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봉민(李鳳民)
지금의 심양 대남문리로 동쪽의 한 구석에는 청나라초기에 누르하치의 셋째아들 망구얼타이(莽古爾泰)왕부의 소재지이다. 망구얼타이는 일찌기 이곳에서 동생 더거레이(德格類), 누나 망구얼타이와 '홍문연'을 열어 홍타이시(청태종)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하고자 밀모한 바 있다. 그러나 무슨 일에서인지, 이 권력탈취방안이 세워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망구얼타이와 더거레이가 차례로 급사한다. '홍문연'사건이 적발된 후, 망구지 및 그 일당 일천여명이 처결된다. 이 사건은 심양 내지 청나라역사상 최대의 그리고 가장 잔혹한 사건이다.
망구얼타이는 누르하치의 적자이고, 모친은 푸차씨(富察氏)이다. 명나라 만력16년(1588년)에 태어났다. 정남기 기주이며, 삼대패륵이다. 출신, 지역으로 따지면 원래 홍타이시보다 위이다. 단지 그의 모친이 대패륵 대선과 애매한 관계여서 누르하치는 그녀를 차마 살해하지 못하고, 그저 재물을 사적으로 보관했다는 이유를 들어 휴처(休妻)했을 뿐이다. 망구얼타이는 부친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더욱 잔인하게 모치을 죽인다. 이런 금수같은 행위는 망구얼타이의 후금국내에서의 지위와 영향력을 대거 끌어내린다. 천명11년(1626년) 칸위 계승인을 추천할 때 아무도 그를 추천하지 않았다.
홍타이시가 황위를 계승할 때, 망구얼타이는 비록 중의에 따라서 부득이 그에게 한 표를 던지게 되지만, 내심으로는 불만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홍타이시와의 갈등이 날로 심해졌따. 최종적으로 '어전노인(御前露刃, 어전에서 칼날을 드러내다)'사건으로 두 사람의 모순을 백열화된다.
그 때는 천총5년(1651년)이었다. 명나라의 대장 조대수가 대릉하성을 수리했다. 홍타이시는 명군이 후금을 핍박하는데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이 '문제아'를 뽑아내려고 한다. 이 해 8월, 홍타이시는 팔기군대를 통솔하여 대릉하성을 포위공격한다. 팔기군은 각각 방위에 따라 성을 포위한다. 망구얼타이와 동생 더거레이는 정남기를 이끌고 성의 정남쪽을 공격했다. 이곳은 명군의 포화가 가장 집중된 지구이다. 명군이 망구얼타이군졸을 대거 살상한다. 망구얼타이는 상황을 보고 적시에 후퇴령을 내린다. 그후, 망구얼타이는 홍타이시의 어장(御帳)으로 가서 홍타이시에게 보초를 서고 있는 정남기를 불러들여서 군사력을 보충한 후 다시 싸우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은 원래 합리적인 요구이다. 그러나 홍타이시는 망구얼타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위에게 말을 준비하라고 하여, 급한 일을 처리하러 간다고 한다.
망구얼타이는 원래 성격이 거칠고 경솔한 편이다. 이 모습을 보고는 벌컥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말한다: "황상은 나에게 무슨 불만이 있으면 공개적으로 말해달라. 이렇게 나를 괴롭히지 마시고. 나는 황상에게 지금까지 다 따랐는데, 내가 전심전력을 다해도 황상은 여전히 불만이다. 황상은 나를 죽는 길로 몰아넣어야 겠는가?"
망구얼타이는 한편으로 말하면서 한편으로 손을 칼손잡이에 놓았다. 그의 곁에 있는 더거레이는 이런 상황을 보고 급히 앞으로 나가서 망구얼타이에게 주먹을 날린다. 그리고 그에게 '멍청한 짓'을 하지 말고록 일깨운다. 멍구얼타이는 주먹을 한 대 맞고는 더욱 화를 가누지 못하여, 손으로 칼을 오촌 정도 뽑는다. 더거레이는 대경실색하여, 급히 그의 손을 누른다. 힘으로 그를 밀어서 어장 바깥으로 내보낸다. 홍타이시는 이런 광경을 보고 곁에 있는 시위들을 크게 욕한다: "그들이 칼날을 보이며 짐을 범하는데, 너희는 왜 급히 깔을 뽑아서 짐의 앞을 막아쥐 않느냐? 고인들이 이런 말을 했다. 칼을 쥐는 것은 반드시 자르는 것이고, 도끼를 집는 것은 반드시 토벌하는 것이다(操刀必割, 執斧必伐). 그들이 칼날을 드러낸 목적을 너희는 모른단 말인가, 어찌 좌시하며 움직이지 않는가?"
