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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

소인물에게 원한을 사면 결과는 심각해진다.

by 중은우시 2015. 3. 26.

: 뇌신(賴信)


기원전607년 봄의 어느 저녁 송(宋)나라의 군영에 등불이 훤히 밝혀져 있었고, 횃불이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공기중에는 양고기 냄새가 퍼져나왔다. 원래, 송군의 총사령관 화원(華元)이 전투력이 강한 호분(虎賁) 용사들로 하여금 정(鄭)나라 군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연회를 베푸는 중이었다. 화원의 차부(車夫)인 양짐(羊斟)은 양고기를 나눠받지 못했다. 혼자서 군영의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건량을 뜯고 있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는 화원에게 양짐에게도 양고기를 한 점 나눠주자고 건의한다. 그러나 화원은 입을 삐죽이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한다: "싸움은 그가 하는게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송군과 정군의 결전이 벌어진다. 양군의 전투가 한창 무르익을 때, 양짐은 화원의 전차를 몰고 정군의 진영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자신이 혼자서 적진에 고립될 순간에 처하자, 화원은 급히 양짐을 질책한다. 이때 양짐은 고개를 돌려 천고에 남을 명언을 남긴다: "옛날에 양고기를 나눌 때는 네 마음대로 했지만, 오늘 전차를 모는 일은 내 마음대로 한다(疇昔之羊, 子爲政, 今日之事, 我爲政)." 말을 하는 동안에 전차는 이미 적진영으로 들어갔다. 정군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화원을 붙잡아 꽁꽁 묶어버린다. 총사령관에 포로로 잡히자, 송군의 인심은 흐트러지고, 순식간에 와해되고, 일패도지한다.


남당 원종 이경(李璟)은 일찌기 대장 호칙(胡則)을 파견하여 강주(江州, 지금의 구강)을 지키게 한다. 이때 남당의 국도는 이미 점령되었다. 조한(曹翰)의 군대가 강주를 포위한지, 이미 3년이 지났다. 강주성은 아주 견고하여, 점령되지 않고 있었다. 하루는 호칙이 회어(鱠魚)를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주방장에게 요리하라고 한다. 요리를 한 후 그가 한 입을 맛보니 맛이 별로여서 크게 화를 낸다. 주방자에게 온갖 욕을 다했을 뿐아니라, 칼을 뽑아서 그 주방장을 죽여버리려 한다. 다행히 호칙의 처가 옆에서 말려서 주방장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주방장은 아주 겁을 먹었고, 호칙이 아주 미웠다. 그날 깊은 밤, 성벽에 밧줄을 내려 성에서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그는 다시 조한의 군대를 데리고 험준함을 입도 방어를 하지 않고 있던 성의 서남각을 공격해 성에 진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호칙의 군대는 이로 인하여 혼란에 빠지고, 그날 밤에 바로 성을 빼앗긴다. 호칙의 일가족은 모조리 피살된다.


소인물도 사람이다. 그들의 지위는 비록 비천하지만, 마찬가지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 소인물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과는 아주 심각해진다. 심지어 참중한 댓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