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비)

현군 유비와 간신 조조는 누가 더 간사한가?

중은우시 2015. 2. 25. 22:31

글: 염호강(閻浩崗)

 

모종강(毛宗崗)은 <삼국>에 "삼절(三絶)"이 있다고 하면서, 조조는 "간절(奸絶)", 관우는 "의절(義絶)", 제갈량은 "지절(智絶)"이라고 했다. 그는 유비가 무슨 절인지 말하지 않았다. 다만 모두 유비는 조조와 대조하여, '인덕'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유비를 "인절(仁絶)"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다만, 과연 그러한가?

 

조위를 정통으로 보는 <삼국지>이든, 촉한을 정통으로 보는 <삼국연의>이건, 몇 가지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즉, 유비와 관우는 모두 일찌기 조조에 투항하거나 의탁한 바 있다는 것이다. 유비는 조조군에 격패당한 후, 그는 원소에 의탁하지 않고, 나중에 또 원소를 배반했다. 조조이건 원소이건 모두 유비에게 아주 잘 대해주었고, 신임했다. 유비가 조조에 의탁할 때 막 여포에게 격패당했을 때이고, 아주 낭패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그를 후대해주어 그를 예주목(豫州牧)에 앉힌다; 여포를 멸한 후, 조조는 다시 친히 유비를 좌장군으로 추천한다. "그에 대한 예를 더욱 중하게 했다. 나갈 때는 같은 가마를 타고, 앉을 때는 같은 자리에 앉았다." 다만 유비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조조의 장수 차주(車胄)를 죽이고 서주, 하비와 소패를 차지한다. 조조에게 패한 후에 원소에게 의탁했을 때, 원소도 마찬가지로 아주 잘 대해주었다. 그러나 일단다시 관우를 얻자, 즉시 "속으로 원소를 떠나고자 했다" 거짓으로 원소을 위하여 유표와 결맹을 맺겠다고 하고서 기회를 보아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원소는 그를 믿었고, 그를 여남으로 파견한다. 나중에 그는 서천으로 들어가 유장에게 의탁한다. 유장은 동족의 정의를 보아 그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는 다시 기회를 보아 유장을 없앤다. 친구에 대한 신의를 보자면 유비라는 자는 실로 조조보다 '간사'하고, 믿을 수 없는 자이다.

 

모종강은 조조가 간절이라고 했다. 이유는 바로 조조가 역사상의 간실들과 비교하여 일을 악독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약간의 조치는 그의 독특한 장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천하를 속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주문왕에 비유하여, 이는 마치 충(忠)인 것같다. 원술이 함부로 황제를 칭한 것을 비판, 성토하고, 자신은 조후에 기꺼이 렀다. 이는 마치 순(順)인 것같다. 자신을 욕한 진림을 죽이지 않고 그의 글재주를 아긴다. 이는 마치 "관(寬)"인 것같다. 인장을 걸어놓고 떠나간 관우를 쫓지 않았다. 이는 마치 의(義)인 것같다. 조조가 사람을 잘 알고 기용하는 것은 왕돈, 환온보다 나았다. 오환을 치고, 동탁을 토벌하는 것은 이임보와 한택주보다 나았다; 국가실권을 장악했지만 당금 황제의 명호를 박탈하지 않은 것은 왕망의 시군과 다르다. 개혁대업을 아들에게 남겨둔 것은 급히 황위를 찬탈한 유유(劉裕)보다 낫다.

 

만일 유비가 "위군자(僞君子)"라면, 조조는 "진소인(眞小人)"이다. 다만 조조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소인'은 아니다. 그는 어쨌든 웅재대략의 정치가였다. 바로 진정한 정치가, 군사가이고 일반적인 정객, 권신이 아니기 때문에 조조는 역사상 일반적인 '간신', 권상(權相)을 넘어서는 위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이다.

 

기실 유비도 정치가로서 부끄럽지 않다. 그의 배신기의의 행위는 기실 부득이해서 한 일이다. 그의 '건국대업'을 이루기 위하여이다. 유비와 유비집단에 있어서, 일단 숭고한 목적이 있으면 수단은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혁명의 두 손으로 반혁명의 두 손을 상대하는 것"이다.

 

유비와 조조의 구별은 내건 기치가 달랐다는 것이다. 유비가 내건 기치는 "인의(仁義)"의 기치였고, 그래서 그는 큰 호소력을 지녔다. 그래서 하북 탁주에서 짚신을 팔던 노점상이 서남지구의 광대한 인민을 신하로 두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의"는 도대체 수단일가? 아니면 최종목적일까? 유비 자신만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삼국연의>는 인의를 제창하는데, 가치의 입장에서 보자면 틀리지 않았다. 통치자의 "인의"구호가 진짜이건 가짜이건, 공개적으로 사기를 치거나 함정을 파거나, 가난한 자를 비웃고 창녀를 비웃지 않는 관념을 제창하는 것보다는 낫다. 최소한 이렇게 제창하는 것은 불량한 사회기풍이 성행하도록 하지는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