그날 저녁, 망구얼타이는 동생 더거레이가 말려서, 자신이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셔서 광언과 실태를 보였다는 핑계를 대며 홍타이시의 어장의 앞으로 가서 홍타이시에게 죄를 청한다. 그러나 홍타이시는 그를 어장으로 들이지 않는다.
대릉하의 전투가 승리로 끝나고, 팔기대군은 전선에서 성경으로 되돌아온다. 법사(法司)는 망구얼타이의 '어전노인'사건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심리후 홍타이시에게 보고한다. 망구얼타이는 대패륵 명호를 박탈하고, 다섯 우록의 인구를 빼앗고, 벌금 은 1만냥을 과한다.
망구얼타이는 이 판결결과에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는 것은 철저히 홍타이시에게 밉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앞날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래서 내심으로 아주 고뇌한다. 심지어 혼자 앉아서 곡을 하다. 누나 망구지, 자형 소노무(瑣諾木)는 동생의 처지를 동정하여 특별히 개원(開原)에서 달려와 그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술이 세 번 돌자, 망구얼타이는 술기운에 마음 속에 감추어두었떤 생각를 토로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현재 홍타이시에게 철저하게 밉보였다. 앞으로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아예 할거면 끝까지 하자. 기회를 보아 그를 제거하고 칸의 자리를 빼앗자. 만일 이 방법이 실패하면, 우리는 개원으로 돌아가자. 개원은 성이 견고하여 거기서 자립하여 왕이 되면 된다." 야사필기에서 망구얼타이의 계획은 집안에 '홍문연'을 베풀어 홍타이시를 초청하고, 약주로 그를 '독살'하는 것이라고 한다. 동생 더거레이, 누나 망구지 및 제부 소노무는 이 계획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망구얼타이에게 섣부른 행동은 하지 말라고 말린다. 망구얼타이는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가 분명히 나를 죽일 것이다. 나는 이미 물러날 길이 없다." 망구얼타이가 이렇게 마음을 굳히자, 나머지 세 사람도 망구얼타이의 계획에 동의한다.
다음 날, 망구얼타이는 정남기의 두 심복 장수 툰부루(屯布祿), 아이바리(愛巴禮), 그리고 망구지의 심복인 렁썽지(冷僧機)를 밀실로 부른다. 세 심복은 망구얼타이의 결정을 듣고 아무런 망설임없이 표시한다. 주인의 명을 따르겠다고. 칼산에 오르고 불바다에 뛰어든 것이라 하더라도 사양하지 않겠다고.
상의가 끝나고, 7명은 피를 뽑아 맹세한다. 망구얼타이는 맹세하여 말한다: "나 망구얼타이는 이미 황상과 원한을 맺었다. 너희들이 나를 도와서 일이 끝난 후, 너희들을 나의 몸보다 못하다고 보면 하늘과 땅이 보고 있다" 소노무와 망고지도 맹세를 했다: "우리는 겉으로 황상을 모시지만, 뒤로는 그대를 도우겠다. 만일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보고 있다." 나머지 몇 사람도 맹세를 한다. 그 후에 맹서문을 부처의 앞에서 태운다. 게획에 따라 각자 준비를 한다.
소노무는 원래 몽골 오한부(傲漢部)의 패륵이다. 천총원년(1637년)에 후금에 귀순했다. 홍타이시는 오한부를 회유하기 위하여, 과부로 있던 누나 망구지 공주를 소노무의 처로 준다. 그후 다시 개원성을 그들의 속지로 준다. 개원성내에 공주부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량의 우마, 인정, 금은, 재물, 의복을 내린다. 그래서 소노무는 홍타이시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소노무는 정남기 '홍문연'에 참가하기로 맹세한 후, 마음 속으로 미안함과 초조와 불안을 느낀다. 한번은 소노무가 홍타이시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홍타이시가 열정적으로 환대했다. 소노무는 술을 많이 마신 것처럼 하여 홍타이시에게 말한다: "황상은 형제를 너무 의지하지 마십시오. 곧 황상을 해할 것이니, 신중히 방비하십시오...." 말을 하면서 소노무는 눈물을 흘렸다. "황상이 있으면, 우리 몽골 각부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황상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 몽골은 어떡합니까."
