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비(燕飛)
오늘 먼저 여러분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진시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진시황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폭군이라고 욕하고 어떤 사람은 천고일제라고 칭송합니다. 그를 욕하든 그를 칭송하든 한가지는 모두 인정합니다. 즉 그근 아주 강력한 정치가라는 것입니다. 육국 가운데 누구든지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가 먼저 그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시경>등 선진(先秦, 진나라이전)의 서적은 그가 없애고 싶으면 없애버렸습니다. 전혀 거리낌없이. 전혀 경외심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처럼 자부심 강하고, 강경하고, 제멋대로인 그가 한 사람의 글을 읽고 감탄합니다. 그는 좌우에 이렇게 말합니다: "과인이 이 사람과 만나서 같이 놀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여기에서 진시황이 그 사람을 아주 앙모하고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는. 그럼 그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한비자 입니다.
그때 누군가 진시황에게 말합니다. 글을 쓴 사람은 옛날 사람이 아니고, 바로 한비자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한(韓)나라에 잘 살고 있습니다. 진시황은 그 말을 듣고 병력을 동원하여 한나라를 치려고 합니다. 한나라는 진나라가 공격해 오는 것이 겁나서, 한비자를 그에게 보냅니다.
한나라가 한비자를 보낼 때, 진시황은 친히 나가서 마중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아주 즐겁게 얘기를 나눕니다. 그러나 그 뒤의 진행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진시황은 한비자를 중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비자를 감옥에 넣습니다. 얼마후 한비자는 감옥에서 죽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마천이 이미 써놓지 않았습니까. 한비자의 동문인 이사(李斯)가 당시 진나라의 승상인데, 질투심때문에 진시황 몰래 그를 독살한 것이 아니냐고.
사마천은 <사기>에 확실히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헛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이사가 한비자를 질투했다면, 당초에 진시황에게 말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전하가 높이 평가하는 그 사람이 바로 한비자라고. 그리고 온갖 수단을 짜내서 한비자를 진나라로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진시황은 강력한 정치인입니다. 이사가 감히 그의 앞에서 그가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버릴 수 있겠습니까.
셋째, 한비자가 진나라로 온 후에, 진시황은 그를 전혀 중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사가 뭘 질투한단 말입니까.
이해되지 않는 점은 사마천의 기록에 따를 때, 진시황은 한비자를 감옥에 넣은 후, 금방 후회했습니다. 석방하라고 명을 내렸는데, 한비자는 이미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시황은 이 일을 추궁하지 않고 흐지부지 끝냅니다. 기이하지 않습니까. 진시황인데. 한번은 누군가 그의 말을 바깥에 누설했다는 의심만으로, 곁에 있던 사람을 모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비자가 석연찮게 죽었는데도 그는 그냥 놔두었습니다. 확실히 한비자의 죽음에는 다른 원인이 있어 보입니다. 그럼 진상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한비자는 도대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진시황은 왜 전쟁까지 벌여서라도 그를 가지려 했을까요?
한 사람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비자의 신세내력에 대하여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부귀하지만 불행했고, 비참했지만 뜻이 굳었다. 한비자는 한왕(韓王)이 아들입니다. 한나라의 공자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귀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이라면, 한비자가 출생할 때, 한나라는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국력이 쇠약했다는 것입니다. 국내의 군신은 법가 신불해(申不害)의 "이술치국(以術治國)"사상을 신봉하여 매일 권모술수에 힘썼고, 조정은 오연장기(烏煙瘴氣)로 가득했습니다. 비참한 것은 한비자는 한나라의 공자로서 자신의 국가에 거대한 위기가 닥친 것을 보면서도 마음은 있지만 힘이 없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그가 쓴 글 중에 <고분(孤憤)>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런 배경하에 쓴 것입니다.
뜻이 굳었다는 것을 얘기하자면, 한비자는 왕실출신이고 인물도 잘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말을 더듬었습니다. 천성적인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비감을 가졌고,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세상사람으로부터도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력으로 그것을 이겨냈습니다. 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죽어라 자신의 문장표현능력을 단련했습니다. 제자백가중에서 한비자는 이야기즐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비자>라는 책에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많은 우언고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상모순(自相矛盾)", "수주대토(守株待兎)", "남우충수(濫竽充數)"등등이 있습니다. 그의 글은 사리를 잘 추리하고, 요점을 잘 파악해서 사람들의 지혜를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문학적인 가치도 매우 높습니다.
