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백용(馬伯庸)
<서유기>에서 가장 멋있는 부분은 서량 여인국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여인국의 주인은 천교백미(千嬌百媚)하여 당승까지도 거의 마음이 동요될 정도였다. 독자들은 이 내용을 읽으면서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부지불식간에 정말로 그런 나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서유기>의 이야기는 진실한 <대당서역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데, 많은 경력은 현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인국을 찾을 수 있을까?
있다.
<구당서.남만전>을 보면 동녀국(東女國)에 관한 기록이 있다: "습속이 여자를 왕으로 삼는다. 동으로는 무주(茂州), 당항(黨項)에 접하고, 동남으로는 아주(雅州)와 접하며, 나녀만(羅女蠻)과 백랑이(白狼夷)와 경계를 하고 있다. 여왕은 "빈취(賓就)"라 불리고 여성관료는 "고패(高覇)"라 불리며, 국사를 논의한다. 외직관료는 남부(男夫)가 맡는다. 왕의 시녀는 수백명이고, 5일에 한번씩 정무를 본다."
무주는 현재의 쓰촨성 원촨(汶川)이고, 아주는 현재의 야안(雅安)이다. 소위 이 여인국은 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오늘날의 단바쟈룽장구(丹巴嘉絨藏區)이다. "쟈룽"의 뜻은 '여인의 골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동녀국의 지리적 위치는 현장이 서행한 노선에서 벗어나 있다. 당승이 이곳으로 와서 여인국을 지났다면 셀파를 만나서 히말라야산을 넘었을 것이다.
<대당서역기> 제4권에서는 현장이 스스로 또 다른 동녀국을 언급하고 있다. "이 국가의 북쪽 대설산의 소벌랄나구달라국이 있는데....즉, 동녀국이다. 대대로 여자가 왕에 올라서 여(女)를 나라이름으로 삼았다. 남편(夫)도 왕인데 정무를 알지 못한다. 남편은 오직 전쟁을 하고 농사를 지을 뿐이다. 토지는 숙맥(宿麥)이 잘 자라고, 양과 말을 많이 기른다. 기후는 차갑고, 사람들의 성격은 조급하고 포악하다. 동으로는 토번국에 접해 있고, 북으로는 우전국에 접해 있으며 서로는 삼파하국에 접해 있다."
어떤 학자의 고증에 따르면, 이 동녀국의 개략적인 위치는 현재의 케시미르지구 부근이라고 한다. 티벳 상웅(象雄)문명의 일부분에 속하며, 또 다른 유명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구거(古格)왕조이다.
그러나 이 여인국은 현장이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다. 고증이 가능한 최초의 사료는 배구(裴矩)이다.
배구는 <서역도기>라는 책을 썼는데, 티벳 44개국의 풍토인정을 기록했고, 수양제에게 바친다. 수나라가 서역에 진출하는데 쓰일 정보를 모은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흩어졌다. 그러나 <수서.서역전>에 대량의 자료를 남겼다. 이 책에서 여인국을 언급하고 있다: "여국(女國), 총령(파미르고원)의 남쪽에 있고, 이 나라는 대대로 여자가 왕이 된다. 왕의 성은 소비(蘇毗)이고, 자는 말갈(末羯)이다. 20년동안 재위했다. 여왕의 남편은 금취(金聚)라고 하는데 정무를 보지 않는다. 국가내에서 남편은 오로지 전투를 의무로 한다."
이를 보면 수나라때 이 여인국은 이미 중원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지리적 위치는 파미르고원의 남쪽으로 현장이 언급한 여인국과 같다.
그러나, 동녀국이든 여국이든 엄격하게 말하면 여인국이 아니다. 그들의 국내에는 많은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수량도 적지 않았다. 단지 여자가 정치를 할 뿐이다. <서유기의 그 순수한 여인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마음이 세심한 사람은 이미 주목했을 것이다. <구당서>의 여인국은 동녀국이라고 하는데, 현장이 쓴 그 소벌랄나구달라국도 동녀국이라고 불렸다.
왜 동녀국인가? 그렇다면 서녀국도 있을까?
