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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

[황자쟁위술] 교식위현술(矯飾僞賢術) - 불근여색패(不近女色牌)

by 중은우시 2015. 7. 27.

 

황태자에서 쫓겨나는 이유이자, 다른 황자들의 공격을 받는 이유중의 하나로 '호색(好色)'이 있다. 황제가 된 후에는 삼궁육원칠십이비(三宮六院七十二妃)를 거느릴 수 있고, 당현종 이융기는 "궁빈이 개략 4만에 이르렀다"는 역사기록도 있을 정도로수많은 처첩을 거느리는 것은 역대황제가 누리는 특권중 하나이다. 그러나, 아직 황제에 오르지 않은 황태자나 황자는 다르다. 황제인 부친이나 조부는 미래의 황제가 '여색'을 밝히면 국가대사를 그르칠까봐 우려했던 것이다.

중국에서 이런 생각은 뿌리가 깊다. 역사적으로 하걸(夏桀)의 말희(妺喜), 은주(殷紂)의 달기(妲己), 주유왕(周幽王)의 포사(褒姒)등 여인이 나라를 망친 홍안화수(紅顔禍水)의 사례가 적지 않다보니, 황제가 여색을 밝히는 것은 망국의 징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황위를 노리는 황자들은(황태자를 포함하여) '호색'으로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를 활용하여 황태자의 자리를 빼앗은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수양제(隋煬帝) 양광(楊廣)이다. 양광의 부친인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은 유명한 공처가이다. 수문제 양견의 부인인 독고황후(獨孤皇后)는 대단한 집안의 여자인데, 맏언니는  북주문제 우문육의 황후인 주명경후이고, 넷째언니는 당고조 이연의 모친이자 당태종 이세민의 할머니인 원정황후로 세 자매가 북주, 수, 당 세 왕조의 황후를 지낸다. 그녀는 양견과 결혼할 때 양견으로부터 '이생자녀(異生子女, 배다른 자식)'를 낳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온유하고, 현숙하며, 총명하였고, 남편인 양광이 다른 여자와 가까이하지는 못하게  조회(朝會)에 참석할 때도 같이 가고 조회가 끝나면 같이 돌아올 정도로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한번은 독고황후가 병이 들어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수문제가 후원을 거닐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수문제가 조회에 참석하러 떠난 후, 그 여인은 독고황후가 보낸 사람들의 칼아래 목숨을 잃는다. 조회가 끝난 후 돌아온 수문제는 이를 알고 화가나서 "혼자서 말을 타고 궁을 빠져나가 길로 가지 않고 산 속으로 삼십여리를 달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갈데가 없는 그는 다시 화를 삭이고 조용히 황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문제는 독고황후 생전에는 바람을 피울 생각을 하지 못한다.

 

황태자이자 양광의 형인 양용(楊勇)에게는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여색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독고황후는 양용에게 원씨(元氏)를 황태자비로 정해주었는데, 양용은 원씨를 멀리하고 운씨(雲氏)를 가까이 한다. 나중에 원씨가 급사하는데, 독고황후는 양용이 해친 것이라고 의심하여 더욱 불만이 커진다.

 

양광도 물론 여색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독고황후의 말이라면 수문제가 다 들어준다는 것을 알았고, 독고황후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축첩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여색을 멀리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그는 바깥에 나갈 때면 항상 독고황후가 정해준 소비(蕭妃)와 함께 했으며, 한번은 수문제와 독고황후가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젊고 예쁜 여자들은 별실에 숨겨두고, 늙고 추한 여인들만 남겨서 소박한 옷을 입고 시중을 들게 했다. 그리고, 양광은 후원의 여인들이 자식을 낳으면 몰래 죽여서 버렸다.

 

결국 독고황후가 고집하여 양견은 양용을 황태자에서 축출하고, 양광을 황태자에 앉히게 된다. 황태자가 된 양광은 다시 부친 양견을 죽이고 황제에 오르게 되는데, 양견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독고가 나를 망쳤다!"라는 것이라고 한다.

 

양용이나 양광은 모두 여색을 좋아했다. 다만 양용은 충후하여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양광은 음험하여 자신이 여색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행동했다. 양견과 독고황후에게는 이를 살필 눈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수왕조는 2대만에 멸망하게 된다.

 

현대에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대만의 삼성이라고 불리는 포모사 플라스틱(臺塑)의 창업자 왕용칭(王永慶)은 1995년 후계자이던 장남 왕원양(王文洋)이 뤼안니(呂安妮)스캔들을 일으키자 회사에서 쫓아내고 끝까지 불러들이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후계자를 고를 때 사업에 전념하여 기업을 키울 사람으로 고르지, 여색을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는 물려주지 않는 것은 매일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