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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삼영전여포(三英戰呂布)"를 분석한다.

by 중은우시 2017. 6. 30.

글: 혜독고전(慧讀古典)





<삼국연의>에 나오는 유비, 관우와 장비의 "삼영전여포"이야기는 가장 재미있는 장면중 하나이다. 영웅인물의 용맹한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다.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 이 멋진 전투장면에 깊은 인상을 가졌을 것이다.


이 놀랍고 살벌한 전투는 역사에서 당연히 없었다. 심지어 유비, 관우와 장비의 3사살미 동탁을 토벌하는 전투에 참가하였는지도 의심이 갈 정도이다. <삼국연의>에서는 유비가 공손찬을 따라 동탁을 토벌하는 십팔로제후를 따라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지.무제기>에는 동탁토벌에 참가한 제후는 십사로이고, 공손찬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선주전>을 찾아보면, 유비가 공손찬에 의탁할 때, 공손찬은 동탁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기주자사 한복(韓馥)의 근거지를 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기회를 틈타서 남의 땅을 차지하려 한 것이다. 이를 보면, 유비,관우,장비 세 사람이 동탁토벌전에 참가하였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관우와 장비의 전기에도 이 일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여포전>에도 여포가 호뢰관에서 천하의 제후를 맞아 싸운 일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를 보면, <삼국연의>의 이 멋진 장면은 순수하게 소설적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당연히 <삼국연의>에서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원나라때 사람인 정덕휘(鄭德輝)의 잡극 <호뢰관삼영전여포>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잡극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매우 많고, 장면은 아주 요란하다. 원나라때의 잡극중에서는 드물게 보는 대장면이다.


이 잡극에서, 비록 십팔로제후의 기세가 등등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이 많지만, 여포의 눈에는 아예 오합지졸이었다. 여포가 등장하자마자 먼저 좌초인마를 물리치고, 다시 우초명장을 격퇴시킨 다음 승기를 틈타 돌진하여 십팔로제후들은 혼란에 빠진다. 여포는 8명의 건장을 이끌고 직접 돌격해 들어오니 원소가 군대를 이끌고 저항하지만 대패한다. 할 수 없이 다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여포는 대승을 거두고 돌아간다. 첫단계의 전투는 이렇게 끝난다.


잡극에서는 이어서 손견이 등장한다. <삼국연의>의 그 영웅기질이 충만한 손견과는 달리 이곳의 손견은 못난 인물이다. 등장하자마자 헛소리를 가득 내뱉는다. 이어서 등장하는 인물은 조조인데, 제법 영웅기질이 있다. 등장하면서 시를 하나 읊는데 호기가 대단하다: "작작흉중지유여(綽綽胸中智有餘), 등한숙간오거서(等閑熟看五車書), 빙시열정중인일(憑時列鼎重茵日), 방표당당대장부(方表堂堂大丈夫)" 그는 확실히 정도의 인물이다. 이때 손견은 조조를 자신의 군장으로 부른 다음에 그에게 강호에서 아직 유명하지 않은 영웅들을 모아서 싸우는데 돕게 해달라고 청한다.


조조는 명을 받고, 평원현으로 가서, 유비,관우,장비 3사람을 데려와서 호뢰관의 전투에 참전케 한다. 유비와 관우는 여포를 이기지 못할 것을 겁내서 가지 않으려 한다. 단지 장비만이 가자고 우긴다. 장비는 이 잡극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확실히 작자는 장비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쓴 것같다.


조조는 소개서를 한 장 써주면서 그들 3명에게 호뢰관으로 가서 손견을 만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손견은 유비가 그저 현령에 불과하고, 관우는 마궁수(馬弓手), 장비는 단지 보궁수(步弓手)에 불과하여 관직이 너무 낮은 것을 보고는 멸시하여 그들이 군영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그리고 유비에게 벌로 군영 앞에 서 있도록 시킨다. 장비가 대노하여 화를 벌컥내려고 한다.


바로 이때, 여포가 다시 병력을 이끌고 와서 싸움을 건다. 손견은 놀라서 어쩔 줄 모른다. 장비는 그 틈을 타서 문을 열고 들어가 손견을 "납창두(蠟槍頭)"라고 욕한다. 손견은 대노하여 장비를 참하려 하나 조조가 적시에 도착하여 장비를 구해준다.