홍타이시가 어떤 사람인가? 당연히 소노무의 이 말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망구얼타이가 '홍문연' 밀모를 한 것을 맹세후 이미 드러났다. 이 밀고자는 그의 자형인 소노무였다.
'홍문연'을 밀모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망구얼타이는 돌연 '급병에 걸려 말을 할 수 없게되어 죽었다" 이것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다. '불길한 징조'라고 보았다. 그래서, 계획에 따라 실시할 수 없게 된다. 2년후, 더거레이도 그의 형과 같은 증세로 '급사'한다.
망구얼타이와 동생 더거레이가 홍타이시의 손에 죽었는지 아닌지는 증거가 없으므로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그저 두 사람은 돌연 죽었으니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망구지와 홍타이시는 동부이모의 오누이간이다. 홍타이시의 아들 하오거는 소노무의 전처소생의 딸을 처로 취했다. 그래서, 망구지는 하오거의 고모이면서, 그의 장모이기도 하다.
천총9년(1635년), 홍타이시는 몽골의 린단칸을 격파하고, 린단칸의 8대 푸진(福晋, 부인)을 얻는다. 홍타이시 자신은 2명을 취하고, 다시 그중 가장 예쁘게 생긴 바이치(伯奇) 푸진을 아들 하오거에게 준다. 나머지 5명의 푸진은 모두 몇몇 왕야에게 나눠준다.
망구지는 이 일을 들은 후 크게 불만을 표시한다. 그녀는 바로 홍타이시를 찾아서 사람들 앞에서 홍타이시에게 묻는다: "네가 하오거에게 처를 취하게 하면, 내 딸은 어떡하느냐?" 홍타이시는 좋은 말로 달랬다. 망구지는 아예 듣지를 않는다. 한 발로 영장(營帳)의 문을 걷어차고 나가서 말을 타고 개원쪽으로 달려간다.
대패륵 다이샨(代善)은 이때 영장에 있었다. 여동생이 화를 내는 것을 보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급히 말을 타고 쫓아간다. 망구지를 따라잡은 후, 다이샨은 망구지를 자신의 영장으로 데려간다. 연회를 베풀어 잘 대접하면서 떠날 때는 여동생에게 선물도 많이 안겨준다.
홍타이시는 그 말을 듣고 말한다. "다이샨과 망구지는 원래 화목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와 망구지간에 갈등이 발생하니, 그는 망구지를 집안으로 불러서 식사를 접대하고, 선물까지 주었다. 그는 뭘 생각하는 것인가?" 그리고 말했다: "너희가 만일 이처럼 패란(悖亂)할 것이면, 다른 사람을 칸으로 세워서, 나를 대체하도록 하면 되겠다."
홍타이시는 바로 영장을 해체해서 떠난다.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고, 연속 8일간 궁문을 닫아걸고 조정의 일을 돌보지 않는다.
망구지는 홍타이시가 불같이 화를 내는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말했다: "나는 너의 누나이다. 말이 약간 과하다 하더라도 나에게 그렇게 크게 화를 낼 것이 있단 말인가?"
렁썽지는 원레 예허부 사람이다. 누르하치가 예허부를 멸망시킬 때 그를 포로로 잡아서, 정남기의 노예로 보낸다. 나중에 망구지가 소노무에게 개가할 때 그를 뽑아서 가노로 삼는다. 렁썽지는 출신이 비천하지만, 사람됨은 기민하고 교활했다. 눈치를 잘 살폈고, 아부를 잘했따. 이렇게 시간이 오래 흐르자, 망구지는 그를 중시하고, 그녀의 심복이 된다.
비밀리'홍문연'계획에 참여한 후, 정남기의 양패륵이 선후로 '급사'하고, 망구지가 다시 홍타이시와 싸우자, 바람부는대로 방향을 돌리는데 능숙한 렁썽지는 처지가 묘하게 되었다고 느낀다.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만일 언젠가 이 일을 누가 고발하면, 자신은 생명을 잃을 뿐아니라, 온 가족도 연루되어 주살당할 것이다. 이리 저리 생각한 후, 렁썽지는 창끝을 거꾸로 돌리기로 결정한다.
