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풍탁탁(文風卓卓)
천하를 쟁패하려면 좋은 무장이 필요할 뿐아니라, 좋은 모사도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운이 좋지 않으면, 아이큐가 20도 되지 않는 자를 만나게 된다. 중국역사상 가장 엉터리였던 5명의 모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1. 곽개(郭開): 조(趙)나라를 망치다.
조나라 말년의 상국(相國) 곽개는 '양조노신(兩朝老臣)'이라 할 만하다. 조도양왕, 조유목왕의 두 군주를 모신다. 이치대로라면 그는 조나라에 죽음으로 충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찌감치 진(秦)나라에서는 곽개의 이용가치를 발견하고, 그는 이익과 재물을 탐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만일 경비만 충분하다면, 확실한 간첩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엄청난 금전의 뇌물 이외에 진나라에서는 장래약속까지 해준다. 잘 해서 조나라를 멸망시키면, 진나라에서 잘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곽개는 겁없이 행동했고, 일처리도 안정되며 확실하게 했다. 조나라의 마지막 세월에 그래도 좋은 장수는 있었다. 어쨌든 진나라와 여러 해 동안 싸워왔기 때문이다. 가장 잘 싸우는 두 장수는 앞에 노장 염파(廉頗)가 있고, 뒤에 조목(趙牧)이 있다. 염파는 우리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장상여(將相如)>에 나오는 그 사람이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그래도 생강은 오래될수록 맵지 않은가?
곽개는 아주 총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염파가 '늙었다'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조유목왕에게 이렇게 말하게 한다; "노장군은 비록 웅심은 그대로이고, 몸도 괜찮은 편이며, 한끼 식사량도 엄청나서 놀랄 정도이지만, 문제는 위장이 좋지 않습니다. 자리에 잠깐 앉아 있는 동안에도 화장실을 세번이나 다녀옵니다." 이 말에 숨은 의미는 이런 정력으로 어찌 전투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염파는 자리에서 깨끗하게 물러난다.
다음으로는 조목인데 연부역강하며, 흉노와 맞서 싸운 명장이다. 용감한 흉노인들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 진나라군대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곽개가 이번에는 직접 나선다. 그의 제자가 함양에서 이목이 모반한 서신을 훔쳤다고 말한다. 조유목왕은 당장 대노하며, 이목이 병권을 빼았고, 해임시킨다. 얼마 후 이목은 비명에 죽는다.
이어지는 역사는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진나라군대는 금방 한단을 점령하고, 조나라는 멸망한다. 조유목왕은 포로가 된다.
곽개가 이렇게 하면서 어찌 당당할 수 있었을까? 진나라의 간첩인 왕오(王敖)는 그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조나라가 멸망하는 것이 겁나지 않는가?" 어쨌든 새집이 뒤집어지면 성한 알이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될 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곽개는 다르게 생각했다: "조나라의 존망은 전체 국가의 일이다. 그러나, 나에 반대하던 사람에게는 나 개인의 복수이기도 하다." 그 말에 숨은 뜻은 국가존망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내가 통쾌하게 복수하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진나라도 그를 박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진시황은 월왕 구천보다는 훨씬 신용이 있다. 조나라가 멸망한 후, 곽개는 비록 상국은 아니지만, 진나라는 그를 상경(上卿)에 봉한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총리급대우를 해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쁜 자를 진나라가 용서해주더라도, 조나라사람들은 그가 계속 편안하게 살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곽개는 한단에서 금은보화를 함양으로 운송하는 도중에 도적에게 죽임을 당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누군가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이장군이 복수를 하였다."
2. 목제파(穆提婆)
목제파의 모친 육영훤(陸令萱)은 중국역사상 유일한 여재상이다. 이 고관자제도 이로 인하여 북제 후주 고위(高偉)의 놀이친구이자 심복이 된다. 그의 주요 임무는 고관자제들을 모아서 강산을 하루빨리 망치게 하는 것이다.
당시의 북부중국은 동서 양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동쪽의 북제와 서쪽의 북주가 서로 죽어라 싸우고 있었다. 북제가 유일하게 믿는 것은 일대명장 곡률광(斛律光)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칙륵가(勅勒歌)>), "천창창(天蒼蒼), 야망망(野茫茫), 풍취초저현우양(風吹草低見牛羊)" 이것이 바로 곡률광이 쓴 것이다. 그는 문무를 겸비하였고, 성격이 강직하여 북제의 대들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대들보를 걸리적거린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그로 인하여 자신이 놀 공간이 없어졌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제거해야만 시원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대들보가 없어지면 집이 어떻게 될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는 바로 목제파이다. 그가 보기에 노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예를 들어, 남진이 북제의 회상의 중요도시 수양(지금의 안휘 수현)을 점령했을 때, 후주 고위가 약간 걱정하자, 목제파는 그에게 잃어버리면 잃어버리라고 해라. 설사 황하 이남을 모조리 잃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이 즐겁게 살 수 있는 작은 나라가 있지 않느냐. 인생은 쓰고 짧다 반드시 제때 즐기고 놀아야 한다. 왜 그런 일로 걱정하며 보내느냐라고 말한다.
