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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공통)

중국역사상 전쟁터에서 전사한 2명의 황제

by 중은우시 2015. 3. 26.

글: 진령신(陳令申)


중국고대에, 전쟁터에서 전사한 사람은 대부분 장군과 병졸이다. 그래서 이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만일 전사자가 구오지존인 황제라면 그것은 신기하고 희한한 일일 것이다. 역사상 확실히 그런 황제가 있었다. 한 명은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 완안승린(完顔承麟)이고, 또 다른 한명은 몽골국의 황제 몽케칸(蒙哥可汗)이다.


1. 완안승린


완안승린(? - 1234년 2월 9일), 금세조 핵리발(劾里鉢)의 후예, 금나라 마지막 황제. 그는 원래 금나라의 장수였는데, 금애종(金哀宗) 완안수서(完顔守緖)가 그를 중용한다.


금나라 천흥2년(1233년) 십월, 몽골군과 남송군이 연합하여 금나라의 임시국도 채주(蔡州)를 공격한다. 천흥3년(1234년) 이월, 채주가 포위당한다. 금나라의 제9대황제 완안수서는 대세가 이미 기운 것을 보고, 1234년 2월 9일밤, 금나라군대의 총사령관 완안승린을 불러 황위를 그에게 넘겨준다. 완안승린은 고사하였으나, 완안수서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황위를 그대에게 넘겨주는 것은 부득이해서이다. 왜냐하면 내 몸이 너무 뚱뚱해서, 움직이기 불편하다. 경은 신체가 건장하니, 만일 도망칠 수 있다면, 금나라는 희망이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듣자, 완안승린은 황위를 넘겨받겠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완안승린은 황위를 계승한다. 그러나, 대신들에 그에게 축하의 예를 행할 때, 남송군이 이미 남성을 함락시켰고, 몽골군도 서성에 대한 공격을 강화한다. 금나라궁중은 새 황제를 축하할 시간도 없었고, 여러 장수들은 속속 달려나가서 전투를 지휘하러 간다.


퇴위후의 황제 완안수서는 남성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목을 매어 자결한다. 위기의 순간에 신황제 완안승린은 명을 내려 백관들과 함께 선제 완안수서의 유쳬의 앞으로 나아가 통곡한다. 애도의 정을 표하기 위하여, 완안승린은 시호를 '애(哀)'로 하여 '애종'이라 한다. 그리고 시신을 불태워 화장한다.


완안승린은 애제의 제사를 마치자, 송과 몽골의 대군이 이미 성안으로 들어왔고, 완안승린은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싸우다가, 난전중에 사망한다. 이렇게 금나라는 멸망한다.


2. 몽케칸


모두 알고 있다시피, 몽골철기는 일찌기 아시아의 여러 곳을 휩쓸었다. 몽케칸은 더더욱 몽골왕조이 걸출한 군사수령이다. 그는 징기스칸의 손자이고, 톨루이의 장남이다. 원세조 쿠빌라이의 형이 된다. 1251년-1259년까지 8년간 재위한다. 그는 현명한 군주로 여정도치(勵精圖治)하고 부지런히 국사에 전념했다. 


그외에 그의 군대는 용맹하고 ,전투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일찌기 여러 성을 함락시키고 강역을 확대하며 큰 공을 여러번 세운 바 있다. 그러나, 가장 사람들이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 용맹한 군대의 우두머리 몽케칸이 1259년 송나라와의 공성전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점이다. 명실상부한 전쟁터에서의 전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