<구당서>에 동녀국을 언급할 때, 국명의 내력을 이렇게 해석했다: "서해(西海)의 가운데 다시 여인국이 있다. 그래서 동녀라고 하였다." 즉, 여인국은 3개가 있다. 동쪽에 2개, 서쪽에 1개. 단바에도 동녀국이 있고, 대설산에도 여인국이 있다. 그리고 더욱 먼 서해에도 섬나라인 여인국이 있다.
다시 현장 본인의 기록을 보자.
<대당서역기> 제11권에는 파랄사(波剌斯)국을 언급하는데, 파랄사국은 페르시아(波斯)의 사산왕조를 의미한다. 한 마디를 덧붙인다: "서북으로 불름국이 접해 있는데, 불름국의 서남해 섬에 서녀국(西女國)이 있다. 모두 여인이고 남자는 개략 없다. 진기한 보물을 불름국에 주었고, 불름의 왕은 매년 남자를 보내주었다. 그들의 풍속은 사내아이는 모두 사내구실을 못한다(男皆不擧)."
즉, 사산조 페르시아의 서북쪽에는 불름국이 있고 그와 이웃해 있다. 불름국의 서남쪽에는 섬이 있는데 섬의 나라가 바로 서녀국이다. 이 국가는 모두 여자이고 남자는 극히 적다. 불름국에 붙어 사는데, 후대를 낳기 위하여 불름국에서 남자를 받아서 자식을 낳는다. 이 국가에서 출생한 남자는 모조리 임포이다.
얼마나 비참한 나라인가. 정자마저도 수입해야 하다니.
그렇다면 이 비참한 여인국의 구체적인 위치는 어디일까?
사산조페르시아의 강역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등지를 포함한다. 그의 서북방향은 보스포러스해협의 콘스탄티노플이다. "불름"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대명이 자자한 비잔틴제국이다.
비잔틴의 서남의 섬은 확실히 애게해이다. <구당서>의 "서해의 가운데 또 여인국이 있다"는 기록과 완전히 일치한다.
여인국의 내력에 관하여 필자는 장서산(張緖山) 선생이 쓴 서녀국에 관한 고증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서 독일의 한학자인 하덕(夏德)이 큰 단서를 제시해주었다.
고대그리스시대에, 여인국이 존재한 바 있다. 이름은 아마존(Amazon)이다. 아마존은 흑해의 가 소아시아일대에 살고 있었다. 아마존족은 모두 여성전사들인데 아주 용맹했다. 그녀들은 창을 던지고 활을 쏘는데 편의를 위해 자신의 유방을 베어냈다. 아마존 내부에는 남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근부락의 남성과 교합을 통하여 후대를 낳았다. 여자아이를 낳으면 남겨두고, 사내아이를 낳으면 남자측에 주거나 죽여버렸다. 호메로스, 헤로도투스, 아리안등의 저작에 모두 언급되어 있다. 그리스신화에는 더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하덕이 열어준 단서는 현장이 기록한 서녀국이 아마도 바로 고대그리스 아마존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들의 활동범위도 비슷하고, 풍속도 비슷하다. 서녀국은 비록 전투력이 예전같지는 못하지만 아마존인들은 외족과 혼인하고, 딸은 남기되 아들은 남기지 않는 전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비잔틴에서 남자를 수입하여 후손을 낳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가정이 성립한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생각해보라. 당승 삼장법사가 만난 것은 애교넘치는 여인국의 주인이 아니라, 위풍당당한 아마존의 여왕이었던 것이다. 만일 창 몇 개만 휘둘렀다면 구세동남의 기록은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가정은 그저 가정일 뿐이다. 아마존과 서녀국간의 관계는 실질적인 증거가 부족하다. 그저 이야기거리일 뿐이다. 기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또 다른 한 국가는 아마존보다 더욱 여인국의 원시적인 모습에 부합한다.
그 국가의 이름은 렘노스이다.
독일인 쉬바브가 편찬한 <그리스신화이야기>에는 에게해에 렘노스라는 섬이 있다고 한다. 이 섬의 남자들은 배를 타고 나가서 바깥에서 많은 외지여인들을 데려왔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나타나서, 섬의 본부인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고, 이들 여인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들 외지여인들과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다. 국왕의 딸 힙시필레는 스스로 여왕이 된다.
