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정(丁丁)
삼국시대 유비가 최종적으로 삼족(三足)의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조는 이미 북방을 통일하고 있었고, 손권은 강동에서 웅거하고 있을 때, 유비는 아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표의 문하로 기거하고 있으면서 칭웅할 땅을 갖지 못하고 있었고, 군대도 없었다(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무시할 수준이다). 그리고 나중에 유표가 죽으면서 유표의 관직과 작위를 계승한 아들 유종은 다시 조조에 투항한다. 이때의 유비는 이미 위기일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몸하나 누일 곳이 없는 것이다. 언제든지 조조에게 멸망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환경하에서, 유비는 신기하게 역전하여 먼저 형주, 사천을 점거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삼분천하의 하나가 되고, 삼국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삼대영웅중 하나가 된다. 유비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삼웅의 하나가 되고 천하에 우뚝 설 수 있었을까? 유비의 전설을 살펴보면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유비가 칭웅할 수 있었던 것은 유비의 수중에 3가지 무기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도 유비가 최종적으로 천하에 칭웅할 수 있었던 근본원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3가지 무기가 그렇게 신기했을까? 필자가 하나하나 언급해보기로 한다.
첫번째 무기는 곡(哭), 즉 소리내어 우는 것이다. 삼국의 각 영웅을 돌어보면, 곡은 거의 공통된 특징이다. 조조는 곡하는 것을 좋아했고, 손권도 곡하는 것을 좋아했고, 유비도 당연히 삼대영웅중 하나로서 곡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부모가 죽어도 곡을 하고, 아들이 죽어도 곡을 하고, 상대방이 죽어도 곡을 하고, 부하가 부상을 입어도 곡을 하고, 부하가 죽어도 곡을 했다. <삼국지>를 보면, 곡을 하는 내용이 아주 많다. 조조와 손권은 최소한 15번이 넘는다. 비록 <삼국지>에 유비가 곡을 하는 경우는 조조나 손권보다 적지만, <삼국연의>에는 곡을 하는 횟수가 부지기수이다. 어떤 사람이 통계를 내본 적이 있는데, 유비는 30여번 곡을 한다. 도원결의시에도 곡을 하고, 조운을 만나도 곡을 하고, 다시 모여도 곡을 하고, 서서와 헤어질 때도 곡을 하고, 삼고초려때도 곡을 하고, 조운이 아들을 구해줘도 곡을 하고, 유장에 의탁할 때도 곡을 하고, 조비가 한헌제를 폐위시킬 때도 곡을 하고, 방통이 죽었을 때도 곡을 하고, 법정이 죽었을 때도 곡을 하고, 관우, 장비가 죽임을 당했을 때도 곡을 하고, 노숙이 형주를 돌려달라고 요구할 때도 곡을 하고, 죽을 때 아들을 맡기면서도 곡을 한다. 어쨌든 곡으로 보낸 일생이고 죽을 때까지 곡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유비의 강산은 곡으로 얻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 듯하다. 비록 <삼국연의>눈 소설이므로 이것만으로 입증된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삼국지>에서 촉의 역사에 관한 것은 기본적으로 문학이고 진실이 아닌 것이 많다. 왜냐하면 촉국에는 아예 사관(史官)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국지>도 <삼국연의>보다 별로 더 낫지 않다. 그래서, 곡은 삼국영웅에게서 컨센서스가 이루어져 있다. 천하를 얻는데 핵심무기중 하나이다. 3대영웅주인공 중의 하나인 유비는 이런 무기를 당연히 가지고 있다.
