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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무협소설

교봉(喬峰): 정치와 여인의 각도에서 해석하다.

by 중은우시 2015. 2. 22.

글: 유려평(劉黎平)

 

교봉은 기실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그 내포된 의미는 이미 중국인의 사고방식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의 절대적인 신용(神勇)과 절대적인 고상(高尙)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다만 중국인의 신용과 고상에 관한 추구는 진실한 것이다. 여인들의 절대적인 충실과 애정에 관한 추구는 진실한 것이다. 그래서 교봉도 진실한 것이다. 하나의 진실한 추구와 상상이다.

 

다만, 진실하다고 하여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정치세계와 애정세계에서, 추구하는 것은 현실이지, 진실이 아니다. 교봉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그의 진실은 현실의 앞에서는 부닥치면 분쇄되어 버린다.

 

중국인은 충(忠), 용(勇), 인(仁), 의(義), 성(誠) 내지 협(俠)을 추구하는데, 이는 모두 진실한 정신세계이다. 이들 진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다. 예를 들면, 형가(荊可), 전제(專諸)가 그리고 나중의 관우와 제갈량이 그들이다. 모두 목숨으로 이들 진실의 정신적인 부를 이룩했다. 교봉의 많은 품성은 모두 이상의 역사인물에서 따 왔다. 그의 신용총의는 관우와 유사하고, 그의 호매한 기운은 무송과 유사하다(무송은 물론 역사인물이 아니긴 하다), 그의 충성은 아주(阿朱)와 유사하고, 제갈량의 유비에 대한 것과 유사하다. 그의 강개비장은 형가와 전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교봉은 실패한다. 실패했다는 것은 신체적인 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생명이 끝났다는 것이다. 개방에서 축출되고, 한인들에게 쫓겨나고, 거란과 대송의 사이에 끼어서 죽게 된다. 그의 출중한 품성과 신용은 그의 정치적지위에 여하한 긍정적인 공헌을 하지 못한다. 그는 계속 피동적이었고, 그의 고상함은 그의 묘지명이 되고, 그의 진실은 관을 만드는 재목이 된다.

 

왜 한 세계에서 고상한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운명이 나쁘다고 하여 정부를 탓할 수는 없다. 세계는 원래 이러했다. 그저 네가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이다.

 

교봉이 좀더 현실적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은 마치 교봉을 폄하하는 것같고, 교봉을 세속화시키는 것같다. 이것은 바로 교봉이 했어야 하는 것이다. 교봉은 대협이다. 다만 그도 하나의 정치적 인물이다. 천하제일대방의 방주이다. 강호에서 그렇게 큰 발언권과 사무처리권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정치적인물이 아니라 할 것인가? 진실한 목표는 원래 현실의 수완으로 실현할 필요가 있다. 대공무사하고, 항룡십팔장을 할 수 있다고 하여 방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외에 정치적인 자질과 위기대응수단을 보아야 한다.

 

교봉의 비참한 처지와 그의 대응수단을 보기로 하자. 그의 거란인이라는 신분이 폭로되고, 마장로의 죽음의 책임도 그에게 뒤집어씌워진다. 신용개세의 교봉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도망치는 것밖에 없다. 그를 반대하는 자들은 기뻐서 날뛰었고, 그를 옹호하던 자들은 말한마디 할 수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첫째, 교봉은 개방방내에 공고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 세력은 반드시 견고하고 교봉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절대적인 충성이 바뀌지 않을 사람을 말한다. 교봉의 지지자는 하층에 있는 것같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층은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력을 최고위층과 중간층에 건립하여야 한다. 일단 교봉이 동요되면, 그들은 뿌리가 뽑히는 고통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함께 무리를 이루어 주인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행자림대회에서, 유감스럽게도 이런 세력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교방주가 가면 가는 것이고, 그 어느 누구도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그 어느 누구도 산소부족으로 숨쉬기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여기에서 타이완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예전에 천수이벤은 '해각칠억(海角七億)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민진당내에서 일단 부정부패의 스캔들이 들리더라도 당내의 원로들 중에서 관계를 끊는 사람은 몇명 되지 않는다. 민진당적의 까오슝시장 천쥐는 봉황위성TV의 우샤오리와의 인터뷰에서 천수이벤사건에 대하여 불어보자, 그녀는 그저 웃으면서 좌우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들이 천수이벤이 부정부패했다는 것을 모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천수이벤을 뽑아버리면 그들이 아프고 그들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을.

 

천수이벤보다 천배 백배 고상한 교봉이 일단 개방이라는 몸체를 벗어나더라도 피를 흘리는 고통은 따르지 않았다. 최소한 지도층은 그러한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이런 고통은 금전이나 지위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직으로 유지하고, 기율로 유지하고, 감정으로 유지할 수는 있다. 아주 유감스럽게도, 교봉은 이런 것이 없었다.