이들 여인들은 이 큰 일을 저지른 다음 돌연 섬에 싸울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걱정을 하게 된다.
마침 이 때, 아르고의 영웅들이 배를 타고 이 곳으로 온다. 이것이 그리스신화의 유명한 전설이다. 이아송이 수퍼영웅들을 이끌고 아르고호를 타고 바다을 건너 황금양털을 찾는 모험이야기이다.
그들의 배는 렘노스섬에 정박하는데, 섬에 남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힙시필레여왕은 마침 섬에 남자가 없어서 걱정하고 있어서 우두머리인 이아송에게 말한다. "이곳에 남아서 나와 짝을 이루는 것이 어떻겠는가. 당신이 국왕을 하고 나는 왕후를 하고 함께 살자. 굳이 천리만리 먼길을 가서 황금양털을 찾아야 겠는가? 너의 부하들은 내가 여자들을 찾아서 짝을 지어주면 된다." 어떤가? 귀에 익은 내용이 아닌가.
이아송은 여왕의 애교에 넘어가고, 나머지 영웅들도 여자를 하나씩 안고 궁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향락을 즐기는 생활을 한다.
<그리스신화이야기>의 내용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쉬바브는 특별히 한 마디를 적는다. "헤라클레스만이 원래 여색을 싫어하여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배에 남아 있었다." 여색을 싫어하던 헤라클레스와 동료들이 배에서 무엇을 했을까? 모른다. 어쨌든 여러 날이 지난 후 헤라클레스는 이아송이 여전히 떠나지 않으려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그에게 떠나자고 재촉한다. 이아송이 헤라클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미련을 가득 품고 길을 떠난다. 힙시필레 여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황금양털을 취하면 돌아와서 나를 찾아올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후의 이야기는 모두 알 것이다. 이아송은 미디아와 함께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도 아르고영웅이 렘노스섬에서 겪었던 이야기는 당승이 여인국에서 겪었던 이야기와 아주 비슷하다. 긜고 섬나라라는 설정은 서녀국의 기재와 들어맞는다. 신화학의 각도에서 보자면, 서녀국은 아마도 레노스섬의 지리적 위치와 아마존의 생활방식등 두 가지 기원을 가진 결합의 산물이라고 할 것이다.
렘노스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아니다. 나중에 트로이전쟁이 시작된다. 그리스연합군이 길을 가다가, 필로크테테스라는 명궁이 부상을 입어 밤낮으로 신음을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그를 렘노스섬에 버린다. 나중에 연합군이 트로이를 공격하지만 대치상태를 지속하는데, 한 예언가는 반드시 필로크테테스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와야 승리를 거둘 수있다고 말한다. 오디세우스는 다시 무인도로 돌아가 그를 찾는다. 계책을 써서 그를 트로이성아래로 불러오고, 파리스를 화살로 쏘아 죽인다. 전쟁국면은 이로써 변화를 맞이한다...
이를 보면 트로이시대에 렘노스섬은 이미 황무지가 된 것같다. 섬위의 여인들이 적막을 참지 못하고 다른 남자를 따라서 떠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적에게 멸망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아있지 않았다. 후세의 서녀국이 있던 섬이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렘노스섬인지 아닌지. 그러나 그녀들의 이야기는 확실히 후세에 전해졌고,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전설의 모체가 되었다.
아쉬운 점은 서녀국의 전신이 아마존부락이든 렘노스섬의 버려진 부인들이든, 그 위치는 모두 멀리 애게해에 있다는 것이다. 현장이 인도로 갈 때 아무리 서쪽으로 돌아가더라도 이곳까지 갈 수는 없다. 그가 정말 여인국으로 가서 구경하려고 했다면 계속 서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장은 <대당서역기>에 반복하여 강조한다. 이것들은 "인도의 나라라가 아니고 길가다가 들은 것이다." 즉, 그가 가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당승이 먼저 여인국의 이야기를 실컷 해놓고, 뒤에 가서 직접 가본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다니, 그것도 귀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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