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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풍속

조공명(趙公明): 중국의 재신(財神)

by 중은우시 2014. 1. 29.

글: 유계흥(劉繼興) 

 

 

 

<모택동선집. 중국사회각계급의 분석>이라는 글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런 사람들의 발재관(發財觀)은 아주 중하다. 조공원수(趙公元帥)를 가장 부지런히 모신다." 주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조공원수는 중국민간전설의 재신으로 조공명이라 한다." <노신전집>에도 조공명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민간에는 조공명을 제외하고 또 다른 3명의 역사인물을 재신으로 모신다. 하나는 상주왕(商紂王)의 숙부인 비간(比干)이다. 그는 충성심이 강하고 강직한 인물이다. 주왕의 포학황음에 반대했다가 주왕에 의하여 심장이 꺼애어진다. 유명한 "비간부심(比干剖心)"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민간전설에서는 그에게는 '사심(私心)'이 없다고 하여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은 범려(范蠡)이다. 그는 원래 춘추시기 월왕 구천의 모신이다. '미인계'를 써서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를 재건하여 패업을 이루도록 도왔다. 다만 그는 월왕이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향락을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이름을 고치고 사해를 다니며 장사를 하여 나중에는 도읍(陶邑, 지금의 산동성 정도현)에 정착한다. 사람들이 도주공(陶朱公)으로 불렀고, 그는 장사를 통해서 큰 돈을 모았으나, 모조리 나눠줘 버린다. 셋은 관우이다. 원래 삼국시대 촉나라의 대장이다. 명청시기, 그는 충의천추(忠義千秋), 위력무비(威力無比)의 "복마대제(伏魔大帝)",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취급되었다. 근대의 상인들은 위의 4명을 각각 "문재신(文財臣, 비간, 범려)"과 "무재신(武財神, 조공명, 관우)"으로 불렀다.

 

위의 네 사람을 제외하고, 민간에서 모시는 재신에는 재백성군(財帛星君)이 있다. "증복재신(增福財神)"이라고도 부른다. 그를 그릴 때는 자주 "복(福)", "록(祿)", "수(壽)"의 삼성(三星)과 희신(喜神)을 함께 나란히 놓는다. 이렇게 하여 복,록,수,재,희라고 합칭한다. 재백성군의 얼굴은 하였고, 머리카락을 길다. 손에는 보분(寶盆)을 하나 들고 있는데, "초재진보(招財進寶)"라는 네 글자는 여기서 나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설날이면 반드시 이 그림을 거실에 걸우두고 재운,복운을 기원한다.

 

그리고 지역색채가 농후한 재신도 있다. 예를 들어 옛날 양주(揚州) 한구대왕묘(邗溝大王廟)에는 오왕(吳王) 부차(夫差)와 한나라때의 오왕(吳王) 유비(劉濞)가 모셔져 있다. 부차는 한구를 판 사람이고, 유비는 "동해의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고, 동산의 구리로 돈을 주죠했다"는 사람이다. 양주의 역사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재신으로 모시는 것이다. 오현재신(五顯財神) 신앙은 강서 덕흥 무원일대에서 유행한다. 형제 5명이 봉호(封號)의 첫글자를 모두 "현(顯)"으로 하여, '오현재신'이라고 부른다. 생전에 겁부제빈(劫富濟貧)했고, 사후에도 권선징악하며 가난한 백성을 도왔다. 북경의 안정문밖에도 오현재신묘가 있다.

 

여러 재신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조공원수 조공명이다. 민간에서 모시는 조공명의 신상을 보면 모두 갑옷, 투구를 쓰고, 전포를 입고,채찍을 들고 있다. 얼굴은 검고, 수염은 짙다. 이미지가 아주 위맹하다. 주위에는 통상적으로 취보분(聚寶盆), 대원보(大元寶), 보주(寶珠),산호(珊瑚)류가 있다. 이를 통하여 재물운과 큰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사해(辭海)>에는 이런 말이 있다: "재신, 전해지기로 성은 조(趙)이고 이름은 공명(公明)이라 한다. 진(秦)나라때 종남산(終南山)에서 득도하여 도교에서는 그를 '정일현단원수(正一玄壇元帥)'로 모신다. 그래서 '흑호현단(黑虎玄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천둥과 벼락을 부를 수 있고, 전염병과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정의를 주재하고, 재물을 구하면 뜻대로 된다고 한다." <중국대백과전서.종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세속에서 제사지내는 재신은 조공명인데, 조공원수, 조현단이라고도 부른다. 전해지기로 종남산 사람이며, 진나라때 난을 피해서, 종남산에 은거했다. 수련을 통해서 득도를 하고, 천둥과 벼락을 부를 수 있었고, 전염병을 쫓고, 병을 치료하며 재난을 물리칠 수 있었다. 장사와 재물을 구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신상은 머리에 쇠로 된 관을 쓰고, 한 손에는 쇠로된 채찍을 들었으며, 한 손에는 교보(翹寶)를 들고 있다. 검은 얼굴에 짙은 수염, 몸은 검은 호랑이를 타고 있고, 완전무장한 상태이다....세속에서는 삼월 십오일을 재신이 탄생한 날이라고 하고, 제사지내면 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민간에서 제사지내는 것은 정월초 재신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거나 집안에 재신의 첩자를 붙인다. 혹은 점포에 재신으로 분장한 사람이 들어오도록 하기도 한다."

