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전국시대 4명의 변법가

중은우시 2015. 5. 6. 00:56

글: 하림여추생(夏臨與秋笙)

 

전국시대는 풍운이 변환하고 백가쟁명했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대담한 역사인물을 배출한다. 영웅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호걸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얘기할 사람은 전국시대 4명의 변법의 달인들이다.

 

전국시대의 변법을 얘기하자면, 사람들의 첫번째 반응은 바로 지나라의 상앙변법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어릴 때 상앙변법에 관한 소책자를 보았는데, 변법의 내용과 후세의 영향에 대하여는 당시에 모조리 잘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머리 속에 깊이 기억된 것은 상앙이 차열지형을 받은 것이다. 어린 마음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었다.

 

다만 상앙은 전국시대에 가장 먼저 변법을 추진한 정치인물이아니다. 그보다 이전에, 이회(李, 이름을 리, 회, 괴로 발음될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Kui로 발음하므로 이괴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통상적으로쓰는 이회를 쓰도록 한다)가 위나라에서 진행한 변법과 오기(吳起)가 초나라에서 진행한 병법은 이미 현저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상앙과 동시대에 신불해(申不害)도 한나라에서 변법을 진행하여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다. 그외에 조무령왕이 시행한 호복기사(胡服騎射) 및 제왕이 받아들인 추기(鄒忌)가 진행한 정치혁신도, 조, 제 두 나라가 칠웅으로 자리잡게 하는 기초를 이룬다. 그러나 개혁범위, 집행강도와 후세의 영향으로 보면, 위, 초, 진, 한 4국의 변법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여기서 다루지는 않기로 한다.

 

1. 이괴. 그는 위문후에게 상(相)으로 기용되어 변법을 주재한다. 그는 <법경(法經)>을 저술한다. 이는 중국최초로 비교적 계통적으로 정리된 성문법전이다. 이괴는 법가의 선구라 할 수 있다.나중의 상앙과 한비자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다.

 

기괴한 것은 <사기>와 <한서>에서 위나라변법에 대하여 두 개의 이름이 비슷한 사람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회와 이극(李克). 어떤 정치이념은 이괴의 공로로 적는다. 예를 들어, 사기에는 "위유이회(魏有李悝), 진지력지교(盡地力之敎)" 그리고 어떤 것은 이극의 공로로 쓴다. 예를 들어, 유향이 편찬한 <신서.잡서>에서는 "식유로(食有勞), 이녹유공(而祿有功), 사유능(使有能),이상필행(而賞必行)", "탈음민지록(奪淫民之祿), 이래사방지사(以來四方之士)"라 하였다. 사학계에서 어떤 사람은 이극은 이회를 잘못 적은 것으로 보고, 실제는 동일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한서>, <여씨춘추>와 <한비자>에 이회와 이극을 모두 언급하므로 분명히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호, 변법을 시작한 사람의 평생이 이렇게 안개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어떻게 논쟁을 하더라도, 한가지는 의문이 없다. 위나라 변법을 주재한 사람은 위상 이회이다. <법경>의 작자도 이회이다. 그의 변법은 전국초기 위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끈다. 그가 저설한 <법경>은 중국고대법률사에서 아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2. 오기. 사마천은 그를 병가(兵家)로 분류했다. <손자오기열전>에서 그를 손무, 손빈과 함께 적어놓았다. 후세에는 그와 손무의 군사저작을 합하여 <손오병법>이라 부른다. 그러나 기실 오기는 군사적인 재능외에 통재(通才)였다. 그는 유가를 배운 바 있고,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군대를 이끌었으며, 나중에 초나라에서 변법을 시행한다.

 

그러나, <사기>에서 오기라는 사람의 풍행에 대하여는 폄하하고 있다. 오기라는 사람은 노나라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일자리를 찾았는데, 당시는 제나라와 노나라가 교전중이었다. 노나라군주는 오기의 처가 제나라사람이라는 것때문에 망설였다. 그래서 오기는 충성심을 표시하고자 자신의 처를 죽인다. 그리고 원하는대로 노나라대장이 된다. 그 후에 제나라를 대파하는데 공을 세운다. 그러나 이렇게 무정한 점에 대하여 노나라사람들은 의심을 품는다. 이어서 누군가 오기는 고향에 있을 때 자신을 조소한 삼십여명을 죽였고, 모친과 이별할 때 경상(卿相)이 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친이 죽을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모친상도 가지 않았다. 부인까지도 죽였다. 노나라군주는 생각해보고는 이런 사람을 붙잡아둘 수는 없겠다고 여긴다. 그래서 완곡하게 말하여 오기를 사임시킨다.

