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건명(劉建明)
소위 "기도"는 기실 인품(人品)이다. 비판하는 의견을 들어주지 않고,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그 결과는 심히 우려될 수밖에 없다.
장완은 삼국시대의 걸출한 정치가이자 군사가이다. 그는 승상으로 12년간 재임했고, 촉한의 사업에 거대한 공헌을 한다.
장완의 기도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용인하는데서 나타난다(容人之短). 그의 부하인 동조연(東曹掾) 양희(楊戱)는 성격이 단순하고 사람됨이 솔직하고 직선적이어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 동조하는 적이 없었다. 장완은 그와 얘기할 때면 자주 묵묵히 있으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위인 선호(單鎬)가 하루는 장완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대사마로서 지위도 높고 말씀도 귀하며, 후주 조차도 약간 양보하는데, 부중의 양희는 관직도 높지 않으면서, 잘난체 하면서, 당신의 말조차 따지고 든다. 이렇게 오만하고 무례한 관리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까?" 장완은 그의 말을 들은 후,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해준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 그것은 사람마다 얼굴 생긴 것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면전에서는 따르고 좋은 말이라고 하면서 뒤 돌아서서는 다른 말을 한다면 이는 고인들이 경계하여 하지 말라고 했던 일이다. 양희라는 사람은 내가 잘 안다. 그는 자기 마음에 어긋나게 남을 추켜세워주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이하고 하여 하는 말마다 다 맞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내 말이 옳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의 본심이 아니다. 그래서 내 말에 반대하고 내 잘못을 얘기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가 강직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내 틀린 점을 얘기할 때 그 안에서 나의 부족함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게 왜 나쁜 일인가. 왜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 것인가. " 선호는 그의 말을 듣고는 감동해서 말한다: "승상은 정말 허회약곡(虛懷若谷), 아량과인(雅量過人)입니다."
나중에 양희는 강유를 만난다. 그때는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그는 여러번 술기운을 빌어 강유를 조롱하는 말을 한다. 강유는 기회를 잡아 그를 평민으로 강등시킨다. 죽을 때까지. 두 승상을 비교하자면, 강유는 남을 용인하지 못했고, 장완은 남을 용인했다. 이를 보면 장완의 기도와 흉금을 알 수 있다.
장완의 기도는 남의 말을 용인하는데서도 엿볼 수 있다(容人之言). 부중의 독농관(督農官) 양민(楊敏)은 일찌기 개인적으로 장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처리가 엉망진창이어서 실로 전인(제갈량)만 못하다" 어떤 사람이 이 말을 장완에게 고자질한다. 법률과 기율을 담당하는 관리가 양민의 죄를 추궁하자고 말하나, 장완은 담담하게 말한다: "나는 실로 전인만 못하다. 추궁할만한 죄를 그가 짓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탄식하여 말한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전승상 제갈량의 신무혁연(神武赫然), 위진팔방(威震八方), 공개굉우(功蓋宏宇)함을 알고 있다. 내가 어찌 그에게 미치겠는가. 나는 원래 승상의 재능이 없지만 승상의 직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어찌 일처리에 부당한 점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일처리가 부당하면 자연히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 양민이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다. 사람들은 모두 이제는 그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완은 자신과의 친소를 따지지 않고, 법에 따라 공정하게 이 사건을 처리하여 그가 중한 죄를 받지 않도록 한다. 조그만치도 이를 기화로 보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과감하게 직언하고 정무에 참여하는 사람은 바로 내가 구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그의 공정무사, 관후용인의 흉금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장완이 기도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인하는데서도 엿볼 수 있다(容人之過).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는 바로 양의(楊儀)에 대한 처벌이다. 양의는 비록 재주가 있지만, 마음이 좁고 이기적인 소인이었다. 제갈량이 죽은 후, 그는 스스로의 재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여긴다. 거기에 위연의 반란을 평정한 공훈이 개세적이라고 여겨 스스로가 제갈량의 직위를 넘겨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제갈량이 정한 후계자는 장완이었다. 그래서 양의는 장완등을 아주 미워한다: "자신이 장완보다 먼저 관직에 나왔는데 장완의 아랫사람이 되어 있고, 스스로의 공이 높다고 여기는데 상은 크게 받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원망하는 말을 하게 된다. 비위에게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승상이 처음 돌아가셨을 때 내가 만일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에 투항했더라면, 이렇게 적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 "후주가 대노하여, 양의를 감옥에 가두고 문초하도록 하며, 그를 참하고자 생각했다." 그러나 관후한 장완은 양의의 잘못을 가슴에 새겨두고 이 기회를 틈타서 낙정하석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양의를 위하여 말해준다: "양의가 비록 죄는 있으나, 옛날에 승상을 따라 공로도 많이 세웠으니, 참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서인으로 만드십시오."
예로부터, 사람들은 모두 도량이 넓은 것은 미덕으로 여긴다. 무릇 큰 사업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용인(容人), 용언(容言), 용사(容事)하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확실히 이런 측면에서 장완은 모범이라 할 만하다. 그는 봉건왕조의 관리로서, 사적인 원한을 풀려 하지 않고, 사적인 원한을 기억하지 않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는 정파(正派)의 관리가 되었으며, 시시때때로 자신의 인격적인 매력과 지도자로서의 풍모를 드러냈다. 그의 기도와 아량은 관료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지금도 우리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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