 

둘재, 위기대응수단이 전혀 없었다. 견고하고 쓸만한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행자림에서 위기가 발발하자, 강대한 목소리로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증거를 내놓자, 교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난다. 천하제일대방으로서 교방주는 위기처리팀이 있었어야 했다. 즉시 들고 일어나서 관련사실을 부인하여야 했고, 최소한 관련증거를 일단 놓아두고, 조사하는 기간을 가졌어야 했다. 조사기간동안 교봉은 계속 방주의 직무를 수행했어야 했다.

 

교봉이 떠나자, 고상한 뒷그림자는 남겼지만, 남은 것은 엉망진창인 개방이었다. 대송의 강호제일의 정치적 인물로서, 그는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 그는 비열하지 않으면서, 현실적이 될 수 있었다.

 

개방내부에서 교봉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한 여인은 당연히 강민이다. 이 풍화절대의 여자는 교봉의 정치적 몸체에 날카로운 칼날을 꽂았다. 여인은 일단 미워하게 되면 손을 쓰는데 경중을 가리지 않는다. 취현장의 삼백고수가 교봉을 어쩌지 못했지만, 강민의 가벼운 일격은 이 개세영웅을 쓰러뜨린다. 이때 얼마나 억울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너무나 광명정대하기때문에 피해를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음탕한 여자의 투기와 음모에 쓰러진 것이기 때문이다. 군자에게 있어서 이는 억울할 것이 없다. 다만 정치인물로 말하자면 억울한 일이고 심히 모욕적인 일이다.

 

교봉은 마부인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했다. 그는 강렬한 미를 추구하는 욕망을 억누르고, 윤리도덕의 틀에 묶여서 마부인을 제대로 한번 봐주지도 않았다. 도덕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옳은 일이다. 다만 조직관리의 각도에서 보자면, 이것은 부적절하다. 부하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당연히 일종의 감상하는 눈으로 대하면 된다. 그녀에게 네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인정한다고 느끼게 해주면 된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즐긴다고 느끼게 해주면 된다. 받아들일지 말지는 그녀에게 상상의 공간으로 남겨두면 된다. 당연히 상상의 공간을 남기는 것은 절대로 교봉대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여지를 남길 수는 있었다. 만일 이렇게 했더라면, 최소한 강민은 너를 해치지 않았을 것이고, 너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은 여인이라면 절대로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한 대인물도 모두 부하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맹상군은 모든 부하들에게 자신이 형제라고 느끼게 했다. 강민과 같이 방탕한 여자는 비록 가까이 하여 기개를 더럽힐 수는 업지만, 공간을 두어 그녀로 하여금 약간은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게 하면 된다. 상상도 좋다. 기실 여인은 멋진 남자를 갖지 못하더라도, 멋진 남자의 팬이 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교봉은 강민을 교봉의 팬으로 만들 수 있었다.

 

교봉은 정치적 조직수단이 없었으므로, 멀쩡하게 개방이라는 이 최대의 정치적 자원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그의 신용과 자질은 그로 하여금 더욱 큰 자본을 얻게 해주었다: 거란. 이것은 절개의 문제와 관련된다. 다만 공자는 말한 바 있다. 필부필부를 배울 필요는 없다고, 약간의 절개를 위하여 스스로 죽을 필요는 없다고.

 

거란에 투신한 것은 교봉의 정신세계의 귀의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교봉이 남원대왕을 맡은 기간동안, 완전히 대송과 접경한 기회를 이용하여 침투하고, 반란을 책동할 수 있었다. 당연히 거란에 대하여 침투하여 반란을 책동할 수도 있었다. 개방내에 자신에 충성하는 역량을 불러내서, 여기에 조직을 건립할 숭 ㅣㅆ었다. 대송을 도와서 연운십육주를 되찾게 해도 좋았다. 이렇게 영토를 개척하는 방주라면 그까짓 소위 혈안이 무슨 관계일까. 정치적으로 따지는 것은 네가 집단에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지, 네가 청백한지 아닌지가 아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야율홍기가 송나라를 침범할 때, 교봉은 그저 필부지용으로 적군의 총사령관을 납치하였다. 그의 남원대왕은 헛으로 한 것이 되었다.

 

교봉은 협객으로서는 충분하다. 그러나 정치인물로서는 배워야할 것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조직건설, 충성심교육, 위기대응 내지 여인에 대한 자세등이다. 당연히, 만일 교봉이 이런 것들에 바진다면, 그것은 교봉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중국인의 심미기대와 정신추구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다. <천룡팔부>는 정치소설이 되어버릴 것이다. 세상에는 무협의 아름다움, 비장의 아름다움이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협의 독립존재의 가치이다. 순수한 인간미에 대한 찬미와 묘사이다.

 

그래서 무협은 우리에게 영원히 인간미에 관한 동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