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기록

무정(武丁)은 어떻게 상왕조의 전성기로 만들었는가?

중은우시 2015. 3. 26. 17:16

글: 조지호(趙志浩)


반경(盤庚)의 천도이후 14년만에 사망하고, 그의 동생 소신(小辛)이 계위한다. 소신은 재위3년만에 죽고, 다시 동생 소을(小乙)이 계위한다. 소을은 10년간 재위했고, 정치적 업적은 보통이다. 그러나 그는 교육을 중시하여 아들 무정(武丁)을 열심히 공부하여 지식과 문화를 익히게 하였다. 그리고 무정을 민간에 내려보내 단련하게 한다.


무정은 부친의 희망을 등에 업고 황하의 가로 가서 민중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며 함께 일한다. 그러는 동안이 민간의 질고를 이해하고, 귀족의 나쁜 습관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상왕의 통치전략이 민간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지도 조사하여, 치국시정의 원시자료를 획득하게 된다.


무정은 또한 현명한 인물을 찾아서 스승으로 모신다. 그는 우(虞)의 땅(지금의 산서성 평릉 경내)에서 감반(甘盤)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얘기를 나눠본 후 감반이 박학다식하고 재덕을 겸비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즉시 감반을 스승으로 모신다. 감반은 무정이 웅장위무하며 총명하며, 포부가 원대한 것을 보고 그를 제자로 거둔다. 무정은 항상 그의 가르침을 받아 얻는 바가 적지 않았다.


무정이 우산(虞山, 지금의 하남섬 삼문협 북쪽)에서 제방을 수리하는 범죄인(이들은 서미(胥靡)라 불린다)을 만나는데, 그중 한 사람은 의복이 남루하고, 얼굴색이 시커멓지만, 기우가 헌앙하고, 풍채가 비범했다. 원래 그는 "열(說)"이라는 이름의 은사(隱士)였다. 이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이 은사는 학문이 깊고, 안방치국(安邦治國)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무정은 그를 만나서 크게 기뻐한다.


소을이 사망한 후, 무정이 계위하고, 감반을 경사(卿士)로 삼는다. 그는 무정을 도와 정무를 처리한다. 무정은 3년간 조정에 대하여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암중으로 관찰만 하고, 치국의 양책을 고민했다. 3년후 무정은 친히 집정하고, 그 "열"이라는 이름의 사람을 불러 조정에서 그를 보좌하게 한다.


일개 '서미'로 하여금 조정의 정무를 보좌하게 하다니, 분명 왕공귀족과 국민의 반대가 만만찮을 터였다. 무정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신이 꿈에서 상제가 보내준 "열"이라는 성인을 만났다고 하면서 그의 구체적인 용모파기를 얘기한다. 그는 나중에 부암(傅巖)에서 그를 찾아내니, 모두 믿고 복종했다. 후인들은 이 "열"이라는 사람을 "부열(傅說)"이라고 불렀다.


감반, 부열과 조을(祖乙)의 보좌를 받으며, 무정은 은(殷)을 흥성시키는 행동을 개시한다. 관리를 각지에 보내어 농업, 목축업을 조사, 지도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을 장려하며, 부세를 감경해주고, 재난을 당하면 구제해준다. 또한 가난한 지역에는 종자, 소말을 빌려주어, 부유해진 후에 갚도록 했다.


그래서 십년이 지난 후, 의식이 풍족해지고, 소말이 떼를 이루며, 천하는 잘 다스려지고, 사회는 안정된다.


하루는 무정이 왕공귀족을 이끌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러 갔다. 그런데 돌연 야계(野鷄, 雉, 꿩)이 한 마리 날아와 태묘를 돌다가 동정(銅鼎)에 앉는다. 그리고 사람을 보면 크게 울었다. 무정은 이 모습을 보고, 제사가 불공(不恭)하여 상탕(商湯)에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여긴다.


조을이 그 기회를 틈타 아뢴다: "대왕이 계속하여 덕을 닦으면, 무슨 요괴귀신이라 하더라도 화를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야계는 놀라서 도망친다. 이때부터 무정은 더욱 덕을 쌓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데 주력한다.


정무를 잘 처리하기 위하여 무정은 고문단을 조직한다. 덕과 재능이 있는 노인을 학부로 모셔와서, 시시때때로 그들의 의견과 건의를 듣고, 치국책략을 수정한다.


상왕조의 북방과 서방에는 3개의 비교적 강대한 유목민족이 있었다. 내몽골남부, 섬서, 산서북부의 길방(吉方) 민족은 실력이 강대하여 자주 괴롭혔고, 상왕의 땅을 약탈했다. 무정은 토벌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분산거주하고 있어, 수십년이 걸려 비로소 길방민족을 평정한다.


토방(土方)과 귀방(鬼方)은 상왕조 북방의 두 유목민족이다. 토방은 상대적으로 약해서 금방 평정된다. 그러나 귀방은 상대적으로 강하여, "삼년만에 토벌한다"


강(羌)은 서쪽의 오래된 민족이다. 활동범위는 오늘날의 청해성 동부, 감숙과 내몽골남부였다. 그들도 분산거주했고 통일된 민족이 아니었다. 무정이 여러번 토벌했으나 일부 부족만 복속시킨다. 무정이 죽은 후에도 강족 전부를 복속시키지는 못한다.


남방의 형초(荊楚)는 시시때때로 반란을 일으켰다. 무정이 친히 출정하여 그들이 칭신납공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무정은 해마다 군사를 동원하였고, 한 무리의 여장(女將)을 양성한다. 평상시에는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지만, 전쟁시에는 출정한다. 명실상부한 건괵영웅이다. 그중 "부호(婦好)"는 이 자매들중 걸출한 대표이다.


결론적으로, 무정은 웅재대략을 지니고, 동정서토, 남공북벌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많은 영토를 확장한다. 그는 덕으로 정치를 베풀었고, 황무지개간을 장려하며, 부세를 감경시켜주어 백성들이 의식을 풍족히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무정이 문치무공은 모두 다른 상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상왕조는 전성기에 이른다. 그는 중화민족이 이후 계속 확장하도록 하는데 튼튼한 기초를 닦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