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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공통)

중국역사상 화살에 맞아죽은 4명의 황제

by 중은우시 2014. 4. 4.

글: 진령신(陳令申)

 

사람들에게 무한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중국황제왕조는 2000여년의 비바람을 거치면서 300여명의 황제를 배출했다. 그중 비정상적 사망을 맞이한 황제도 적지 않다. 진시황은 조고에게 죽임을 당했고, 당태종 이세민은 술사들이 만든 '선단'을 과다복용하다가 죽었다. 남당의 후주 이욱은 송태종 조광의에게 독살당한다. 역사상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다. 여기서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들 비정상적으로 사망한 황제들 중에서 화살에 맞아 죽은 사람도 역사상 4명이 있다; 한 명은 오대시기 후당의 개국지군 당장종 이존욱이고, 한 명은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 천조제 야율연희이며, 또 한 명은 원태조 징기스칸, 마지막 한 명은 원헌종 몽케이다.

 

1. 오대시기 후당의 개국지군 당장종 이존욱(李尊勖)

 

후당장종 이존욱은 당나라말기의 하동절도사, 진왕 이극용(李克用)의 장남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말을 타고 활쏘는 것을 좋아했으며 담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이극용이 총애한다. 그는 또한 음률에 능통해서 곡을 쓸 줄 알았다. 현재까지 남아 전해지고 있는 사가 4수이다. <존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오대시기 후당의 개국지군이며, 명실상부한 문무를 겸비한 황제였다.

 

후당장종은 일생동안 겨우 3년간 재위한다. 그는 혼용무도한 황제였다. 그는 즉위후부터 일을 하기 보다는 향락만 즐겼다. 그는 어려서부터 극을 보고 극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얼굴에 분과 먹을 바르고 연극복장을 하고는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했다. 조정은 신경쓰지 않았으며 예명은 '이천하(李天下)'라고 한다.

 

이존욱의 재위기간에 배우들을 총애했을 뿐아니라, 환관의 참언을 많이 들었다. 그리하여 대장군 곽숭도(郭崇韜)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백성을 착취하는 공겸지(孔謙之)같은 류의 혹리를 기용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리하여 정치는 부패하고 암흑이 된다. 게다가 이존욱은 인색하고 재물을 탐하며, 부귀해지고나서는 친아버지도 몰라보는 유황후까지 있어서 조정은 상하가 모두 이심이덕(離心離德)하게 되고, 장병과 백성의 원망이 하늘을 찌른다. 이존욱은 결국 그 벌을 받는다. 병변때 흐르는 화살(流箭)에 맞아서 사망한다(

 

2. 요나라 마지막 황제 천조제 야율연희

 

요나라 천조제 야율연희는 요순종 야율준의 아들이며,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다. 일생동안 25년간 재위한다. 그의 재위기간동안, 소봉선, 소덕리저등 간신을 총애하여 사냥을 즐기고 생활은 황음하고 호사했다. 조정을 돌보지 않았고, 종실귀족간의 투쟁은 날이갈수록 심해졌다. 백성들의 반란도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각 부족의 수령들도 속속 거병하여 요나라에 반기를 든다. 요나라통치는 붕괴를 향해 치달았다.

 

1125년 팔월, 요나라 천조제는 금나라에 포로로 잡힌다. 그리고 금나라의 상경으로 압송되어, 해빈왕(海濱王)에 봉해진다. 나중에 예왕(豫王)으로 명칭이 바뀐다. 1156년 금나라사람들의 화살을 마구 맞고 피살된다.

 

<대송선화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소흥25년 육월(1156년), 금나라황제 완안량은 명을 내려 구금된 송흠종 조환과 요나라 천조제 여율연희를 잠시 석방하게 한다. 그들로 하여금 마구(馬球)경기를 하게 하고는 이를 보며 즐긴다. 야율연희는 말을 잘 탔다. 그래서 말을 몰아서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고자 한다. 그러다가 화살을 마구 맞고 죽게 되었다고 한다.

 

3. 원태조 징기스칸

 

징기스칸은 몽골제국의 칸이다. 중국역사상 원나라의 터를 닦은 사람이다. 일생동안 22년간 재위했고, 그동안 남북으로 정벌을 다닌다. 용맹하고 전투에 능했으며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여러 영지를 점령한다. 중국의 통일에 없어질 수 없는 공적을 세웠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 겸 군사가라고 부를 만하다.

 

이렇게 용맹하고 전투를 잘하는 몽골 칸 징기스칸은 1227년초 서하와 전투를 벌일 때 무릅에 독화살을 맞는다. 그리고 결국은 목숨을 잃는다.

 

<성무친정록>에 따르면, 징기스칸은 일생동안 3번이나 화살에 부상을 입는다. 1202년 활혁단(闊奕壇)의 전투에서, 1212년 서경을 공격하는 전투에서, 그리고 1225년 서하를 공격할 때 무릎에 독화살을 맞은 것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도 자신의 저서에서 징기스칸은 화살에 맞은 부상으로 사망했다고 적었다.

 

4. 원헌종 몽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몽골왕조는 무력을 숭상하는 왕조이다. 100여년의 역사에서, 몽골의 철기는 아시아의 여러 지방을 종횡했다. 몽케 칸은 몽골왕조의 걸출한 군사 우두머리이다. 그는 징기스칸의 손자이고, 톨루이의 장남이다. 1251년-1259년에 재위한다. 그의 군대는 사납기로 유명했다. 여러 성을 함락시킨다. 이렇게 용맹하고 전투를 잘하는 몽캐 칸이 1259년 송나라를 공격하다가 사천성 합천현 조어성에서 사망한다. 여러 학자들은 일치되게 몽케 칸은 아주 비정상적으로 죽었다는데 동의한다.

 

사천성 합천현 조어성 유적지에 있는 명나라 정덕12년(1517년)에 건립한 <신건이공사당기>의 석비 비문을 보면, "몽케는 공성전투과정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中飛矢而死)'"라고 되어 있다.

 

남송의 저명한 시인 유극장의 <촉첩>시, 시리아 아부르파라디가 편저한 <세계사절본>, 전백찬이 주편한 <중국사강요> 및 장전보, 이배호가 편저한 <중국통사강수강요>에서는 몽캐의 죽음을 역시 비시에 맞아 죽었다는 견해를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