말더듬는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비자는 결국 제자백가의 일원이 되었으니 확실히 뜻이 굳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법가의 집대성자일 뿐아니라, 선진시기 '제자백가쟁명'이 마침표를 찍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제자백가의 사상기초 위에서, 자신의 사상체계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제자의 사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인 처리의견을 내놓습니다. 예를 들어, 유가에 대하여, 한비자의 처리의견은 직접 제거하는 것입니다. <오두(吳蠹)>에서 그는 유가를 다섯가지 해충중 하나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강대해지려면 반드시 유가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왜 유가를 해충으로 취급했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신흥왕조는 반드시 그에 맞는 이데올로기를 가져야 하는데, 유가는 주례로 되돌아가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례는 주나라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새로운 왕조이므로, 반드시 새로운 것으로 정해야 하고, 그것은 바로 법가의 사상입니다.
둘째, 유가와 법가는 입장이 완전 반대됩니다. 예를 들어, 법가는 군권(君權)의 지고무상을 주장합니다. "군왕이 모자라더라도 신하가 침범해서는 안된다(君雖不肖, 臣不敢侵也)" 군왕이 멍청한 바보라 하더라고, 혼군, 폭군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도를 따르고 군왕을 따르지 않는다(從道不從君)는 주장을 하여 맹목적으로 군왕에 복종할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유가는 심지어 탕무혁명을 인정하여, 군왕이 나쁘면, 민중은 반란을 일으켜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한비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유가는 글로서 법을 어지럽힌다(以文亂法). 즉 유가는 글과 사상으로 법령을 교란시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법령이라는 것은 현재의 법률이 아닙니다. 군왕의 법령입니다. 그것이 나타내는 것은 군왕의 사상과 의지입니다. 한비자가 보기에, 만일 모두 유가의 말을 들으면, 누가 군왕의 말을 듣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두>에서 유생, 공상업자, 유협드 5종의 사람을 5가지 해충에 비유하고, 군주로서 이 다섯 가지 좀에 해당하는 백성을 제거하지 않으면 국가는 위험하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전혀 거리낌없이 지식인계층을 모조리 제거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은 한비자가 역사상 첫번째 인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제거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은 유생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은사(隱士)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이숙제, 후세의 도연명 같은 자들입니다. 한비자가 미친 것일까요? 은사는 통치자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들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며 심산에 은거하고 있는데, 왜 그들까지 제거해야한다고 말한 것일까요. 그의 논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심산에 숨어 있다는 것은 네가 군왕을 위하여 쓰이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너희는 군왕에게 쓸모없는 자들이다. 쓸모가 없다면 남겨둬서 뭘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한비자는 주장합니다: 세부족이화(勢不足以化), 즉제지(則除之)(<외제설우상>)
은사를 대함에 있어서, 만일 권세로도 내 사람을 만들 수 업사면, 제거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비자는 한마음으로 군왕의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거의 집착 수준입니다. 전체 천하를 그가 짠 물샐틈없는 큰 그물망 안에 가두어 놓고자 하며, 모든 사람은 반드시 군왕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만일 듣지 않으면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도 이렇게 미친듯이 죽이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도 반대에 부닥칠 것을 걱정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그의 살인주장을 따르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 주장을 추진하기 위하여, 그는 중국문화사상 최대의 사건, 원안(寃案)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상 유명한 공자주소정묘안(孔子誅少正卯案)입니다.
공자가 소정묘를 죽였다는 이 사건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한비자의 스승인 순자(荀子)의 글에서 입니다. 공자가 노(魯)나라에서 사구(司寇)로 있을 때, 부임한지 7일만에, 언론으로 치죄하여 소정묘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직접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량의 사료를 분석한 결과,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이렇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순자의 이 글은 한비자가 자신의 스승의 명의를 빌어 위조한 것입니다
그는 스승의 글을 빌어 공자를 모함했습니다. 즉 그가 소정묘를 죽였다고 한 것입니다. 기실 이는 자신의 살인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보라. 인정을 주장하는 공자조차도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은 죽이지 않았느냐. 그러면 내가 해충같은 유생을 제거해야한다고 얘기하는데 왜 불가능하냐.