손견은 친히 병력을 이끌고 여포와 교전을 벌이지만 대패하고 밀림으로 도망친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금선탈각의 계책을 써서 옷과 갑옷과 투구를 고목에 걸어두고 도망친다. 여포는 의복갑옷과 투구를 가지고 동탁에게 가서 승전보고를 하려고 한다. 마침 이때 장비를 만나서 의복갑옷과 투구를 빼앗기고 만다.


손견은 대패하여 군영으로 돌아와서는 거짓으로 자신이 여포를 이겼다고 보고한다. 바로 이 때, 장비가 돌아온다. 손견의 의복갑옷과 투구를 바치면서 손견을 한바탕 모욕준다. 손견은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장비를 죽이려 하지만, 조조가 말린다. 이때 여포가 다시 와서 싸움을 건다. 아무도 나서서 싸우려 하지 않자, 장비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출전한다.


여포는 이미 수하 8명의 건장을 배치해 두고 있었다. 4로로 나누어 매목을 하고, 자신은 친히 대군을 이끌고 유비, 관우와 장비 3 명을 생포하고자 했다. 진앞으로 나서서 장비와 싸우는데 승부를 가르지 못했다. 유비가 말을 타고 전투에 참전해도 여전히 평수였다. 마지막에 관우가 참전하여 그들 3명이 합공하니 비로소 여포가 견디지 못하고 호뢰관으로 도망쳐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삼국연의> 이전에 민간의 희극가가 창작한 "삼영전여포"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헛점을 확실히 많다. 손견을 못난 인물로 그려서 역사적 사실과 큰 괴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든지. 역사상의 손견은 정정당당한 영웅이고, 십팔로제후중에서 동탁이 유일하게 꺼려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잡극에서는 손견이 여러번 장비를 죽이려 하는데, 마치 애들 장난같아 보인다. 유비, 관우와 장비가 합공으로 여포를 물리치는 장면은 당시에 단지 희극가가 3명의 영웅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창작해낸 것이다.


<삼국연의>에 이르러서는, 작자가 거친 부분을 정교하게 가다듬는다. 여러가지 가공과 수정을 거친다. 원래 이야기의 여러가지 헛점들을 제거하다보니 훨씬 합리적으로 된다.


사서의 기록으로 보면, 여포의 무예는 확실이 고강했다. <삼국지. 여포전>에는 그가 궁마(弓馬)에 익숙했고, 팔힘이 남달라서 '비장(飛將)'이라고 불리웠다고 적고 있다. <삼국연의>에서 묘사된 그 유명한 원문사극도 확실히 그런 사실이 있었다. 여포는 비록 용맹하지만, <삼국연의>에서 과장한 것처럼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삼국연의>에서의 여포의 이미지는 역사상의 진실한 인물과 비교하자면 대체로 비슷하기는 하나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점도 있다. 주로는 그의 용맹이 두드러지게 했다는 점이다. 원나라 잡극과 <삼국지평화>에서의 여포도 상당히 대단하기는 하지만 아직 장비의 적수는 아니었다.


다만 <삼국연의>에 이르면, 작자는 그의 용맹무적을 가지고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역사에서 증명할 수 없는 호뢰관 삼영전여포도 크게 다룬다. 한편으로 유비, 관우, 장비의 영웅기질을 드러내면서, 다른 한편으로 여포의 개세무쌍의 무예를 돋보이게 한다.


작자가 유비, 관우와 장비를 영웅으로 적은 것은 이해되지만, 왜 이처럼 여포를 돋보이게 그렸을까?


이것은 기실 작자의 뛰어난 점이다. <삼국연의>에서 여포는 개세무쌍의 무예를 지녔다. 그리고 영웅적인 용모를 지녔다. "인중여포, 마중적토"로 천하에 유명하고 모두가 안다. 다만 "삼성가노"라는 오직 이익을 쫓는 비열한 영혼을 지녔다! 극미(極美)의 외재(外在)와 극추(極醜)의 내함(內涵)을 가진 것이다. 양자는 선명하게 대비되어 독자들의 마음 속에 심미관을 자극하여, 여포라는 유일무이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