 

이곳에서 나를 쓰지 않으면 내가 갈 곳은 있다. 오기는 그래서 위나라로 간다. 위문후는 오기의 문제점을 잘 알았다. 그러나 그의 군사적재능을 중시한다. "장수가 되어 진나라를 쳐서 5개 성을 빼앗는다" 오기가 훈련시킨 위나라의 무졸은 전국시대에 전투력이 가장 강한 보병정예였다. 진나라의 하서의 땅을 점령하여, 진나라의 생존공간을 더욱 좁힌다. 그는 전투시 사병들과 함께 고생한다. 아쉽게도 위무졸은 방연(龐涓)의 손에 원기를 크게 상하고, 방연이 죽은 후 수십년만에 위무졸은 진나라장수 백기(白起)에게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오기로 흥하고, 백기로 망했다.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위문후가 죽은 후 오기는 이어서 위무후를 섬긴다.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상국에 오르지 못한다. 그리고 신임 상국 공숙좌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배척당한다. 그래서 위나라를 버리고 초나라로 간다. 초나라는 그를 영윤에 앉히고 변법을 시작한다. 변법의 내용은 바로 쓸모없는 인원을 정리하는 것이다. 귀족의 이익을 가지고 부국강병에 쓰는 것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초나라귀족들은 그에게 원한을 품는다. 오기를 옹호하던 초도왕이 죽은 후, 초나라의 귀족은 공개적으로 오기를 습격한다. 그가 초도왕의 시신을 방패막이로 삼는데도 눈이 벌개진 초나라귀족들을 막아내지 못했다. 초나라귀족들은 그를 활을 쏘아 죽였을 뿐아니라, 초도왕의 시진에도 화살을 적지 않게 쏜다. 그는 초나라를 위하여 영토를 개척하고, 부국강병을 이루었지만, 기득권자들에게 밉보여서, 그의 위나라 동향인인 상앙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3. 상앙. 이어서 상앙이 등장한다. 위나라사람인 공손앙, 일명 상앙은 처음에 위나라의 상부에서 막료를 지낸다. 위상 공숙좌는 그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죽을 때가 되어서야 위왕에게 그를 천거한다. 아마도 재능있는 자를 꺼리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이 공숙좌는 바로 오기를 몰아낸 그 사람이다. 두명이 모두 그 때문에 다른 나라로 간다. 위나라가 쇠약해진 것은 그 때문이다). 위왕도 혼군이다. 공숙좌의 말을 듣고 그를 쓰지 않았을 뿐아니라, 쓰지 않으려면 다른 나라에서 쓰지 못하게 죽이라는 권고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진나라가 상앙을 써서 변법을 시행하고 하서의 땅을 위나라에게서 빼앗아 간다. 아마도 그때는 속이 쓰렸을 것이다.

 

상앙이 진나라로 들어가 진효공의 중용을 받고 변법을 시작한다. 먼저 나무를 옮기게 하면서 믿게 만들어 변법이 나오면 반드시 집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남문집시에 삼장 높이늬 기둥을 세워두고, 누구든지 이것을 메고 북문까지 옮기면 10금을 주겠다고 한다. 백성들은 처음에 이를 믿지 않아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상금을 50금으로 올린다. 상금이 커지면 용사가 나타나는 법이다. 과연 한 사람이 나서서 메고 옮겨놓고 50금을 받아간다. 그래서 뒤에 반포되는 변법령을 백성들은 그대로 믿게 된다.

 

상앙변법은 아주 적극적으로 농지개척, 경작장려, 전공수작, 함양천도, 통일도량형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상앙은 진시황보다 먼저 도량형의 통일을 추진했다. 그러나 상앙이 한 것은 진나라범위내에서이고, 진시황이 한 것은 원육국을 모두 포함한 천하였다. 오가를 오(伍)로, 십가를 십(什)으로 하여 감독하게 하고 연좌제를 실시한다. 연좌제는 가혹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귀족이익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항상 나오는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상앙은 각박하고 은혜를 베풀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요즘 말로 하면 EQ가 낮은 셈이다. 그는 누구에게든지 밉보이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군중기초도 닦으려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미래의 국군인 현재의 태자에게도 미움을 산다. 태자의 스승도 코를 벨 사람은 코를 베고, 얼굴에 자자(刺字)를 할 사람을 자자를 한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밉보였을 뿐아니라,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중에는 변법이 좋지 않다는 사람도 있고, 변법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상앙은 "시비곡직을 따지지 않고 이들을 모두 변방으로 보내버린다. 그 후에는 변법에 대하여 논의하는 자들이 없었다." 백성들에게까지 밉보인 후에는 선비들에게 밉보인다. 상앙은 진효공에게 건의한다. "시서를 불질러, 법령을 밝게 하소서." 그는 처음으로 분서를 주장한 사람이다. 몇년후 진시황이 그의 건의를 진지하게 집행하였다. 그러는 김애 갱유까지 해버렸다. 진나라내에서 밉보일 사람에게 모두 밉보인 후, 그는 다시 외국에도 밉보이는 짓을 한다. 위나롸 전쟁을 벌여서 하서의 땅을 빼앗아 온다. 위나라에서 군대를 지휘한 사람은 옛친구인 공자앙(公子卬)이었다. 그는 공자앙에게 서신을 보내어, 우리가 이전에 어떤 관계였느냐. 형제간에 싸울 수는 없다. 우리 함께 술을 마시면서 철군의 일을 논의하자고 한다. 공자앙은 단순한 사람이었다. 병불염사도 모르면서 병력을 지휘하여 전쟁터로 나왔다. 결과적으로 공자앙은 상앙의 포로가 된다. 위나라군대는 당연히 일패도지한다. 상앙은 "위나라를 이기고 개선하여, 어,상의 15개읍을 받고 상군(商君)이 된다" 상앙은 옛친구인 공자앙을 가지고 놀았다. 그가 진나라에서 살신지화를 당하게 되어 위나라로 피난갔을 때, 위나라는 당연히 그가 국경선을 넘어 들어오는 것을 거절한다.