이런 자이니 자연히 곡률광과 같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목제파의 곁에 있는 자들도 모두 곡률광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니 곡률광을 없애야만 했다. 그런데, 적이 몰려오면 어떡할 것인가? 그건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얼마 후, 북주가 북제의 국경을 침범해 들어온다. 양군은 진양(지금의 산서성 태원)에서 격돌한다. 묵제파는 후주에게 권하여 싸우지 말자고 한다. 싸우기는 왜 싸우는가. 그래서 앞장서서 투항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그의 친구의 나라는 철저히 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북주는 이런 쓰레기를 용서하지 않았다. 얼마 후 목제파가 모반했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서 죽여버린다.
3. 경연광(景延廣)
먼저, 우리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경연광은 절대로 애국지사이다. 대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는 확실했고, 침략자에 대하여는 원한이 충만했다.
오대십국의 후진(後晋)은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아황제(兒皇帝)의 시대이다. 개국황제 석경당은 용상에 앉기 위하여, 거란황제 야율덕광에게 칭신납공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그를 양부로 모신다. 석경당이 죽자, 그의 조카 석중귀가 즉위한다. 그러자 문제가 생긴다. 이 위성국가를 계속 놔둘 것인가, 이 양손자를 계속 인정해줄 것인가.
석중귀의 심복대장 경연광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은 국가의 실력이 웅후하니, 더 이상 굴욕적인 일을 하지는 말자. 거란인들이 다시 우리를 괴롭히면 한번 붙어보자. 신구 오대사에 경연광은 호기충천한 명언을 남긴다: "횡마대검십만구(橫磨大劍十萬口)"
호쾌하고 문장실력도 있고 기백도 있다. 거기에는 감동한다. 그러나 적을 무찌르려면 그냥 말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말로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큰소리는 쳤지만, 경연광과 후진은 적을 맞이할 준비작업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거란족의 철기가 남하하자, 이 '용사'는 놀라서 나서지도 못한다. 결국 거란은 개봉을 함락시키고, 후진을 멸망시킨다. 경연광은 도망칠 곳이 없어 할 수 없이 야율덕광에게 투항한다. 그리고 쑥쓰러워하며 책임을 떠넘긴다.
4. 백비(伯嚭)
좋은 아빠라고 하여 반드시 좋은 아들을 낳는 것은 아니다. 이 말에 딱 들어맞는 것은 바로 백비이다. 부차의 모사인 백비는 오자서와 같은 초나라사람이다. 부친은 초나라의 충신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초나라의 핍박으로 오나라로 같다. 그리고 오자서는 바로 백비를 추천한 사람이다. 오자서는 아마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이 결정이 스스로를 해칠 줄은.
오왕 부차는 구천의 월을 멸망시키고, 구천은 월을 부흥시키기 위하여, 돈을 주고 백비로 하여금 자신들의 편이 되도록 만든다. 백비는 과연 사명을 완수하여 먼저 구천을 석방시키고, 이어서 지모가 뒤어나고 강직한 오자서를 죽인다. 이렇게 월나라를 도우면서 자신의 눈엣가시를 제거한 것이다. 오자서라는 방해자가 없어지니, 백비는 계속하여 부차를 속여넘기고, 구천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게 도운다. 담량도 갈수록 커지고, 구천의 뇌물액도 갈수록 많아진다.
마지막에 오왕 부차는 과연 백비의 노력과 자신의 쟁취하에, 국가와 수급을 모조리 월왕 구천에게 바치게 된다. 백비는 스스로 월의 대공신으로 자처한다. 그러나 구천은 그가 하는 짓거리를 원래 못마땅하게 여겨 그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백비를 즉시 죽여버린다. 이런 자를 남겨놓으면 어찌 안심할 수 있겠는가?
5. 곽도(郭圖)
곽도를 얘기하자면 먼저 곽가(郭嘉)를 얘기해야 한다. 두 사람은 모두 영천(지금의 하남성 우주) 곽씨이다. 곽도가 원소에게 먼저 투신하고, 곽가가 그 뒤를 잇는다. 곽가는 원소를 떠나기 전에 곽도와 상의한다. 그리고 원소에 대한 극단적인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를 보면 두 곽씨의 관계는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곽가는 조조를 도와서 중원을 통일했고, 곽도는 원소가 모든 것을 잃도록 만든다.
먼저 한헌제와 동한 소조정은 상가집 개가 되어, 조조가 아직은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량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원소의 모사 저수(沮授)는 소조정을 하북으로 모셔오자고 말한다. 원소도 이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여겨서 그렇게 집행하였다면 아마도 삼국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조조가 나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 곽도가 나서서 막는다. 왜 황제를 모셔와서 자신의 머리 위에 두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황제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이 얻기 어려운 기회를 조조에게 빼앗겨 버리고, 원소는 정치적으로 실점을 한다. 이어서 원소와 조조의 관도지전이 벌어진다. 곽도는 참언으로 전풍(田豊)을 해친다. 그리고 장합으로 하여금 군영을 기습하게 하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실패하자 책임을 미루기 위하여 한편으로는 장합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하면서, 원소에게는 장합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그 결과 하북에서 가장 잘 싸우는 명장을 조조에게 고스란이 넘겨주게 된다. 원소가 죽은 후, 곽도는 다시 원담(袁譚)을 부추겨 동생 원상(袁尙)과 내분을 벌이게 한다. 결국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는 원소 부자의 이대에 걸쳐 집안을 망치게 만들었고, 사세삼공의 명성은 철저히 끝장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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