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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채옹(蔡邕): 삼국시대 너무 뛰어나서 죽임을 당한 문인

by 중은우시 2015. 6. 18.

글: 이치아(李治亞)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요요자이결(嶢嶢者易缺), 교교자이오(皎皎者易汚)". 그 의미는 품행이 고결하여 옥석과 같이 흰 사람은 아주 쉽게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성격이 강직하고 뛰어난 사람은 왕왕 쉽게 비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이 말하는 "목수어림(木秀於林),풍필최지(風必摧之); 퇴출어안(堆出於岸),류필단지(流必湍之); 행고어인(行高於人),중필비지(衆必非之)"(나무가 숲에서 두드러지면 바람이 반드시 꺽어버리고, 흙무더기가 언덕밖으로 튀어나와 있으면 물이 반드시 깍아내며, 행실이 다른 사람보다 높으면, 반드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삼국시대에 바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각 분야에서 모두 우수한 예술가였다. 시부(詩賦)를 잘 했을 뿐아니라, 당시에 아주 유명했다. 그리고 회화, 서예도 당시에 독보적이었다. 더더욱 돋보이는 것은 수술(數術), 천문에도 정통했다는 것이다.

 

채옹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학문을 가지고 조정에 기여하고 싶었다.이런 말이 있다. "문무의 기예를 잘 익히면, 제왕가에 팔아먹는다" 누구도 자신이 가진 일신의 재주를 그냥 무덤으로 가져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건녕3년, 당시 조정의 사도(司徒) 교현(喬玄)의 부름을 받아, 대한왕조의 공무원이 된다. 하평현장에서 시작하여, 점점 조정에서 낭중이 되고, 얼마 후에는 의랑으로 승진한다.

 

채옹은 뼛속부터 문인이었다. 자연히 문인의 기질이 있다. 그는 조정에서 관직에 있으면, 당연히 조정을 위하여 간뇌도지(肝腦塗地)해야 한다고 여겼다. 한영제는 채옹에게 재능이 있는 것을 알아서 국가대사를 그에게 묻는다; "최근 들어 재해와 변고가 발생하는데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조정은 마음이 초조하고, 짐도 마음 속으로 두렵다. 여러 신하들과 선비들을 방문하여, 충언을 들어보고자 하였으나, 그들은 모두 입을 꽉 다물고 말하지 않으며, 마음을 다 하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경학의 깊이가 심후하니, 짐이 특별히 그대에게 묻는 것이니, 경은 득실을 잘 설명하고 정치의 요점을 알려달라. 그저 자신의 의견이 없이 따라서 말하거나, 의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경술대답으로 하여 비밀을 유지할테니,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달라" 채옹은 그래서 상소를 올려 부인, 환관이 정치에 간여하는 것을 언급하며 그것이 괴이한 현상이 나타난 원인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태위 장호, 광록훈 위장, 장수교위 조현, 돈기교위 개승등이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고발하며, 정위 곽희, 광록대부 교현, 전임태위 유총을 추천하며, 그들에게 조정의 일을 묻고 의논하면 된다고 말한다. 한영제는 그가 올린 글을 보고 탄식하더니 몸을 일으켜 측간으로 간다. 그가 측간에 간 사이이 환관 조절이 몰래 훔쳐보고, 좌우의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누설한다. 그리하여 그가 올린 상소가 다 알려지게 된다. 얼마후 채옹은 감옥에 갇히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다.

 

그후에 계속 강호에 은거해 있었다. 동탁이 정권을 잡은 후, 채옹에게 재주와 학문이 있으며, 아주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극력 그에게 관직을 맡으라고 한다. 채옹이 오지 않자, 동탁은 오지 않으면 너의 온 집안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채옹은 할 수 없이 명을 받든다. 그는 대리제주(代理祭酒)에 임명되고, 동탁의 신임을 받는다. 더 높은 자리로 발탁되어 시어사, 치서어사, 상서가 된다. 3일내에 3대를 모두 섭렵한다. 그리고 다시 파군태수에 임명되고 경성에 남게 하여 시중의 자리를 내린다.

 

동탁은 아주 거친 깡패군인이다. 황제가 그를 상보(尙父)로 부르게 하고자 하며, 스스로를 강태공에 비교하고자 했으나, 채옹은 안된다고 한다. 동탁은 할 수 없이 포기한다. 동탁은 채옹의 재능과 학문을 아주 존중하고, 그에게 겸손하게 대했다. 연회를 거행하면, 왕왕 채옹으로 하여금 북과 금을 연주하여 흥을 돋구게 하였고, 채옹도 그렇게 할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동탁은 강퍅자용하여, 동탁이 자신의 말을 많이 들어주지 않는데 대하여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당제인 채곡에게 말한다: "동공은 성격이 강렬하여 쉽게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큰 일을 성사시킬 인물은 아니다. 나는 연주로 도망치고 싶다. 다만 길이 너무 머니, 쉽게 갈 수가 없다. 잠시 산동에 피해 있고 싶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채곡이 말한다: "당신의 용모는 보통사람과 다르다. 길을 가면 보는 사람이 운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숨어 있고 싶어도 어려울 것이다." 채옹은 그제서야 도망칠 생각을 포기한다.

 

동탁이 여포에게 죽은 후, 채옹은 사도 왕윤과 얘기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동탁을 언급하고 탄식하며 얼굴색이 변한다. 왕윤은 대노하며 그를 질책한다: "동탁은 국가의 큰 도적이다. 하마터면 한나라 황실이 무너질 뻔했는데, 너는 신하된 자로서 같이 미워해야지, 자신이 잘 대우받았다는 것만 생각하고, 근본을 잊을 수 있는가. 현재 하늘이 죄있는 사람을 주살하였는데, 너는 오히려 그것을 가슴아파 한다. 너도 같은 역적이란 말이냐." 이어서 채옹을 압송하여 정위로 하여금 치죄하게 한다. 채옹은 사직과 사죄의 글을 올려 얼굴에 먹을 새기고, 두 발을 자르는 형벌을 내려달라고 청하며, 계속하여 한사(漢史)를 다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사대부들은 대다수가 그를 동정하여 그를 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다. 대신 마일선이 나서서 구해주려 하였으나, 거절당한다. 그는 돌아와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왕윤은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할 것같다. 도덕이 있는 사람은 국가의 기강이다. 글을 쓰는 것은 국가의 전적이다. 기강과 전적을 버리게 되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얼마후 채옹은 감옥 안에서 죽는다. 왕윤이 후회하며 그를 죽이는 것을 저지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것이다.

 

채옹은 인재였다. 군인깡패 동탁은 자신의 학문이 얕은 것을 알고, 채옹을 데려다가 보완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를 아주 중용한 것이다. 비록 표면적이기는 했지만, 채옹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왕윤은 동한의 동량이다. 사람들이 왕좌지재(王佐之才)라고 부르는 인물이다. 곁에 채옹과 같은 우수한 인재가 있으면 자연히 질투심이 나기 마련이다. 문인상경(文人相輕. 문인은 서로를 높이 평가해주지 않는다)은 자고이래로 있었다. 그래서 작은 잘못을 찾아서 채옹을 죽여야 마음이 시원했던 것이다. 채옹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동탁의 손에 죽지 않고, 문인 왕윤의 손에 죽을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