그리고, 이 사건은 내가 말한 것이 아니다. 같은 유가인 순자가 말한 것이다. 한비자의 이 유가로서 유가를 치는 방법은 많은 유생들로 하여금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반박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일부 멍청한 유생은 심지어 공자가 소정묘를 죽였다는 주장에 동의했습니다. 과연 한비자는 권모술수의 대가입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그가 이렇게 한 것이 사실은 자기 발등을 내려찍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한비자의 이 수법은 일거에 유가의 두 거목을 함정에 빠트렸습니다. 그중의 한 명은 그의 스승입니다. 그래서 법가는 정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합니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2천여년동안, 법가사상의 영향은 실로 심원합니다. 진정으로 중국을 이해하려면 중국인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법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비자는 법가의 집대성자입니다. 그를 이해하면 법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비자의 핵심사상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제자백가 쟁명의 결과 군왕들은 왜 속속 법가의 사상을 채택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법가에 대한 아름다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즉 법가의 법을 의법치국(依法治國)의 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법가는 바로 의법치국 법으로 나라를 통치하여야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법가는 기실 법가로 불러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권가(權家)로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권력'이야말로 법가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법가의 모든 사상은 모조리 "권력'을 위하여 봉사합니다. 무슨 권력일까요. 바로 군주의 권력입니다.
한비자의 사상은 기실 군왕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신하를 부리며, 백성을 통치하느냐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법가의 사상은 단지 군왕 1사람을 위하여 봉사합니다. 이것이 법가와 유,도,묵 3가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입니다. 유도묵의 3가사상은 전체 천하를 위한 것입니다. 군왕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단지 법가의 입장만은 "모든 것은 군왕을 위하여"입니다. 한번도 백성을 위하여 말한 바 없습니다. 반대로, 가득한 것은 모조리 어떻게 백성을 통제하고, 어떻게 백성을 약화시키느냐는 아이디어들입니다.
상앙, 한비자가 이런 사상을 가진 것은 기실 아주 정상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바로 군왕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군왕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무슨 문제를 생각할까요? 바로 군왕이 어떻게 권력을 사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특히 한비자는 선진의 제자백가중에서 권력에 대하 연구가 가장 철두철미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인성을 분석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현량(賢良)한 사람은 적고, 사악(邪惡)한 사람은 많다. 그래서 권세가 악인의 수중에 들어갈 확률이 아주 높다. 그런데, 사악한 사람은 권력을 일단 손에 넣으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처럼 마을로 날아와서 사람을 잡아먹는다. 여기에서 보자면, 한비자의 권력에 대한 연구는 이미 가장 심층의 핵심에까지 이른 것같습니다. 그는 권력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권력이 조주위학(助紂爲虐)할 수 있어, 인성중의 악이 제악받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천하의 큰 근심거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서방체서처럼, 권력을 제약할 수 있는 제도를 강구했을까요? 아쉽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비자는 비록 서방보다 일찌기 권력의 죄악을 깨달았고, 권력은 제약받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지만, 그의 방법은 권력집중을 고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권력의 위해성이 아주 크지만, 유일한 방법은 바로 권력집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을 군왕 한 사람의 손에 집중시키면 권력남용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거비다. 한비자는 그렇게 총명한데 생각지 못했을까요. 권력의 위해성이 크다는 것을 안다면, 권력을 군왕 한 사람의 손에 모아놓았을 때, 누가 군왕을 제약합니까. 군왕이 일단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게 되면, 위해성은 더욱 커지지 않을까요. 나중에 역사는 무수히 증명합니다. 중국역대왕조에 나타나는 문제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한비자는 권력운행방면에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놓는데, 그것은 확실히 유가보다 더욱 깊이있고, 실용적입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유가는 현인정치를 주장하고,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군왕이 현인, 성인이기를 바랍니다.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상은 당연히 좋은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주장은 전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유가는 한번도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를 고려해보지 않았습니다. 유가의 많은 주장은 서로 모순됩니다. 예를 들어,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 현인정치를 해야 한다면, 군왕의 후계자도 당연히 현명한 인물로 뽑아야겠지요. 군왕의 아들 중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주례를 주장합니다. 주례에 따르면 당연히 장남이 승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장남이 좋은 사람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비자는 유가의 현인정치는 전혀 믿을게 못된다고 하였습니다. 요,순,우같은 성군은 천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하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은 그저 범부속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두 성인이 태어나기만을 바라야 할까요. 한비자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만일 국가를 통치하는 방법이 있다면 비록 범부속자라 하더라도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비자는 말합니다. 군왕으로서, 3가지에 의지하기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고. 그것은 바로 전설상의 법가의 3가지 보배인: 법(法), 술(術), 세(勢)입니다. 그럼 법술세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왜 한비자는 결국 자신이 든 돌로 자신의 발등을 찍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는 도대체 어떻게 죽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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