 

전국책에는 이렇게 말한다. 진효공의 병이 위급할 때 상앙에게 왕위를 선양할 생각이 있었으나, 상앙이 응락하지 않았다. 사마천은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 <사기>에는 상앙이 도망치다가 신분증이 없어서 법를 너무 잘 지키는 여관주인때문에 투숙을 하지 못하게 되어 '제가 판 함정에 제가 빠졌다'는 탄식을 하는 내용은 기록한다. 전국책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결국 진효공이 죽은 후 태자가 즉위하니 진혜왕이다. 상앙의 반대파들이 그냥 기다렸겠는가. 바로 그를 공격한다. "공자건의 무리는 상군이 반란을 꾀한다고 고발하고, 관리를 보내어 상군을 체포한다." 이전에 상앙이 다른 사람들에게 밉보이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인치보다 법제를 믿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누군가가 그를 모반죄로 고발하자, 그는 도망치는 것을 선택한다. 위나라로 도망치려 했지만, 위나라사람은 그가 공자앙을 가지고 놀고 위나라땅을 빼앗아 간 것에 원한을 품고 있어 그를 진나라로 축출한다. 상앙은 갈 곳이 없어 다시 자신의 봉읍에서 지방무장세력을 조직하여 북으로 정(鄭)을 치려 한다. 이것은 바로 모반죄라는 것을 입증하는 행동이 아닌가? "진나라에서 병력을 일으켜상군을 공격하고, 어정승지에서 죽인다. 진혜왕은 상군을 차열형에 처하며 말한다: '상앙처럼 반란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즉, 그는 죽은 후에 차열형을 당한 것이다. 살아서 당한 것이 아니라.

 

4. 신불해. 상앙과 동시대에 신불해의 변법이 있다. 그의 지명도는 상앙에 비하여 손색이 있다. 사마천은 신불해를 노자, 장자, 한비자와 함께 묶어서 하나의 열전에 남겼다. 신불해에 관한 내용은 100자를 넘지 못한다.

 

신불해와 상앙의 사고는 모두 법가의 것이다. 다만 구별이 있다. 보편적으로 법가는 3파가 있다고 한다: 세(勢), 술(術), 법(法). 신불해는 술을 중시하고, 상앙은 법을 중시했다. 쉽게 말하면, 변혁, 부국강병, 경작전투, 상벌분명등을 주장하는 공통점이 있는 외에, 신불해는 비교적 군주가 권술을 잘 운용하는지, 사람을 잘 쓰는지 그리고 동시에 조정에 대하여 절대적인 통제권이 있는지를 중시했다. 그러나 상앙이 중시한 것은 엄격한 법집행이다. 군신, 백성이 모두 기존의 행위준칙을 지켜야 한다. 신불해는 한나라에서 변법을 하여 성과가 있었다. 다만 상앙변법과 다른 점이라면, 한나라 변법은 한소후가 죽은 후에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나라는 상앙이 죽은 후에도 계속 그의 신법이 집행되었고, 일정한 시기동안 지속적인 발전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신불해는 보기에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그가 썼다는 <신자(申子)>는 이미 전해지지 않는다. 왜 그와 상앙의 변법을 나란히 놓고 언급하는가? 필자의 생각으로 그는 중국2천년 군주전제의 제왕의 심술에 일종의 이론적인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기초는 "천하는 현명한 군주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사고이다. 현재도 이런 이론은 여전히 시장을 가지고 있다.

 

100년후, 한나라에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불세출의 천재인물 한비자가 나타난다. 그는 어느 정도 신불해의 영향을 받았다. 세상일은 변화한다. 상전벽해하고 천고의 영웅도 모조리 흙으로 돌아간다. 필자는 로큰롤밴드 Fall Out Boy의 가사를 가지고 이 이야기의 결론으로 삼고자 한다:

 

Some Legends are told

Some turn to dust or gold

But you will remember me

Remember me for centuries

And just one mistake

Is all it will take

We'll go down in history

Remember me for centu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