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위계승후보자들 가운데 실력이 엇비슷한 경우에 둘이 황위를 놓고 다투다가 상처를 입어 둘 다 황위를 놓치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제3의 황자가 황위를 승계하는 사례가 제법 많다. 그 제3의 황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저절로 굴러들어온 황위를 받은 경우도 있지만,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도록 유도하여 황위를 차지한 사례도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순치제의 경우이다.
숭덕8년(1643년) 8월9일 청태종 홍타이시가 사망한다. 청태종이 사망하자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청나라초기에 황제는 귀족회의에서 추대되는 방식을 취했고, 청태종도 그런 방식으로 황제에 올랐고, 그도 죽을 때까지 황태자를 세우거나 후계자를 세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귀족회의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황위를 노릴 수 있는 실력자들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친왕(禮親王) 따이샨(代善). 예친왕은 누르하치 사후에 실력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동생인 청태종 홍타이시에게 황제위를 양보한 바 있다. 실력으로도 양홍기(정홍기, 상홍기)를 장악하고 있어, 3기(양황기, 즉 정황기와 상황기, 그리고 정남기)를 장악한 황제 본인을 제외하고는 가장 막강한 실력을 가졌다. 그러나, 이 때 따이샨의 나이가 이미 63세였고, 수년간의 전투로 체력이 소모되었으며, 나이가 들면서 정치에 점차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황위를 차지하기는 어려웠지만 그의 태도는 차기황제를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둘째, 숙친왕(肅親王) 하오거(豪格). 하오거는 1609년생으로, 청태종 홍타이시의 첫째 아들이다. 모친은 계비인 우라나라씨(烏拉那拉)이다. 성격이 용감하고 무를 좋아하여 어려서부터 부친을 따라 여진족을 통일하는 전투에 많이 참여하여 공이 컸다. 홍타이시의 직계인 양황기와 정남기는 그를 지지했다.
셋째, 예친왕(睿親王) 도르곤(多爾袞). 도르곤은 누르하치의 열네째아들로, 청태종 홍타이시의 동생이다. 모친은 누르하치 사후에 순장된 대비 아바하이이다. 스스로 상백기의 기주이며, 동생인 도도가 정백기의 기주이므로 양백기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 황제를 옹립하는 귀족회의를 구성하는 팔기(八旗)의 현황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양백기. 누르하치 생전에 스스로 양황기와 상백기를 직할하였고, 홍타이시가 정백기를 통할하였다. 그런데, 누르하치 사후 홍타이시가 황제에 오르면서 자신이 통할하던 정백기의 사람을 양황기로 옮기고, 기존의 양황기의 사람을 양백기로 옮겨버렸다. 이로 인하여, 누르하치가 재위하던 시절에 황제의 직할기였던 양백기(원래의 양황기)는 홍타이시가 황제에 오른 이후 지위가 형편없이 떨어진다. 이로 인하여 원래의 황제직할부대의 영예를 찾으려는 양백기의 입장은 단호하였다. 양백기출신을 황제에 옹립함으로써 양백기가 다시 황제직할부대가 되어야 했다. 이 때 정백기는 도르곤의 동생인 도도가 이미 장악하였고, 상남기는 도르곤에 의하여 완전히 장악되어 있었다.
양황기. 양황기는 원래 홍타이시가 관장하던 정백기의 인물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청태종의 직할기이다. 양황기에 속해 있는 만주족들은 양황기내에서 차기황제가 나와야 자신들이 황제직할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청태종의 아들중에서 황제가 나올 것을 주장하게 된다. 양황기의 8대신이라고 불리우는 투르거(圖爾格), 소니(索尼), 투라이(圖賴), 시한(錫翰), 공아다이(鞏阿垈), 아오바이(鰲拜), 탄타이(譚泰), 타잔(塔瞻)은 하오거의 집에 모여 "하오거를 차기 황제로 한다"는데 합의한다.
양홍기. 양홍기는 따이샨이 통할하고 있는데, 정홍기는 직접 통할하고,상홍기는 자신의 장자인 웨투오(岳托)에게 관할하게 한다. 양홍기는 하오거와 도르곤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나중에 푸린을 옹립하는 중심역할을 하게 된다.
양남기. 양남기중 정남기는 원래 누르하치의 5째아들인 망구얼타이가 관할하였는데, 망구얼타이가 죄를 지어 삭탈된 후 정남기는 청태종이 직할로 관할하게 된다. 상남기는 원래 아민이 관할하다가 역시 아민이 유폐된 후 지르하랑이 관할하게 된다. 정남기는 청태종의 직계이므로 하오거의 편이었고, 지르하랑의 상남기도 양황기의 입장에 가까운 편이었다.