 

진(晋)나라이전에 조공명과 재신은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는 그저 천제(天帝)의 수하인 대장 한 명에 줄과했다. 명간(冥間)에서 일을 했다. 즉, 인명(人命)을 관장했다. 수,당시기에 이르러, 조공명의 권력은 커진다. 온신(瘟神)이 된다. 예를 들어, <열선전전>에서 그는 팔부귀신(八部鬼神)중 한 명이 되어, 설사병을 내려보내, 독을 뿌리고 화를 만들어, 만민을 폭살하고 인간세상에 해악을 끼친다 , 당,송 및 이전의 여러 책 예를 들어 간보의 <수신기>, <진고>, <태상동연신주경>등에는 모두 조공명을 오온(五瘟)중 하나로 묘사한다.

 

필자의 고증에 따르면, 원나라때 책으로 나오고, 명나라때 약간 추가된 <도장.수신기>와 <삼교수신대전>에서 처음으로 조공명을 재신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삼교수신대전>권3에 따르면, "조원수, 성은 조이고 이름은 공명이다. 종남산 사람이다. 진나라때 세상을 피해 산중으로 들어가서 수도에 정진한다. 나중에 도교신화에서 장릉이 선단을 수련하는데 수호신이 되고, 옥황상제가 정일현단원수의 직함을 수여하여, 상벌,소송,보병양재(保病禳財)를 관장하게 한다. 장사에서 재물을 구하면 이익을 얻게 해준다. 그래서 민단에서는 그를 재신으로 부른다. 그의 신상은 얼굴이 검고 수염이 짙다. 머리에는 철관을 쓰고 손에는 철편을 들었다. 몸은 흑호를 타고 있어, 흑호현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조공명이 재신이 된 초기에는 지명도가 높지 않았다. 그는 명나라때의 통속소설 <봉신연의>에서 대거 이름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 된다. <봉신연의>에서 조공명은 원래 아미산 나부동의 한 신선이다. 상주왕의 태사인 문중(聞仲)이 그의 명성을 듣고 그를 불러서 상나라를 도와 주나라를 막도록 한다. 조공명은 법력이 대단하여 강자아(姜子牙) 집단을 패배시킨다. 나중에 강자아의 사부인 원시천존(元始天尊)이 나서서 비로소 조공명을 없앨 수 있었다.

 

강자아가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봉신대에서 대거 여러 신을 봉하는데, 조공명에게도 신위를 하나 준다: 금룡여의정일현호현단진군(金龍如意正一玄虎玄壇眞君). 그의 직책은 부하인 4명의 정신(正神)을 거르려서 영상납복(迎祥納福), 추도포망(追逃捕亡)하는 것이다. 조공명의 직책은 '영상납복'이다. 즉 길상한 것을 받아들이고, 복을 부르는 것이다. 그의 부하는 '초보(招寶)", "납진(納珍)", "초재(招財)", "이시(利市)"이다(초보천존 소승, 납진천존 조보, 초재사자 진구공, 이시선관 요이익). 인간세상의 모든 재물을 관장한다. 조공명이 명실상부한 재신으로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조공명이 흉신(凶神)에서 재신(財神)으로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고대의 민족문화심리를 보여준다. 고대 중국인은 역대이래로 농업을 근본으로 삼았고, 상업은 말단이라 여긴다. 신을 만드는데도, 나쁜 행적이 있는 신으로 재신을 삼은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중국전통문화에서 "재(財)"와 "이(利)"를 얼마나 경시했는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봉건사회에서는 '상인은 모조리 간사하다(無商不奸)"는 생각이 있다. 상층사회에서는 상인의 지위를 하천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다보니 재신도 홀대를 받은 것이다. 명나라중기에 이르러, 자본주의의 맹아가 나타나고, 이익을 따지는 것이 더 이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재신의 지위도 크게 제고된다. 그리고, 상업 자체가 비교적 큰 모험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상인들은 신령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정신을 의탁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재신이 크게 모셔진 진정한 원인이다.

 

실로 조화농인(造化弄人)이다. 조공명이라는 큰 법력을 지닌 '온신'이 처음에는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없는 재신으로 되었다가 나중에는 사회경제의 발전을 거쳐 시대의 조류에 따라 만민이 떠받들고, 절을 하여 모시는 보좌에 앉게 되었다. 재신 조공명이 환영을 받을 뿐아니라, 그의 두 부하인 '초재'와 '진보'도 같이 떠받들어 진다. 선량하고 순박한 백성들은 온갖 방법을 써서 재신을 매수하고자 한다. 그에게 돈을 벌수 있는 좋은 운을 바란다. 많은 지방의 농가의 벽에는 이런 유머스러운 재신연화(財神年畵)를 볼 수 있다. 정교한 조공원수의 상을 인쇄하는데, 그가 탄 흑호의 아래에는 금원보가 가득하다. 배경에는 달러,유로, 엔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