천총9년(1635년) 십이월, 렁썽지는 형부의 격을 두드리고 신문고에 오른다. 형부패륵 지얼하랑을 만나기를 청한다. 중대한 기밀을 얘기하겠다고 한다.
지얼하랑은 그 말을 듣고 즉시 달려간다. 렁썽지는 정남기 패륵이 생전이 망구지 공주와 '홍문연'계획을 밀모했다고 모조리 얘기한다. 지얼하랑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즉시 렁썽지를 데리고 입궁하여 홍타이시를 만난다.
홍타이시는 렁썽지의 말을 듣고, 전혀 놀라는 표정을 짓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한다: "좋다. 좋아. 이 사건은 만일 정남기 패륵이 살아있다면 너의 고발의 공로는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고발해도 늦지는 않았다. 늦지는 않았다."
홍타이시의 말을 듣고 렁썽지는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위험했구나. 원래 황상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만일 내가 한걸음 늦었더라면, 아마도 정말 늦었을 것이다."
"홍문연"사건이 폭로된 후, 형부는 명을 받아 사건을 조사한다. 이 사건의 관련인원이 너무 많아서, 형부의 수사인원만으로는 부족하여, 황상에게 청하여 정황기, 상황기의 각 우록에서 많은 인마를 차출하여 이 사건을 조사했다.
형부는 먼저 한 무리의 인마를 파견하여 밤을 세워 개원의 공주부로 보낸다. 공주 망구지와 부마 소노무를 체포한다. 그리고 다시 병사를 나누어 망구얼타이왕부, 더거레이왕부 및 정남기 주장 툰부루, 아이바리등의 집을 포위한다. 그리고 모든 가족을 체포하여, 감옥에 넣는다. 범인이 지나치게 많아서, 성경의 감옥은 일시에 사람으로 가득차게 된다.
형주는 망구얼타이왕부에서 목패인(木牌印) 십육면(十六面)을 찾아내는데, 그 위에는 "금국황제지인(金國皇帝之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모반의 중요증거로 인정되었다. 주요범인인 망구지, 소노무, 툰부루, 아이바리도 모조리 자백하고 부인하지 않았다. "모위사직(謀危社稷)", "역적창저(逆迹彰著)"등 죄명이 성립되었다.
행형전ㅇ, 홍타이시는 사람을 복릉(福陵)에 보내어 누르하치의 영위에 이 사건을 보고한다. 그리고 구문부근의 '선한궁(先汗宮)'으로 가서 선칸의 두 유비(遺妃)에게 보고한다.
마지막 결과는 홍타이시가 자신의 누나인 망구지 공주를 능지처참한 것이다. 망구얼타이의 장남 어비룬(額必倫)은 사형에 처하고, 나머지 5명의 아들은 서인으로 되어, 나머지 왕야의 노비가 된다. 툰부루, 아이바리 두 사람 및 그들의 모든 형제, 자질은 모조리 능지처참된다. 여러 해동안 성경의 형장은 비명성이 끊이지 않았고, 이를 듣는 사람들은 모조리 심경육도(心驚肉跳)했다.
부마 소노무는 사전에 홍타이시에게 암시를 주어, 고발한 것과 같이 취급되어 죄를 사면받는다.
렁썽지는 고발에 공로가 있어, 툰부루, 아이바리 두 집안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상으로 내린다. 그리고 그에게 삼등갑라장경의 세습직을 내린다. 세습망체이다. 그리고 그에게 각종 세금납부를 면제해주는 특권을 준다.
동시에, 정남기의 건제는 취소되고, 구성원들은 각각 정황기, 상황기의 양기에 편입된다. '팔기'는 졸지에 '칠기'로 줄어든다. 그러나 얼마 후, 홍타이시는 다시 정남기를 회복시킨다. 그러나 회복후의 정남기는 예전과 전혀 달랐다.
숭덕원년 정월, 공부는 망구얼타이와 더거레이의 분묘를 파괴하여 평지로 만든다. "이미 차가워진 해골을 다시 버리고" 묘안의 모든 부장품 금은기물은 국고에 넣는다. 홍타이시는 이 소식을 들은 후, 공부에 명령하여 묘를 원래의 모양으로 회복시키게 한다.
사료의 기재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처결된 관련인원이 1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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