(挑花術)"이라고 불렀다.(운남의 일부 소수민족지역에 이런 관습이 있다). 그오ㅔ에 수컷을 약물로 거세하기도 했다. 또한 고환의 무혈거세술도 있었다.


중국은 멀리 은상(殷商)시기에 이미 가축을 거세한 기록이 있다. 은허 갑골문에는 한 사람이 칼을 들고 수컷의 생식기관을 제거하는 것을 상징하는 글자가 있다. 가축에 대한 거세와 사람에 대한 거세(궁형)를 모두 의미하는 이중적인 뜻이 있다. 갑골문에는 또한 모저(牡猪)형의 글자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 글자가 생식기와 그 몸이 이미 분리되었다는 뜻이라고 본다. <주역>의 괘효중에는 "분시지아(豮豕之牙), 길(吉)"이라는 것이 있다; <주례>에는 "공특(攻特)"과 "공구(攻駒)"가 있다. "분(豮)"은 거세한 수퇘지를 가리키고, "특"은 숫소, 숫말을 가리키며, "구"는 미성년의 숫말을 가리킨다. "공(攻)"은 거세했다는 말이다. 나중에 가축의 거세는 돼지, 말, 소에서 각종 가축과 가금으로까지 확장된다. 선마(騸馬), 선우(騸牛), 건우(犍牛), 거개(巨犗), 환우(宦牛), 대계(鐓鷄), 엄계(閹鷄), 엄저(閹猪), 공구(攻狗), 정묘(淨猫)등 거세에 대한 전용명칭이 나타난다. 기술적으로도 적지 않은 진보가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소독조치의 강화, 지혈방법의 개선, 그리고 국부마취로 가축과 가금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등 거세방법이 더욱 완비되고 있다.


후대에 이르러, 거세는 인류에게도 행해진다. 남자를 거세할 때는, 음경, 음낭, 고환등 모든 외부생식기를 제거해 버린다(단순히 고환, 음낭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음경까지 제거한다), 이것도 거세라 칭하게 된다. 이들은 혹은 궁중에 들여보내어 일을 하게 하여 환관, 태감이 된다(엄인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전문적으로 황제, 후비, 황자, 공주들을 모신다. 혹은 '궁형'을 실시하는데(부형(腐刑) 혹은 음형(陰刑)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고대에 남자들에가 가장 가혹한 형벌의 하나였다. 참수하는 사형(大辟)에 바로 다음가는 형벌이다. 후대를 두지 못하게 하고 성생활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음양인으로 되어 살아있어도 죽은 것만 못하게 되어 아주 고통스럽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때의 사마천(司馬遷), 이연년(李延年), 장하(張賀)등의 명인이 모두 궁형의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날 소수인의 트랜스젠더수술도 있다. 다만 궁형은 너무나 참혹하여, 후세에 정차 사라지게 된다. 입궁하여 태감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더 이상 거세수술을 시행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소수의 여인들도 거세수술을 받아서, 내생식기 난소, 자궁등을 적출당한다.


당나라때의 고적(古籍)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안록산이 "저아(猪兒)"라는 사람을 거세한 바 있다. 피가 몇 되나 흐르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다행히 즉시 초목회(草木灰)를 발라서 지혈시킬 수 있었다. 나중에 안록산도 저아에 의하여 절복(切腹)당해 죽는다. "처음에 저아는 거란부락에서 나왔고, 십여세에 안록산을 모신다. 아주 총명하고 영리했다. 안록산은 칼날을 들어 그를 거세했고, 피가 몇 되나 흘러 죽을뻔 했다. 안록산은 회화(灰火)를 붙여서 하루만에 소생한다. 엄인이므로 안록산은 그를 아주 총애했고, 가장 믿고 썼다. 안록산이 장대해서(몸무게가 330근이나 나갔다), 매번 옷과 허리띠를 입을 때면 서너명이 도와야 했다. 두 명이 그의 아랫배를 들어주어야 했는데, 저아가 머리로 받치고, 바지끈을 묶고 허리띠를 매었다. 현종은 안록산을 총애하여, 화청궁에서 목욕을 하도록 허가했다. 그리고 저아등에게 옷을 벗는 것을 도와주도록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저아에 의하여 배가 갈라져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