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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

[황자쟁위술] 이퇴위진술(以退爲進術) 양중득위패(讓中得位牌) 당현종편

by 중은우시 2015. 8. 13.

 

이융기(李隆基, 나중의 당현종)는 당고종과 무측천의 넷째아들인 이단(李旦)의 셋째아들이다. 신룡혁명(神龍革命)으로 무측천이 황위에서 물러난 후, 당고종과 무측천의 셋째아들인 이현(李顯)이 황위에 오르니 그가 당중종이다. 황제동생의 셋째아들에 불과하다보니 이융기가 황제에 오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당중종 사망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당고종과 무측천의 딸로 그에게 고모가 되는 태평공주(太平公主)와 손을 잡고 당중종의 황후 위후(韋后)와 딸 안락공주(安樂公主)를 몰아낸다. 그리고, 당중종의 아들로 위후에 의하여 세워진 허수아비황제 이중무(李重茂)를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의 부친인 이단을 황제에 앉히니 그가 당예종(唐睿宗)이다. 당예종은 적장자인 이성기(李成器)를 황태자로 삼는다.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당륭정변(唐隆政變)”이라 부른다.

 

이융기의 야망은 스스로 황제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증조부인 이세민이 어떻게 황태자가 되고 황제가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당나라를 보면 적장자가 아니라고 하여 황제에 오르지 말란 법은 없다. 그리하여, 그는 한편으로 자신이 위후와 안락공주를 몰아내고 사직을 안정시킨 공로를 널리 선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부친 당예종에게는 적장자를 택할지 공로가 있는 아들을 택할지를 고민하게 만들고, 형인 황태자 이성기도 압박한다. 결국 이성기는 스스로 황태자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길을 선택하고 이렇게 글을 올린다: “국가가 안정되었을 때는 적장자인 아들을 우선해야 하지만, 국가가 위기일 때는 공로가 있는 아들을 우선해야 한다. 평왕(이융기를 가리킴)은 나라에 공이 크다. 신(이성기를 가리킴)은 죽어도 감히 평왕의 윗자리에 있을 수 없다.” 아마도 이 말은 그의 진심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융기가 사방에서 활동하며, 만일 이성기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면 이건성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은근히 협박한 결과일 것이다. 이융기와 같이 당륭정변을 일으킨 유유구(劉幽求)는 당예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이 듣기로 천하의 화난을 제거한 사람이 천하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평왕(이융기)는 사직의 위기를 구했으니 공로가 더할 수 없이 큽니다.” 이 말에 숨은 뜻은 당예종은 아무런 공로없이 황제에 올라 복만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당예종은 그의 말을 듣고 등에 식은 땀이 흘렀을 것이다. 결국 당예종은 이융기를 황태자로 삼는 조서를 내린다.

 

마침내 그는 핵심인 두번째 관문도 넘었다. 부친도 그를 황태자로 봉하는 조서를 내리고, 형인 이성기도 황태자의 자리를 그에게 양보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이융기는 여러 번 태자의 자리를 사양하는 쇼를 벌인다. “다시 글을 올려 성기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 그리고 다음해 오월에 다시 글을 올려 “송왕에게 태자의 자리를 양보했으나,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다.” 그런데, 이때 이융기는 동맹을 맺었던 태평공주와 사이가 벌어진다. 당예종은 처음에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먼저 태평공주의 의견을 들었으나, 갈수록 태자 이융기의 의견을 듣게 된다. 그러자, 태평공주는 이융기를 황태자의 자리에서 몰아내려고 계획하게 된다. 그녀는 이융기가 장남이 아니어서 태자의 자격이 없고 더더욱 황위를 물려받아서는 안된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하고, 술사를 시켜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리게 한다: “혜성은 옛것을 혁파하고 새것을 세우라는 것이다. 제좌(帝座)와 심전성(心前星)에 모두 변고가 있으니, 황태자가 황제에 오를 것이다.” 그 의도는 이렇게 하면 당예종이 태자 이융기를 폐위시킬 것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런데, 당예종은 태평공주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결정을 내린다. 아예 황위를 태자에게 양위하겠다고 한 것이다. 다만, 3품이상관리의 임면권과 군정대권은 여전히 당예종의 권한으로 남겨둔다. 이융기는 처음에 황위를 자신에게 양위하겠다는 말을 듣자, 부황이 그의 속마음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급히 부황을 알현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다: “신은 자그마한 공밖에 세운 게 없는데도, 차례에 맞지 않게 태자의 자리에 올라, 임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폐하께서 전위를 하신다고 말씀하시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당예종은 이렇게 말한다: “사직이 다시 안정을 되찾고,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네가 힘쓴 덕분이다. 그리고 제좌에 변고가 있다고 하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아니냐. 너는 의심할 것 없다.” 이융기는 당예종의 말을 듣고 내심 기뻐서 어쩔 줄 몰랐으나, 겉으로는 재삼 사양한다. 그러자, 당예종은 “왜 굳이 내 관앞에서 등극하려는 것이냐?”라고 말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칠일후인 칠월 임신일 전위할 때도 이융기는 다시 한번 고사하는 상소를 올려, 자신은 부득이하게 황위를 넘겨받는다는 겉모습을 취한다.

 

이융기가 이렇게 황태자의 자리와 황제의자리를 재삼 고사한 것은 세 가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첫째는 전황태자 이성기의 일파로 하여금 원한을 품지 않게 하는 것이다. 최소한 그들이 태평공주의 편에는 서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이성기와 태평공주라는 반대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전심전력을 다하여 자신을 보위해달라고 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는 조정대신들이 발호하는 태평공주와 비교하여 자신을 동정하고 지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융기는 계속되는 겸양과 고사를 통하여 이 세 가지를 모두 얻어냈고, 결국 순조롭게 황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알 수 있다. 황위를 놓고 벌이는 투쟁에서 “양보”와 “고사불수(固辭不受)”는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인심을 회유하거나,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이거나, 가련한 모습을 보여 여론의 동정을 사려는 것이며, 최종승리를 얻기 위한 핵심전략중 하나일 뿐이다. 단지, 상황상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보고서 물러나는 황자들의 “양보”와 “고사”만이 진심이지만, 이 진심은 정말 부득이한 것이고, 가슴쓰라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