두번째 무기는 수(睡), 즉 잠을 자는 것이다. 유비는 잠자는 면에서 삼국영웅중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지>의 기록에도 유비는 여러 명과 잠을 잤다. 관우와도 잤고, 장비와도 잤고, 조운과도 잤고, 제갈량과도 잤다.....그래서 사람들은 유비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까지 의심한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것은 한 쌍의 남녀 혹은 부부이다. 그런데 몇명의 남자가 같이 잠을 자고 평생의 우의를 맺는다. 그것은 아마도 중국역사상 유비만이 해낼 수 있었던 것같다. 결론적으로, 유비가 인심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곡 이외에 잠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잠을 잔 이들은 최종적으로 모두 그의 사당(死黨)이 된다. 일생동안 그를 따르는 충실한 부하가 된다. 어떤 험악한 환경하에서도, 갈 길이 얼마나 멀어도, 현실이 얼마나 잔혹해도, 이들 그와 잠을 자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주위에 있었다. 설사 헤어지더라도,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불원천리, 불원만리하고 그를 찾아온다. 유비가 최종적으로 삼분천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잠을 잔 적이 있는 사람들의 희생과 떼어서 볼 수가 없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유비가 당시의 영웅주인공중 하나가 되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비가 어느 정도 강산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잠을 자서 얻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 무기는 바로 형재의 명의로 등 뒤에서 칼로 찌르는 것이다. 유비의 전설은 거의 모든 적수와 형제로 부른다. 예를 들어, 유비가 유언에 의탁한 바 있고, 공손찬에 의탁한 바 있고, 도겸에 의탁한 바 있고, 여포에 의탁한 바 있고, 조조에 의탁한 바 있고, 원소에 의탁한 바 있고, 원소가 패배한 후에는 방법이 없어서 다시 유표에 의탁하고, 유표가 죽은 후에는 다시 손권에 의탁하고, 마지막에는 유장에 의탁한다. 이들은 모두 유비와 형제로 칭했고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이 적을 죽였다. 그리고 모든 이들 영웅은 유비에게 찬양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들 영웅은 모두 최종적으로 유비에게 해를 당한다. 유언은 유장의 부친인데, 유비의 진정한 근거지는 바로 유장의 것을 빼앗아서, 유비가 최종적으로 칭웅하는 지방이 된다. 공손찬과 도겸에 의탁할 때, 도겸이 죽고 그의 두 아들도 비명에 죽었다. 최종적으로 유비는 서주를 점거하고, 이는 유비의 첫번째 근거지가 된다. 이때 천하를 도모할 수 있었던 유비는 여포에게 엉망진창으로 패배하고 만다. 그리고 서주라는 근거지를 잃어버린다. 그는 얼굴두껍게도 여포에게 의탁한다. 여포는 그를 믿지 않고, 그는 다시 조조에 의탁한다. 조조를 이용하여 여포를 멸망시킨다. 경성에 도착한 후 유비는 조조에게 독수를 쓰려고 생각한다. 결국 서주에서 공개적으로 조조에 반대하고 그 후에 원소에 의탁한다. 아쉽게도 원소에게서 기반을 잡지 못하고, 원소는 조조에게 패배당한다. 유비는 다시 남하하여 유표에게 의탁한다. 그는 집안 사람으로 친척에 형제였다. 그러나, 유비는 유표의 것을 빼앗으려고 생각한다. 그가 눈여겨 본 것은 바로 유표가 가진 비옥한 형주근거지였다. 유표의 것을 빼앗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손도 쓰기 전에 유표가 죽어버린다. 그의 아들인 유종은 조조에 의탁한다. 그러나 유비에게도 수확은 있었다. 또 다른 아들인 유기의 군대를 얻는다(유기는 최종적으로 별다른 이유없이 젊은 나이에 죽는다), 대체로 2만명 가량이다. 마지막으로 조조에게 거의 전멸한다. 다만 그렇기는 해도, 그는 손에 많은 병력을 장악하고 있다고 허풍을 떨며, 손권과 손을 잡고 조조에 대항한다. 그리고 손권에게 형주를 빌린다. 아쉽게도 적벽대전에 유비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관망만 했다. 만일 손권이 패배하면, 그는 손권의 것을 빼앗으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주유가 3만군대를 이끌고 조조의 80만군대를 물리친다. 조조는 형조를 벗어나 북으로 간다. 설사 이런 상황하에서도 유비는 형주를 가지고 돌려주지 않는다. 유비는 이때부터 형주를 기반으로 하여 다시 자신의 첫번째 은인인 유언의 아들 유장에 의탁한다. 만나자마자 형제로 칭하고, 곡을 하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유장의 신임을 얻은 후, 유비는 유장에게 손을 쓰기 시작한다. 최종적으로 사천을 얻는다. 한쪽 지방을 차지하고 편안히 지내려는 거대한 꿈을 이룬 것이다. 자신의 강산을 가진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하여 황제를 칭할 수 있었고 촉국을 건립한다(당연히 자칭 한이었다) 그리하여 삼국중 하나가 된다. 마침내 성공한 영웅이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유비의 강산은 형제의 명의로 등 뒤에서 칼을 찌르는 방식으로 빼앗은 것이다. 이 점은 절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중에 유비는 자기의 날개가 튼튼해 졌다고 생각하여 동오의 여몽이 형주를 빼앗아 가고, 관우를 죽였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연맹합의를 찢어버리고, 친히 십만대군을 이끌고 동오정벌에 나선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철저하게 패배한다. 모든 자산인 십만대군은 육손에 의해 깨끗하게 몰살당한다. 겨우 몸만 백제성으로 도망쳐 나와서 결국 우화병에 걸려 죽는다. 이렇게 그는 전설적인 일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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