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초기)

각비(恪妃) 석씨(石氏): 대청왕조 최초의 한족 비빈(妃嬪)

중은우시 2016. 4. 22. 23:35

글: 소몽(蕭夢)


대청왕조의 역사상 첫번째 한족 비빈은 바로 순치제(順治帝)의 각비 석씨이다.

사료의 기재에 따르면, 각비 석씨는 한족이고 이부시랑 석신(石申)의 딸이다. 그녀는 궁안에서 유일한 한족 비빈이었고, 강희6년 십일월 삼십일 병사한다. 원래 계현 황화산의 아래에 매장했다가 강희57년 도비, 정비와 함께 효동릉(孝東陵)에 매장된다.

순치제의 각비 석씨에 관하여, <영평부지>의 기록에 따르면, "순치제는 석비에게 영수궁(永壽宮)에 거주하도록 하사했고, 모자와 의복을 한(漢)식으로 하도록 허용했으며, 석신의 처 조숙인에게 견여(肩輿)를 타고 서화문에서 내우문까지 와서 내려 입궁하도록 허락한다.

<영평부지>의 기재를 보면, 우리는 각비 석씨가 순치제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뿐아니라, 순치제가 한문화를 숭상하고 한문화를 널리 보급하려고 결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순치제가 이 각비 석씨에게 청나라 한족비빈에게 몇 가지 최초의 기록을 남긴다.


첫째, 각비 석씨는 대청역사상 최초의 한족 비빈이다. 순치제 이전의 황제는 일반적으로 모두 만몽혼인을 했다. 만한혼인은 없었다. 순치제에 이르러, 순치제는 만한혼인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앞장서서 한족여자를 비빈으로 삼는다. 이는 대청역사상 처음으로 한족비빈을 취하는 선례로 남는다.


둘째, 각비 석씨는 대청역사상 처음으로 후궁에서 한복(漢服)을 입은 비빈이다. 순치제가 한문화를 크게 숭상하고 널리 보급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순치제가 각비 석씨를 총애하고 대우해주었기 때문에, 순치제는 석씨에게 궁중에서 한복을 입을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이는 대청역사상 첫번째 사례이다. 이를 보면 각비 석씨가 얼마나 총애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셋째, 각비 석씨는 처음으로 황제에 의하여 특별히 허가를 받아 모친이 견여를 타고 서화문에서 내우문까지 가서 내려 입궁하여 딸을 만날 수 있었던 비빈이다. 이는 대청역사상으로도 보기 드물다 이를 보면, 순치제가 이 비빈을 총애했을 뿐아니라, 한족비빈에 대한 예우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고, 순치제가 한문화를 숭상하겠다는 결심을 드러낸 것이다.


넷째, 각비 석씨가 죽은 후, 강희제는 그녀를 위하여 장례식을 융중하게 치뤄준다. 규격은 청태조의 수강태비 보얼지지터씨의 예에 따르도록 하여 상당히 융중했다. 당연히 이 장례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 한족비빈에 대한 장례를 크게 잘 치뤄줌으로써, 순치제가 남긴 만한단결의 대정방침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다. 강희제 당시의 여러가지 환경과 종합해서 보면 의미가 아주 심원하다.

각비 석씨는 효동릉에 매장되는데 그녀의 묘의 위치는 명루앞의 동측 서배 북에서 두번째 자리이다. 이를 보면 살아 있을 때 잘나갔을 뿐아니라, 죽어서도 마찬가지로 중시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가 바로 대청역사상 첫번째 한족비빈인 각비 석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