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회고적소역(懷古的小易)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삼군은 육군,해군,공군이다. 중국의 오늘날 실제 무장역량은 육,해,공군 외에 제2포병(미사일부대)와 부장경찰부대등이 있다. 우리가 역사극에서 자주 호상삼군(犒賞三軍), 호로삼군(犒勞三軍), 정돈삼군(整頓三軍)등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인이 말하는 삼군은 일반적으로 어느 삼군을 말할까?
실제로 서로 다른 시기와 서로 다른 국가에서 서로 다른 언어환경하에서, 삼군의 정의는 기실 달랐다. 고대전쟁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중,후군으로 나누거나, 좌,중,우군으로 나누거나, 기병, 보병, 거병(車兵)의 삼군으로 나누었다. 모주석은 <장정>에서 "갱희민산철미설(更喜岷山千里雪), 삼군과후진개안(三軍過後盡開顔)"이라고 썼는데, 여기서 말하는 삼군은 당연히 육,해,공군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 홍군에 해군과 공군이 없었기 때문에...
"삼군"이 중국에서 최초로 나타난 것은 주(周)나라이다. 춘추시대, "군(軍)"은 군대의 최대편제단위였다. 인원수는 통상적으로 12,500명이다. 주나라 천자는 육군(六軍)을 가질 수 있었다. 제후국은 최대 삼군(三軍)을 가질 수 있었다. 당연히 어떤 소국은 국력이 부족하여, 기껏해야 양군(兩軍) 혹은 일군(一軍)만 보유했다. 예를 들어, <좌전.양공십사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라가 되면 천자의 군대의 반을 넘을 수 없다. 주나라는 육군이고, 제후중 큰 곳은 삼군을 가질 수 있다." <주례.하관.사마>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무릇 군대를 만들면 일만하고도 이천오백명이 군이다. 왕은 육군이고, 대국은 삼군이며, 차국은 이군, 소국은 일군이다." 대제후국은 비록 모두 삼군을 지닐 수 있지만, 이름은 다 달랐다. 예를 들어, 진(晋)의 삼군은 중군(中軍), 상군(上軍), 하군(下軍)이라고 불렀고, 초(楚)나라는 중군(中軍), 좌군(左軍), 우군(右軍)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나중에 삼군이라는 것은 전체 군대를 통칭하는 용어로 쓰였다.
춘추시대의 군대는 주로 보병, 거병, 기병의 3개 병종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어떤 국가는 보병, 거병, 기병을 삼군으로 삼았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상앙변법후의 진나라는 '삼군'의 구분에 대하여 다른 제후국들과 달라졌다. <상군서.병수제십이>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삼군" 장남(壯男)이 일군, 장녀(壯女)가 일군, 남져중 노약자가 일군이다. 이를 삼군이라 부른다."
당, 송이후, 삼군의 구분은 이미 군대의 고정적인 건제가 된다. 삼군의 주요 구분기준은 전투임무의 구분에 따랐다: 전군(前軍)은 일반적으로 길을 열고, 정찰하고 소규모전투를 한다. 중군(中軍)은 전투의 주력이고, 대부분의 전투부대와 지휘계통을 포함한다. 후군(後軍)은 주로 전군의 군수업무를 책임진다. 군수조달의 민공과 부대를 따라가는 가족등을 포함ㅎ산다. 삼군은 각자의 군관이 배치되어 있다. 다만 중군의 총사령관이 전체군대의 최고지휘관이다.
우리는 자주 드라마에서 혹은 영화에서 '삼군에 상을 내린다'는 말을 많이 본다. 실제로 일반적으로는 전군을 뜻한다. 기하학을 배울 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삼각형은 안정성이 특징이다. 실제로 이 이론은 군사에서도 아주 전형적인 전술이다. 일반적으로 '삼삼제(三三制)"라고 부른다. 즉 전투임무를 수행할 때 3개의 단위로 나누어 상호 호응하면서 완성한다. 그래서 현재 전세계 대부분국가의 부대편제도 '삼진법'이다. 한개의 사단 내에 3개의 연대, 1개의 연대 안에 3개의 대대, 1개의 대대 안에 3개의 중대 이런 식의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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