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하무신(天下無臣)
아주 오래된 옛날에 우리들이 "요(堯)임금"이라고 존경하여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산서(山西) 사람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방훈(放勛)"이라고 불렀는데, <서이아(小爾雅)>의 해석에 따르면, "방(放), 기야(棄也)", 훈(勛)은 <이아(爾雅)>의 해석에 따르면, "훈(勛), 공야(功也)". 이 이름은 결국 "공을 버린다"는 뜻이다. 아마도 요의 부친은 아주 성실한 사람이었던 것같다. 아들이 공을 탐하지 않는 겸손한 군자가 되기를 바란 듯하다. 이 요임금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다. 아직 출생하기도 전에 이미 보통사람과 다른 능력을 보여준다. 그는 모친의 뱃속에 14개월이나 있었던 것이다.(<사기.오제본기>). 이 만삭동이를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늦게 출생하면 할수록 능력이 뛰어나다. 나타(哪吒)는 모친의 뱃속에 3년이나 있다가 나왔는데 결국 신선이 되었다. 요는 비록 신선이 되지는 못했지만, 보통사람보다는 뛰어나서 어른이 된 후에 대왕(大王)이 된다. "제요(帝堯)"로 불린다.
왜 요는 대왕이 될 수 있었을끼? 먼저 요는 인품이 훌륭했다. 그는 성격이 아주 온화했으며, 사람들을 공경했다. 요즘 말로 하면 노인을 존경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동년에 잘 대해주었다. 다음으로 요는 기품이 높았다. 그는 우우한 풍모를 지녔다. 그는 뒷모습을 보면 앞모습도 보고싶어지는 그런 인물이다. 그리고 앞모습을 보면 바로 평생을 맡기고 싶어지는 그런 우수한 남자이다. 마지막으로 요는 능력이 뛰어났다. 일을 만나면 깔끔하게 처리했다. 한걸음을 걸을 때 일곱걸음을 생각한다. 이것은 천성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질투해도 소용이 없다. 당연히 요는 바로 대왕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는 먼저 가족들 틈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집안내의 관계를 평화롭게 처리하여 인근 동네에서 모범으로 칭찬이 자자했다. 그 후에, 요는 부락에서 사람들을 잘 골라서 써서 모든 관리자들이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요의 명성은 이미 드높았다. 다른 부락에서도 속속 그에게 우두머리를 맡아 달라고 한다.그리하여 각 부락의 백성들은 지도자를 존경하고, 지도자들은 백성을 아끼고 하층민을 보살폈다. 요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이념하에 화위귀(和爲貴)하여 분쟁이 사라진다. 아주 유가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어쩔 수 없다. <상서>는 유가가 편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많은 유가의 것들을 집어넣었다.) 이런 뛰어난 대왕의 아래에는 당연히 뛰어난 대신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중에 양대가족, 사대명신이 있다. 하나의 가족은 바로 희씨(羲氏)일족이고, 이 가족에는 두 명의 인물이 있다. 희중(羲仲)과 희숙(羲叔). 한명은 동방으로 가서 춘분(春分)을 정하고 다른 한 명은 남방으로 가서 하지(夏至)를 정한다. 또 다른 가족은 화씨(和氏)일족이다. 화중(和仲)과 화숙(和叔)이 있다. 그들 둘도 각각 서방과 북방으로 가서 추분과 동지를 정한다. 이때부터 백성들은 춘하추동의 계절시간을 알게 되고, 지도자들은 지방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를 지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사대명신의 성과에 대하여 요는 그래도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네 사람에게 말한다: "1년은 365일이다. 너희가 이 4개 절기를 정한 것은 아직도 부족하다. 윤월(閏月)을 추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백관이 비로소 놀고 먹지 않을 수 있고, 사업이 흥하게 될 것이다." 대왕은 역시 대왕이다. 그가 모르는 일은 없다.
<사기.오제본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요임금은 16세에 대왕이 된다. 고고학의 발견에 따르면, 원시사회후기(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전)의 평균수명은 32.1세이다. (송조린 <중국원시사회사> 문물출판사1983년판). 그렇다면, 지금으로붜 4500년전의 요가 16세에 대왕에 오른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요가 대왕으로 있었던 기간은 아주 길다. 60년이 지나서야 요는 후계자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문제를 대신들에게 물어본다. 신하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대왕의 아들 단주(丹朱)가 사람됨이 개통하(開通)하고, 일처리가 명달(明達)하니 후계자로 괜찮습니다." 요는 고개를 흔든다. "안된다. 나의 이 아들은 선풍점화(煽風點火)하는 걸 좋아하고 심성이 흉한(凶狠)하여, 후계자가 될 수 없다."
