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

[황자쟁위술] 여론제조술(輿論製造術) – 신화이기패(神話利己牌)

중은우시 2015. 7. 27. 22:07

 

주(周)왕조때부터 군왕이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天子)”로 칭한 후, 황제가 되려는 자들은 스스로 ‘천명(天命)’을 받았음을 입증해야 했다. 그리하여, 진승오광의 난, 백련교의 난,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실패한 혁명에서부터 유방, 징기스칸, 조광윤, 주원장, 누르하치등 각 왕조의 창업자들도 모두 신기한 태몽을 꾸었다든지, 붉은 빛이 온 방안에 가득했다든지, 기이한 향내가 났다든지, 지붕에 상서로운 구름이 걸렸다든지 하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황제에 오르려는 황자들도 만일 하늘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전설을 만들어내면 후계자가 되는데 유리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중국역사상 많은 황자들이 이런 전설을 만들게 된다. 다만 여기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성공하면 괜찮지만, 실패하게 되면 대역무도의 죄명을 뒤집어 쓴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은 황제에 오르기 위하여 몇 가지 신기한 신화를 만들어 낸다. 이름있는 도사였던 왕원지(王遠知)는 미복(微服)을 하고 그를 찾아온 이세민과 방현령(房玄齡)을 보자 “이 중에 성인(聖人)이 계시는데, 혹시 진왕(秦王)이 아니십니까?” “태평천자가 되실 겁니다”라고 말했다든지 이밀(李密)이 이세민의 머리 위에 있는 오색구름을 보고 그가 “진영주(眞英主)”여서 화란을 평정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퍼트린다.

 

이세민의 증손자인 당현종 이융기(李隆基)는 황제에 오르기 전에 그의 부친 이단(李旦)과 함께 융경방(隆慶坊)에 살고 있었는데, 동네주민들이 이런 말을 퍼트린다: “왕부의 우물에서 물이 흘러넘쳐 큰 연못이 되어 면적이 수십경에 이르렀고 이를 융경지(隆慶池)라 불렀다.” “항상 구름이 끼어 있고, 황룡이 거기서 나온다.”  이런 신화는 결국 이단, 이융기 부자가 황제에 오른다는    뜻이다.

 

청나라때 강희제의 아들들 간에 벌어진 황위계승투쟁은 역대 쟁위수단의 집대성이다. 황태자그룹, 황사자그룹, 황팔자그룹의 3개 그룹으로 나뉘어 황위계승투쟁을 벌이는데, 십팔반무기가 모두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황팔자 윤사는 당시 유명한 관상쟁이인 장명덕(張明德)을 활용한다. 먼저 황장자 윤지(胤禔)의 관상을 본 후, 황팔자 윤사(胤禩)의 관상을 보는데, 그는 황팔자에 대하여 “풍신청일(豊神淸逸), 인의돈후(仁誼敦厚), 복수면장(福壽綿長)하니 실로 귀상(貴相)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황팔자 윤사가 황장자 윤지, 황구자 윤당, 황십자 윤아, 황십사자 윤정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대신들 대부분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원인중 하나가 된다.

 

황십사자 윤정은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감숙(甘肅) 임도(臨洮)를 지날 때, 현지의 유명한 점쟁이 장할자(張瞎子, 할자는 애꾸눈이라는 뜻임)를 찾아가 자신의 미래를 물어본다. 장할자는 윤정이 온 뜻을 잘 알고는 “장래에 구오지존(九五之尊, 황제라는 뜻임)에 오를 것이며 운수는 39살 때 대귀(大貴)한다”고 말해준다. 윤정은 기뻐하며 그에게 은자 20냥을 내린다.

 

황사자 윤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심복인 재탁(載鐸)이 복건으로 부임하면서 무이산 도사 가사방(賈士芳)을 찾아 윤진의 명을 알아보는데, 도사는 “만(萬)”자를 하나 써주고 그 뜻을 말해준다. 재탁은 즉시 윤진에게 서면으로 보고하고 윤진은 크게 기뻐한다. 천자는 만승지존(萬乘之尊)이니 이것도 그가 황제에 오른다는 뜻이다.

 

황제에 오르기 위하여 신화를 만들어 내는 것과 관련하여 우스개에 가까운 역사기록이 하나 있다. 명영종 주기진은 환관 왕진의 꼬임에 빠져 오이라트를 친히 정벌하겠다고 나섰다가 토목보에서 오이라트에 포로로 잡힌다. 그는 1년후 풀려나서 돌아오지만 이미 황제 오른 동생 경태제에 의하여 태상황으로 7년간 연금당하고 있다가 탈문지변으로 다시 황위에 오를 수 있었다. 황제의 몸으로 오랑캐에 포로가 된 토목보의 변이라는 창피한 역사를 그는 ‘북수(北狩)’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기록하였을 뿐아니라 ‘북수’때 모래와 눈이 명영종의 몸에는 근접하지 못해서 오랑캐들이 대경실색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실로 후안무치하고 터무니없는 내용이지만, 황제에 다시 올라야 하는 인물에게 신화적 전설이 필요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