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문학/무협소설

"개방(丐幇)"은 존재했을까? 기원은 언제일가?

by 중은우시 2016. 11. 23.

글: 이후굉(易厚宏)

 

개방은 중국의 무협소설에서 가장 자주보는 방파이다. 김용이건 고룡이건 양우생이건, 개방은 모두 많은 분량을 차지하낟. 개방은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했던 방파이다 다만 무협소설에서처럼 그렇게 천하제일의 대방파였을까?

 

개방을 얘기하자면, 김용무협소설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용소설에서의 개방은 두 개의 진방지보(鎭幇之寶)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항룡십팔장이고, 다른 하나는 타구봉법이다. 개방방주이 신물은 타구봉이다. 개방방주의 이미지 중 가장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교봉(喬峰)으로 항룡십팔장을 가지고 강호에서 거의 적수를 만나지 못하고, 개방의 인우너을 이끌고 요나라에 항거하고 나라를 구하는 장거를 행한다. 또 다른 한명은 홍칠공으로 항룡십팔장과 타구봉법을 지니고 동사 황약사, 서독 구양봉, 남제 단왕야와 중신통 왕중양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떨치는 오대고수의 한 명이 되고, 일대종사가 된다. 나중에는 황용, 노유각, 야율제등이 차례로 개방방주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인간적 매력은 교봉과 홍칠공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실존한 개방의 기원은 오늘날에도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다만 자세히 분석해보면, 소위 개방은 실제로 거지들의 조직이다. 거지들이 많아지면서 연맹을 형성하고, 사회적 지위는 가장 낮았으므로 확실한 역사적 기록이 없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다. 민간전설속의 개방 최초의 조사(祖師)는 범단(范丹)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공자가 노나라에서 가르칠 때, 공자와 그 제자들이 거지 범단이 거주하던 곳으로 갔다. 가자마자 49일이나 계속되는 장마가 닥친다. 공자는 제자를 보내어 식량을 빌려오게 했으나 실패한다. 범단의 도움으로 겨우 굶어죽을 상황을 면한다. 그래서 후세의 거지들은 범단을 조사로 모셨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인물인데, 범단은 동한 시대의 인물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범단이 공자를 도와줬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그외에 오자서, 주원장, 진경 등도 거지들이 조사로 모시는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구걸을 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개방에 관한 문헌기록은 아주 적다. <후한서.독행전>, <좌전>, <용성록>, <계신록>등에 모두 거지에 관한 기록이 있다. 다만 구걸로 살아가는 개인에 관하여 기록했지, 방파로 형성되지는 않았다. 진정 거지들이 방파를 이룬 것은 당나라때 원결이 쓴 <개론(丐論)>이다. 자칭 "장안에서 거지들과 친구로 지낸다"고 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구걸로 살아가는 직업거지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아마도 육조시대일 것이다. 북송의 <동경몽화록>에서는 개봉성에 "각각의 여러 업종은, 의복에 각각 본래의 색깔이 있어서 감히 그것을 벗어나서 입고 길거리를 다니지 못했다. 그렇게 하여 어느 색이 거지인지를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규격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용납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규격이라는 것은 대체로 어떤 격식의 옷을 입으면 특정구역 혹은 특정대상을 상대로 구걸을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들은 구걸할 때 집단의 구속을 받는다. 그리고 규정한 의무를 최대한 이행해야 한다. 즉 정식방파로 형성된 것이다. 송원시대의 화본소설 <금옥노봉타박정랑>에서는 항주성내의 거지두목 김노대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는 개방우두머리의 표지라고 한다. 전체 도시의 거지를 지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막대기는 바로 타구봉의 역사적 원형이다. 이는 송나라때 거지는 방파를 형성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일정한 조직을 가진 사회집단인 것이다. 당시의 개방은 규율이 엄격했고, 개방의 두목이 가진 막대기는 청나라때까지 계속 사용된다. 권력을 상징할 뿐아니라, 방규를 집행하고, 규칙을 어긴 자를 징계하기도 했다. 송나라때의 개방은 대체로 대도시, 마을을 홛동중심으로 삼았다. 그들은 아직 전국적인 조직은 만들지 않았다. 다수는 지역적집단의 특징을 지녔다.

 

청말민초, 개방조직은 더욱 발달한다. 거의 모든 지구에 상응하는 거지조직이 만들어진다. 특히 대도시는 아주 분명했다. 예를 들어 북경에는 "남간자(藍杆子)", "황간자(黃杆子)"가 있다. 황간자는 빈곤해진 파락호 팔기자제들이 만든 것으로 고급거지로 구성된 조직이다. 남간자는 보통거지들이 만든 조직이다. 황간자와 남간자는 김용소설에서 말하는 개방의 정의파(淨衣派)와 오의파(汚衣派)의 원형이다. 하북 남부 산동북부에 분포된 방대한 개방조직 "궁교행(窮敎行)"이 있는데, 그 방내에 파가 나뉜다. 한문(韓門), 제문(齊門), 곽문(郭門)등. 길림 해룡일대의 개방은 "대광(大筐)"과 이궤(二櫃)"의 두 가지가 있다. '대광'은 주로 장애인으로 구성되었고, '이궤'는 보통거지이다. 무석(無錫)의 개방에는 "유문(流門)"과 "촉문(矗門)"의 양대지파로 나뉜다. 장강중하류지구의 개방에는 "삼강(三江)", "양호(兩湖)"등의 파로 나뉜다. 운남의 개방은 "타(舵)"라고 칭한다. 방주를 "타두(舵頭)"라고 부른다. 청나라말기에는 전국각지의 개방이 일정한 방파형태의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도, 전국각지의 개방조직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전국각지의 대소 도시에서, 모두 각양각색의 거지를 볼 수 있다. 일부 확실히 노동력을 상실하여 어쩔 수 없이 구걸을 하게 된 경우를 제외하고, 많은 경우는 모두 계통적으로 훈련받은 직업 거지들이다. 또한 일부 불행히 조직폭력단에 피해를 입어 장애인이 된 후에 구걸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 형형색색의 거지는 세계의 곳곳에 모두 분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