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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전)

1949년 신중국 성립이후 중국의 "황제"

by 중은우시 2015. 10. 19.

ㅗ정곤,작자: 미상

 

모두 알다시피 중국최후의 공인된 황제는 선통제 부의이다. 부의 이후, 원세개 대총총은 복벽하여 황제에 올라 83일간 황제를 지낸다. 그러나 전국백성들에게 욕을 얻어먹다가 결국 우울하게 생을 마친다.

 

만일 "황제"가 원세게에게서 끝났다고 본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중화민국시대는 놔두고, 1949년 신중국이 성립된 이후만 보더라도, 황제에 오른 인물이 10명이 넘는다.

 

1. 석정무(石頂武)

 

석정무는 호남 상담 사람으로 대지주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삼기보도(三期普度)"라는 종교조직을 만들어 봉건미신으로 신도를 끌어모았다. 석정무의 대에 이르러 "삼기보도"의 세력은 최전성기에 이른다. 신도가 많아지고, 천하가 어지러운 틈을 타서 1947년 석정무는 "대중화불국(大中華佛國)"을 건립하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다. 그리고 좌우승상을 두고, 군대를 조직하여 총사령관과 부총사령관을 임명한다.

건국후에도 석정무는 계속 황제 놀음을 했다. 그는 국민당이 대륙에 잔류시킨 특무조직과 연결한다. 1953년, 석정무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준비할 때, 공안에 체포된다. "대중화불국"은 잠시 잠수상태가 된다.

왜 잠수상태라고 하는가? 왜냐하면 30년 후엔 1983년, 다시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등극'한 사람은 석정무의 아들 석금흠(石金鑫)이다. 그러나 금방 현지 공안기관에 진압되고, '대중화불국'은 철저히 소멸한다.

 

2. 주사강(朱仕强)

 

그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부족하다. 그저 대파산(大巴山) 일대에서 "황제"에 올랐고, 황제에 오른 때는 1980년이다. 그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겨우 7일간 황제로 있다가 촌간부에 의하여 진압된다.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황제'라 할 수 있고, 그저 희극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3. 정흥래(丁興來)

 

정흥래는 맹인이고, 종교조직 "도덕금문(道德金門)"의 우두머리이다. 1981년에 그는 정식으로 등극하여 황제를 칭한다. 황제가 된 후 한 첫번째 일은 바로 정궁낭낭, 서궁낭낭 합계 4명을 책봉한 것이다. 비교적 은밀히 이루어져서 1990년이 되어서야 정흥래는 현지 공안당국의 주목을 받고 소멸되었다.

 

4. 장청안(張淸安)

 

장청안은 대파산 사람이다. 1982년 정식으로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황청(皇淸)'이라 한다. 그는 옥새를 새겼을 뿐아니라, 후궁과 여러 대신들도 책봉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가 장개석을 "위국왕(威國王)"에 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지'를 써서 '황제'도 장을 찍어 우체국을 통하여 대만으로 부쳤다. 아쉽게도, 이를 부치기도 전에 장청안은 공안기관에 체포되어 버린다.

 

만일 장청안이 조금 더 빨리 움직여서 체포되기 전에 '위국왕'에 봉하는 유지를 부칠 수 있었다면, 이를 본 장개석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하다.

 

5. 증응룡(曾應龍)

 

증응룡은 사천 광안 사람이다. 1985년, 증응룡은 황제를 칭하고, '대유국(大有國)'을 건립한다. 당시, 계획생육(가족계획)을 비교적 강력하게 시행했는데, 대유국의 구호중 하나는 '자식은 마음대로 낳는다'는 것이었다.

 

증응룡은 제대로 놀았다. 그는 일찌기 수백명의 농민을 이끌고 현의원(縣醫院)을 공격하여, 의원의 모든 의사, 간호사포로로 잡고, 모든 피임용품을 없애버린 바 있다. 이 일은 현지의 주둔군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당연히 해방군이 출동하자마자 증응룡 황제와 그의 대신들은 바로 무너지고, '대유국'은 멸망한다. 정부는 이들이 우둔하고 무지한 것을 고려하여 증응룡에게 무기징역의 형을 내린다.

 

6. 조정곤(晁正坤)

 

조정곤은 산동 안구 사람이다. 그녀는 현지의 유명한 무파(巫婆)이다. 그녀는 여황 무측천을 본떠서, 1986년에 '황제'를 칭하고, '대성왕조(大聖王朝)'를 건립한다. 그녀가 무측천을 가장 잘 배운 것은 바로 자신의 '후궁'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남(童男)을 찾는다. 나중에 현지정부에 진압된다.

 

7. 이성복(李成福)

 

이성복은 하남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당나라황족의 후예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대당왕조를 재건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한다. 1990년 이성복은 '만순천국(萬順天國)"의 정식건립을 선포하고, 자신이 황제에 오른다. 그리고 '윤칠불윤팔(閏七不閏八), 윤팔동도살(閏八動刀殺)"이라는 민간예언에 근거하여 호피로 깃발을 만들어 윤팔월에 거병하려고 준비한다. 그는 옜 황력을 찾아서 가장 빠른 윤팔월이 1995년에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성복은 1995년까지 버티지 못하고 3명의 파출소 순경에게 진압당한다. 잘못 본 게 아니다. 딱 3명이다.

 

나중에 이성복의 아들 이욕명(李慾明)이 부업을 승계하였으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압된다. 이씨집안이 대당왕조를 부활시키려는 바램은 이렇게 끝이 난다.

 

그 외에 대파산 일대의 임문용(林文勇), 조가원(曹家元)도 황제를 칭하나, 그들도 고향사람인 주사강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어린애 장난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