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소우(史小雨)
소수의 청나라 만주족들이 어떻게 인구가 수백배에 이르는 한족주민들을 통치할 수 있었을까? 살펴보면 아래의 몇 가지 수단으로 종합될 수 있다:
첫째, 물자통제
통치받은 대다수의 보통백성을 대하면서 만주족 통치귀족들은 한 가지 오래된 경험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매(해동청)를 기를 때, 배가 부르면 날아가버리고, 배가 고프면 주인을 쫀다." 그래서 방법을 강구해서 백성들이 시종 온포선(溫飽線)상에서 오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백성들은 하루종일 먹고 살기 위해서 뛰어다녀야 하면, 권리나 반항을 생각할 여유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상층에서 장악한 잉여물자는 더욱 큰 작용을 한다. 어떤 때는 위에서 누구를 살게 하고 싶으면 그들을 살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배하는데 유리하다.
둘째, 사상통제
상층계급을 확정하고, 안정을 유지하는데 유리한 등급제도의 "정확"한 사상으로 백성의 사고를 통제했다. 이는 스스로를 도덕과 진리의 화신이라고 표방하면서, 미연에 반란을 방지하고, 대다수의 사람의 사상을 개조할 수 있다.
셋째, 사회통제
민중간에 상호 견제하는 사회국면을 형성한다. 암중으로 하층과 하층이 싸우게 만드록, 민중과 민중이 싸우게 만든다. 이런 투쟁이 통제불능상태로 번지지만 않으면 이런 갈등은 그면 클수록 상층의 권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즉, 하층민중의 투쟁에서 숭패의 관건이 될 수 있다. 평상시에 민중들간의 신뢰를 야고하시킬 수 있다. 공동으로 외족의 압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단결하여 반항할 수 없게 된다. 이전에 한족은 소수민족에 대하여 '이이제이'의 수법을 썼는데, 이제는 소수민족인 만주족통치자다리 마찬가지로 '이화제화'의 수법을 쓴 것이다.
넷째, 인격통제
노신은 말했다: 강자는 더욱 강자를 향해서 검을 뽑고, 약자는 더욱 약자를 향해서 검을 뽑는다고. 건강한 인격은 당연히 강자에 비굴해지지 않고, 약자를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만주족 귀족들은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누구든지 약자르 더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그에게 더욱 헤택을 주었고, 발탁을 했다. 이렇게 하여 점차 노예인격이 형성된다. 윗사람에 대하여는 더욱 아부하고, 아랫사람에 대하여는 더욱 발호하는 것이다. 윗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아랫사람에게 푸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관리의 정서를 안정서키고, 위에서 아래로 통치하는 것이 안정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인격을 가져야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렇게 되면 이런 성격이 더욱 널리 퍼지게 된다. 설사 관리가 아니더라도, 대다수인들은 항상 강약을 구별하고, 항상 약자를 괴롭힌다. 일단 누구든지 이런 인격이 형성되면 반항의 위협은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 철칙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강자를 만나면, 그들은 바로 굴복을 선택한다. 누구도 국가기관을 장악한 만청정부기구보다 강대할 수는 없으므로, 정부에 대한 복종은 가장 철저하게 되는 것이다.
노예인격 이외에, 깡패인격도 양성한다. 마찬가지로 암중조작을 통하여, 누구든지 후흑(厚黑)수준이 높고, 후안무치한 행동을 많이할수록 실제 생활에서 보통사람보다 더욱 득세하는 사회국면을 만드는 것이다. 깡패인격이 확산된 결과는 민중간에 신뢰와 단결이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갈수록 다른 사람을 깡패로 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깡패의 말은 믿지 않으므로,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단결하기 어려워진다.
5. 정치통제
만청정부가 통제하는 정치조직이외의 조직을 만들 수 없게 한다. 민중들은 극도로 자아조직과 정치경쟁의 경험이 결핍되어 있다. 조직으로 무조직을 상대하면 승산이 어디에 있을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6. 군사통제
만청에 완전히 충성하는 군사타격기구를 양성한다. 즉 팔기군이다. 이 기구에는 특수한 대우를 해주어 모든 구성원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가장 좋은 생활여건과 사회지위를 보장받는다. 만청에 시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복종하는 앞잡이가 되는 것이다.
7. 정보통제
최대한 다른 문명사회와의 교류를 제한한다. 민중의 비교심리를 차단한다. 비교하지 않으면 우열이 없다. 그래야 중국이 여전히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상을 유지할 수 있다. 천조대국의 환상은 민중으로 하여금 기존현상에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과 역사사건 > 역사사건 (청 초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왕조는 왜 금왕조를 숭상하고 인정했는가? (0) | 2016.06.29 |
---|---|
"소흥사야(紹興師爺)" 부침록 (0) | 2016.02.18 |
청나라의 "동북삼성(만주)"에 대한 봉금(封禁)과 치금(馳禁) (0) | 2015.03.26 |
탕빈(湯彬): 청나라 최초의 문정공(文正公) (0) | 2015.02.10 |
6만명의 부락이 어떻게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전중국을 통치했을까? (0) | 2014.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