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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중국고대의 "결사대"

by 중은우시 2015. 3. 26.

글: 백마진일(白馬晋一)

 

소위 "결사대(중국어로는 敢死隊)"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인으로 구성된 돌격선봉대를 가리킨다. 이 단어의 출처는 대체로 <삼국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동습(董襲)과 능통(凌統)은 모두 전부(前部)이다, 각각 감사백인(敢死百人)을 거느렸다" 유감스러운 점은 이 결사대가 일찌감치 여포, 관우, 마초등 명장들의 광환아래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관중조차도 이 결사대에 대하여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엣날의 결사대는 절대로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찌감치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천하를 뒤흔든 진나라의 휘하에도 결사대는 있었다.

 

당연히 이 싸우면 이기는 철혈의 군대가 성립되는 것은 역사상 대명이 자자한 한 인물과 관련이 있다. 그의 이름은 상앙(商鞅)이다. 원래, 진나라는 영토가 서쪽에 치우쳐 있어, 중원의 주류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서방국가'는 오랑캐의 나라로 칭해졌다. 당시의 진왕 진효공은 이상이 있던 인물이다. 선진적인 '동방국가'와 어개를 나란히 할 야심이 있었다. 그래서 구현령(求賢令)을 내렸고, 상앙이 온다. 상앙이 오자, '상앙변법'이 있고, 일련의 부국강병법안이 마련된다.

 

그중 강군의 법안 가운데, 이런 규정이 있다: 군공수작제도(軍功授爵制度). 무슨 뜻인가? 간단히 말해서 전투에서 잘 싸우기만 하면 작위를 준다는 것이다. 이 작위는 유치원 선생이 주는 상장과는 다르다.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있다. 작위를 받으면, 상응한 등급이 토지와 집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위는 어떻게 얻는가? 당연히 군공(軍功)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한 사병이 전쟁터에서 적의 수급을 베면, 상응한 군공을 얻을 뿐아니라, 집안의 부모가 이웃집의 소같은 것을 훔쳐서 죄를 짓더라도 그 죄를 사면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군공은 누적된다. 예를 들어, 부친이 전투에서 사망하면, 그 공로는 아들에게 넘어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군공이 있으면, 온 가족이 이익을 본다. 군공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작위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카드소비시 적립되는 포인트와 비슷하다.

 

보라. 사람을 죽이면 큰 집에서 살 수 있고, 죽이는 것은 적국의 사람이다.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진나라는 무를 숭상하는 기풍이 성행한다. 원래 "한 사람이 군에 들어가면, 온 가족의 영광이다"였지만, 나중에는 "온 가족이 군에 들어가면 온 가족의 영웅이다"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전투를 하게 되면 모두 닭피주사를 맞은 것처럼 죽어라 돌진하는 것이다. 오늘날 유행하는 '홍빠오먼저차지하기"와 비슷하다. 당연히 이렇게 하니, 주변국가들은 골치아플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 모르겠다. 진군이 이렇게 하면, 다른 나라는 왜 따라하지 않았는가? '개혁경험'을 카피하여 쓰면 되지 않는가? 금방 말했듯이, 춘추전국시대에 중원제국이 진나라를 상대할 때는 자신들이 선진국가로 자처했다. 선진국가이면 정신문명이 당연히 높다. 진나라와 같은 깡패수단을 쓰지는 않는 것이다. 싸우더라도 군자의 예법을 지킨다. 양군의 진영이 갖추어지면 먼저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차를 마시고, 문안인사를 하고, 다시 날씨얘기도 한 다음. 북과 징을 울려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송양공의 홍수예양(泓水禮讓), 진문공의 퇴피삼사(退避三舍)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러 나라의 기풍이 이러하다보니, 진나라의 항공모함급 '결사대'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당시 진나라군대는 BUG처럼 존재하게 된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육국을 통일할 때, 진군은 모두 적군 160만명을 죽인다. 그러나 역사상 유명한 '결사대'는 절대로 진나라군대의 전유물은 아니다. 역사상 상당히 대단한 인물인 구천의 수하에도 결사대가 있었다.

 

당연히, 구천을 얘기하자면 우리는 먼저 '와신상담'을 떠올린다. 기실 '와신상담'은 이미 오월전쟁의 3.0버전이다. 양국간의 갈등은 대작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이다.

 

오월지전 1.0버전, 월나라가 오나라를 깨부시다.

오월지전 2.0버전, 오나라가 복수하여 월나라를 깨부시다.

오월지전 3.0버전, 원라나가 복수하여, 다시 오나라를 깨부시다.

 

우리가 얘기할 것은 오월의 첫번째 정면대결이다. 당연히 당시의 구천을 상대한 것은 부차의 부친인 합려(闔閭)였다. 당시의 상황은 대체로 이러하다. 오왕 합려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자신이 작은 이웃나라인 월나라를 못살게 괴롭힌다. 이 월국은 오랑캐의 땅에 있고, 국력이 약소하였다. 전쟁을 하기도 전에 이미 승부는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월나라 국군 구천은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장경조훼(長頸鳥喙)" 즉 목은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 나왔다. 이런 용모를 지닌 인물이라면 대부분 한랄음지(狠辣陰鷙)한 기운을 지닌다. 자연히 맞부닥쳐서 한바탕 해보자고 결심하게 된다. 그래서 비밀리에 '결사대'를 조직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결사대'의 순도이다. 이전에 언급한 진나라의 군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진나라군대가 베는 것은 적군의 머리이지만, 월군에 베는 것은 자신의 머리였다.

 

이 '결사대'에 대하여 <사기>에는 상당히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월왕 구천은 사사(死士)로 하여금 싸움을 걸도록 했다. 3줄로 오나라의 진영으로 나아가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목을 벤다." 무슨 뜻인가? 구천은 월나라의 사형수들을 3줄로 세워서 모든 사람의 목에 검을 하나씩 걸게 하고 손에 손을 잡고 오나라의 진영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높이 소리친다; "우리는 군령을 어겼다. 적진의 앞에서 죽은 것만이 죄를 갚는 방법이다!" 말을 마치고는 속속 검을 뽑아 자신의 목을 베어 적진에 던진다.

 

월군의 변태적인 수법에 오군은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 반대편의 월군은 아마도 동포의 피를 보자 투지가 끓어올랐을 것이다. 아마도 적진에 늦게 뛰어들다가는 자신도 똑같은 군법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속속 적군을 향하여 돌진한다. 오군이 패배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전에 투지만만했던 오왕 합려는 도망하는 와중에 아주 낭패한 자세로 사살된다. 아들 부차에게는 한 마디를 남긴다: "월을 잊어서는 안된다(必毋忘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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