이런. 이렇게 뛰어난 대왕에게 어찌 이렇게 공포스러운 아들이 있단 말인가. 이전에 요는 "구족을 친하게 지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대 어찌 아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못했는가? 이것은 모순이다. 모순은 모순이고, 어쨌든 유가는 단주가 후계자가 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기는 하지만. 좋다. 나는 믿는다. 요를 둘러싼 문제를 계속 토론하도록 하자. 환두(驩兜)가 이렇게 말한다: "공공(共公)이 힘을 집중하여 큰 일을 하는 방면에서 아주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요는 다시 고개를 흔든다. "안된다. 공공은 화언교어(花言巧語)에 능하여, 나는 그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가장 나쁜 것은 그가 겉으로는 공경하면서 속으로는 천명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아, 원래 천명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 악행이었다. 이 표준에 대하여 '천공과 누가 더 높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라고 쓴 그는 분명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요가 계쏙 안된다고 하자, 대신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요임금은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보자 화제를 바꾼다: "여러분, 지금 홍수가 일어나서, 백성들이 슬퍼하고 있는데, 누가 이 홍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대신들은 모두 곤(鲧)을 추천했다. 요는 다시 고개를 흔든다: "그는 성격이 너무 나쁘다. 자신의 동족 조차도 해쳤다." 다시 안된다고 한다. 이건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인가. 대신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단적으로 항의한다.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곤에게 한번 해보도록 하는게 어떻습니까." 요는 그들의 기세가 거센 것을 보고는 고개를 더 이상 흔들지 못하고 바로 받아들인다. "좋다. 그럼 곤에게 해보게 시키자. 곤. 너는 잘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곤이 9년간이나 일을 하지만 홍수는 여전히 일어난다. 필자의 생각으로, 요는 이 9년동안 분명히 멸시하는 눈빛으로 그들 난감해하는 대신들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다시 70년간 재직한 기념으로 모인 자리에서 요는 다시 한번 후계자 문제를 꺼내놓는다. "여러 대신들. 나는 대왕으로 있는지 벌써 70년입니다. 더 이상 계속하고 싶지 앟으니, 여러분 들 중에서 한 사람을 후계자로 뽑아주십시오." 대신들은 10년전에 요가 까다롭게 굴던 일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도 나서지 않고 함께 말한다. "우리는 덕행이 부족합니다. 어찌 후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젠 요가 답담해진다. 너희들이 물려받지 않겠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해야한단 말인가. "그럼 민간에 후계자가 될만한 사람이 있는지 말해보십시오." 대신들은 기쁘게 말한다. "있습니다. 나이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가 있는데 괜찮습니다. 그는 우순(虞舜)이라고 합니다." 요가 말한다. "아, 나도 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사악(四岳), 나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달라." 사악이 대답한다. "그는 눈먼 봉사의 아들입니다. 그의 부친은 비교적 나쁜 사람입니다. 그의 모친은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의 동생도 아주 나쁩니다. 그러나 순은 계속 효행을 하여 그들을 좋은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요는 그 말을 듣고, "아, 내가 그를 시험해 보겠다." 어떻게 시험한단 말인가? 바로 순을 사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는 자신의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낸다. 그리고 순이 두 부인을 어떻게 잘 처리하는지를 본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나는 갑자기 요의 두 딸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어떤 사료에도 기록이 없다. 다만 이때 요의 나이는 이미 86세이다. 설사 50살에 딸을 낳았다고 하더라도, 두 딸의 나이는 이미 서른 몇살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시집을 가지 않았다고? 그건 불합리하다. 그렇다면 남편이 죽었거나, 무슨 문제가 있어서 시집을 못간 것일 것이다. 요가 이런 일로 골치아플 때 마침 순이 나타났으니 아마도 요는 기뻐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한꺼번에 두 딸을 모두 시집보내고 살펴봤을 것이다. 3년이 지났다. 요는 순에 대하여 아주 만족한다. 시험기간이 끝났고, 대왕의 자리를 순에게 넘겨준다. 은퇴한 후 28년이 지나서 요는 죽는다. 대신들은 부친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3년동안 음악도 듣지 않았다. 내가 한번 계산을 해봤다. 요는 16살에 대왕이 되고 73년간 대왕으로 있었으며 28년간 은퇴하여 지냈다. 그는 117년이나 산 것이다. 어머니의 뱃속이 좋긴 좋은가보다 오래 있다가 나오면 능력이 뛰어날 뿐아니라, 수명도 길어지나보다. 원래 요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원만하게 끝이 난다.
그러나 중국의 옜날 책은 아주 많다. 나는 요에 관한 정보를 검색할 때 일부 들어맞지 않는 기록을 찾아냈다. <한비자. 설의>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순이 요를 핍박했다(舜逼堯)". 즉 요는 자신의 아들 단주가 후계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순이 핍빅하여 어쩔 수 없이 대왕 자리를 순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더욱 기이한 내용이 있다: "석요덕쇠(昔堯德衰), 위순소수야(爲舜所囚也)". 요임금은 나중에 나쁜 대왕이 되었고, 순에 의하여 왕위를 빼앗긴 다음에 감옥에 갇혔다는 말이다.
이런, 도대체 어느 말을 믿어야 할까?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 > 역사인물 (선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비자(韓非子)의 죽음(1): '흑무기(黑武器)'는 누구를 위하여 만들었는가? (0) | 2018.06.07 |
---|---|
제환공(齊桓公)은 왜 굶어죽은 후 67일간이나 시신이 방치되었을까? (0) | 2018.01.14 |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삼황(三皇)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0) | 2016.08.14 |
인상여(藺相如)는 왜 진왕(秦王)을 겁내지 않았을까? (0) | 2016.07.17 |
이윤(伊尹): 중국역사상 최초의 제왕의 스승 (0) | 2015.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