이상의 세력을 보면, 도르곤은 양백기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고, 하오거는 양황기와 양남기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따이샨의 양홍기는 중립을 취하면서 후에 푸린을 옹립하는 쪽에 서게 된다.
한편, 청태종은 1명의 중궁(中宮)과 4명의 비(妃)를 두었는데, 중궁은 몽고족인 보르지지터씨인데, 아들이 없었고, 첫째 비인 관조궁(동궁) 신비 하이란주는 중궁인 보르지지터씨의 조카인데 역시 아들이 없었다. 둘째 비인 인지궁(서궁) 귀비는 나무종씨로 원래 몽골 차하르부의 린단칸의 처였는데, 청태종은 차하르부를 함락시킨 후 자신의 비로 삼았다. 귀비와의 사이에는 보무보고르라는 아들을 두고 있다. 셋째 비인 연경궁(차동궁) 숙비는 바트마차오로서 역시 몽골 린단칸의 첩이었는데, 청태종이 비로 삼았다. 넷째 비인 영복궁(차서궁) 장비 부무부타이도 보르지지터씨로써 중궁의 조카이고 신비의 동생이며 청나라초기의 실력자로 유명한 효장태후이다. 아들로 푸린(福臨)이 있다. 청태종의 아들중에서 하오거는 계비 소생이고 정식 비로 봉해지지 않았으므로 모친의 지위가 낮은 편이다. 지위로 따지면 푸린과 보무보고르가 정비 소생이므로 귀하지만, 당시 나이가 5살, 2살에 불과하였다.
하오거의 당시조건으로서 유리한 점은 첫째, 청태종의 장자라는 점이며, 당시 35세(숙부인 도르곤보다도 3살이 많았다)로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였다. 둘째, 재능이 출중하였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용모가 범상하지 않았고, 활과 말을 잘 다루었으며, 과단성있고 지략이 있었다고 한다. 셋째, 오랜 전투에서 전공을 쌓아왔다. 넷째, 청태종이 직접 관장하던 양황기, 정남기의 지지를 받았고, 특히 양황기의 대신들은 죽음으로써 보호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다만, 약점이라면 하오거는 모친의 신분이 미천하였고, 팔기중의 하나의 기주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도르곤의 당시조건으로서 유리한 점은 첫째, 누르하치의 열네째아들로서 청태종의 동생이며 당시 나이가 32살로 한창 활동할 나이라는 것이다. 둘째, 누르하치의 총애를 받았으며 일찌기 누르하치가 "도르곤을 차기 황제로 세우되, 나이가 어리니 따이샨이 섭정을 하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따이샨이 황위를 홍타이시에게 양보하였다. 셋째, 도르곤형제가 정백기와 상백기의 기주였다. 넷째, 당시의 실력자인 ‘4대친왕, 3대군왕’중 3명이 도르곤의 형제이다. 4대친왕은 하오거, 도르곤, 따이샨, 지르하랑이고 3대군왕은 아지거, 도도, 아다리(따이샨의 손자)이다. 아지거는 도르곤의 형이다. 다섯째, 도르곤은 여러번 출정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도르곤의 약점은 청태종의 아들이 아니라 동생이라는 점, 양황기가 결사반대한다는 점이었다.
차기황제를 뽑기 위한 귀족회의는 도르곤측과 하오거측의 격렬한 대립으로 결론을 내지 못한다. 하오거 지지파들은 ‘아들’이 황위를 승계해야한다는 논리를 내놓고, 도르곤측은 누르하치가 도르곤을 황제로 삼으라고 했다고 주장하며 치열하게 대립한다. 이때, 나중에 효장태후가 되는 부무부타이는 푸린을 황제로 삼고, 도르곤과 지르하랑이 섭정을 하는 방안을 가지고 따이샨, 지르하랑을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도르곤도 자신이 황제가 되는데에는 양황기가 결사반대하여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어린 푸린을 황제에 올리고 자신이 섭정왕이 되면 사실상 황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동의한다. 이렇게 되자, 아들이 황제에 올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던 하오거측으로서도 푸린을 황제로 하고, 도르곤과 지르하랑이 섭정하는 방안을 반대하기 어렵게된다.
이렇게 하여 푸린은 도르곤과 하오거의 황위다툼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하여(그는 5살에 불과하여 모친인 효장태후가 노력한 것이지만), 결국 어부지리로 황제위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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