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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중국에 하마터면 "돼지"가 없어질 뻔했다.

by 중은우시 2016. 5. 11.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돼지의 역사는 4천만년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사람들이 발견한 화석에서 멧돼지(野猪)와 닮은 동물이 삼림과 소택(沼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중국에서 돼지를 기른 역사는 최소한 신석기시대 초,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은허(殷墟)에서 출토된 갑골문(甲骨文)을 보면 상(商), 주(周)시대에 이미 돼지(猪)가 들어있는 사육건물이 있었댜는 것을 알 수 있다.


돼지 저(猪)의 본자는 "저(豬)"이고, 이체자로는 "저(瘃)"라고도 쓴다. 고대에는 체(彘), 돈(豚), 희(豨)라고도 썼다. 천하의 사람들중에서 돼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의 돼지는 운명이 기구했다. 하마터면 후인들이 돼지를 모를 수 있게 될 뻔하기도 했다.


첫번째로 돼지(猪)를 건드린 사람은 진시황이다. 진시황은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중화대통일을 이룬 철완의 정치인물이다. 육국을 통일한 후, "서동문(書同文), 차동궤(車同軌)"를 시행한다. 우리가 오늘날 볼 수 있는 <진시황본기>는 아주 가볍게 "서동문"이라는 세 글자를 언급하고 있지만, 당시에 구체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때는 아주 번잡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육국의 문자는 형태가 다를 뿐아니라, 방언도 있어서 발음도 서로 달랐다. 예를 들어, 초나라사람들은 집안에서 기르는 가축을 "저(猪)"라고 부르는데, 진나라사람들은 관행적으로 "체(彘)"라고 불렀다. 이제 "서동문"을 하려니 누구든지 "저"라고 말하거나, "저"라고 쓰면 그것은 법을 어긴 것이 된다. 그리고 진나라의 법은 원래부터 엄격하고 가혹하기로 유명했다.


"저"를 "체"라고 부르라니. 진시황은 그저 말을 한마디 내뱉은 것뿐일까? 아니면 진짜 그렇게 하라는 것일까? "서동문"은 법률의 범주에 속한다. 절대로 장난이 아니다. 2005년, 리야고성(里耶古城) 유적지에서 3만8천여매의 리야 진대간독(簡牘)이 출토되었다. 리야간독은 내용이 풍부해서, 호구, 토지개간, 물산, 전조부세, 노역요역, 창저전량, 병갑물자, 도로리정, 우역진도관리, 노예매매, 형도관리, 제사선농 및 교육, 의약등 관련 정령과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고도로 일치된 관방문서언어는 진시황의 '서동문'이 절대로 그저 말한마디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황심산의 작은 현천릉에서도 이렇게 제대로 집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진왕조는 2세만에 멸망한다. "저"라고 부르든 "체"라고 부르든 아무도 더 이상 신경쓰지 않게 된 것이다.


다만 역사의 해프닝은 항상 있는 법이다. 주원장이 대명왕조를 건립하고, 피휘(避諱)제도가 되살아났다. 황제의 성이 주(朱, Zhu)이므로 가장 먼저 피휘해야할 것은 바로 "저(猪, Zhu)"이다. "주"와 "저"는 중국어발음이 Zhu로 같았다. 글을 쓸 때는 "체(彘)"나 "시(豕)"자로 대체할 수 있지만, 백성들이 말을 나눌 때는 골치아파진다. "살저(殺猪)"는 "살주(殺朱)"와 발음이 같아서 구분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주원장을 죽이라는 것이라고 모함하면 변명할 도리가 없다. 다행히 백성들은 백성들의 지혜가 있다. 아예 "저(猪)"를 "만리형(萬里哼)이라고 불렀다. "살저"를 아예 "살만리형"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원장은 정말 돼지를 죽이지 못하게 했는가? 이건 좀 억울한 점이 있다. <명회전>의 기록을 보면, 주원장의 마황후가 죽고나서 조정은 이렇게 정한다: "부고를 들은 날로부터 시작하여 수도에서는 도축을 49일간 금하고, 외지에서는 3일간 금한다." 기실, 이것은 그냥 예제이다. 즉 황실장례때, 경성의 백성들은 49일동안 돼지,양을 죽일 수 없다. 경성이외는 3일간 금지한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이것이 와전되어 조정이 '돼지를 죽이지 말라'고 했다고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황제가 돼지를 죽이지 못하게 한 일은 확실히 있었다. 명무종 주후조는 성이 주일 뿐아니라, 돼지띠였다. 주후조는 사건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명나라 정덕14년(1519년), 이 황제는 의진(儀眞)까지 남순을 간다. 그리고 민간에서 돼지를 기르거나 돼지를 죽이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의진현에서 "정사(丁祀)" 공자제사때, 돼지머리를 올리지 않고, 양머리만을 올린다고 결정한다. <명무종실록>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황제의 이 명령이 한번 내리자, 백성들이 바로 집행한다. 순식간에 직예, 산동등지의 백성들도 어쩔 수 없이 돼지를 모조리 죽여버린다. 막 태어난 돼지새끼들도 모조리 묻어버린다.


어쨌든, 말도안되는 사람은 황제 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정상인 대신들이 더 많았다. 대신들이 극력 권하는 바람에 주후조도 더 이상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돼지'가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