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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홍수전)

홍수전(洪秀全)과 양수청(楊秀淸)

by 중은우시 2015. 2. 10.

글: 오구(吳鉤)


양수청은 태평군의 군사(軍師)이고, 태평천국의 동왕(東王)이다. 동시에 그는 또 하나의 더욱 대단한 신분을 지니고 있다: 천부(天父)의 대리인이다.


홍수전에 있어서, 양수청이 두려운 점은 그가 세속의 군정대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비범한 신분 즉 천부하범(天父下凡)시 유일하게 말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신분을 빌어, 양수청은 천왕 홍수전의 권력의 배꼽과 정치의 명맥을 장악한다. 만일 배상제회 시기의 천부의 전언은 교도들에게 '진심으로 천왕을 모셔라'는 것이지만, 천경시기에 동왕의 입에서 나오는 천부의 유지는 이미 한걸음 한걸음 천왕의 존엄과 권력방어선을 침범하기 시작한다.


함풍3년(1853년) 십일월, 홍수전이 천경으로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격이 너무 불같아서" 후궁을 학대했다. 천부는 이 자잘할 일에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홍수전을 질책한다: "임금된 자로서 나쁜 성질을 버리지 못하고, 신하의 간언을 듣지 않고, 힘이 되는 충신도 일단 노하면 죽여버러셔 국정이 이상하게 되었다" 천부는 천왕에게 곤장 40대를 때려 징계를 하고자 했다. 여러 관리들이 엎드려 애원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천왕이 '명에 따라 엎드려 곤장을 맞고서야" 천부는 그를 사면한다.


또 한번은 한 태평군에 포로로 잡힌 시골사람이 잘못하여 천왕이 거처하는 곳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마도 천왕의 운우지사를 구경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홍수전에게 죽임을 당한다. 천부는 금방 내려와서 천왕을 견책한다: "그대는 형제들과 강산을 얻었는데, 어찌 사람을 죽이면서 넷째 동생(양수청)과 상의하지 않았는가? 견책을 받아야 한다. 무겁게 벌을 받아야 한다" 홍수전은 무릎을 꿇고 천부에게 벌을 면해달라고 애원한다. 북왕 위창휘와 익왕 석달개도 무릎을 꿇고 대신 벌을 받겠다고 한다. 천부는 그제서야 천왕을 용서하고 천국으로 돌아간다. 


이런 사정은 청나라정부 관리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대의 반역의 말로는 신하에게 제압당하거나, 권력을 찬탈한 자도 있고, 붙잡아서 바친 자도 있고, 기습하여 죽인 자도 있다. 그러나 무릎을 꿇고 곤장을 맞으면서도 왕이라는 존귀한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황당한 어린애 장난같은 일이다. 정말 개미떼만도 못하다." 이는 그들이 태평천국의 특수하고 복잡한 이중권력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책천왕(杖責天王)"은 그저 양수청이 홍수전에게 위세를 보인 것일 뿐이다. 다음해(함풍4년)에 발생한 또 다른 두 가지 사건은 동왕이 조심스럽게 천왕이 가장 신경쓰는 이데올로기의 핵심대권을 찬탈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해 정월, 천부가 하범하여 여사(女師), 여승상(女丞相)을 불러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너희 넷째형(즉 양수청)에게 고하여 천왕에게 전하게 하라. 일찌기 일체의 고서는 요서(妖書)라고 폄하한 바 있는데, 다만 사서십삼경의 가운데에는 천정성리(天情性理)를 밝히는 것이 아주 많다. 제가치국효친충군의 도리를 선명한 것도 역시 적지 않다. 그래서 너희 동왕은 명을 내려, 무릇 정도충효에 맞는 것은 남기고, 기미괴탄한 것에 가까운 것은 없애도록 하라."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홍수전이 말한 정유이몽(丁酉異夢)때, 그는 친히 공자가 천사에게 묶여서 천당에서 죄를 받는 것을 본다. 공자의 책은 당연히 요언혹중의 설이다. 그래서 홍수전은 천경을 도읍으로 정한 후, 즉시 조서를 내려 금훼했다: "무릇 공맹제자백가의 요서사설은 모두 불태워 없애고, 매매하거나 보관하거나 읽는 것을 금지한다." 다만 이제, 양수청이 천부의 말을 빌어 사서십삼경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하다니, 이는 천왕의 조령에 도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천왕의 이몽이 믿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이 해 육월, 천부가 다시 하범하여 말하기를, "짐이 오늘 하범한 것은 다른 일이 아니다. 그대들이 번방에 보존하고 있는 구유조서(舊遺詔書), 신유조서(新遺詔書)를 간행했는데, 그 구유조서,신유조서는 잘못 기재한 것이 많다. 그대는 북왕과 익왕에게 말씀드리고, 동왕에게 말씀드리고 그대의 주인(천왕)에게 보고여 이 책은 출간되지 못하게 하라." 천부성유에 나오는 '구유조서,신유조서'는 바로 성경의 신약,구약전서를 말한다. 홍수전은 '공맹요서사설'을 금지시키는 동시에, 그가 삭제수정한 후의 <성경>(예를 들어, '하나님은 형태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는 삭제함)을 성서로 정한다. 1853년부터, 계속하여 인쇄하여 발행했다. 다만 현재, 양수청은 성서에 '잘못기록한 것이 많다'고 반드시 간행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왕은 확실히 태평천국의 백성들에게 양수청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이 그들이 지금까지 신봉해온 <성경>기록보다 믿을 만하고, 더욱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체현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삭제수정판본의 <성경>과 꾼 정유이몽은 바로 천왕이 만든 그의 신성(神性) 신분과 권력 합법성의 기초이다. 그가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이데올로기의 안전 방어선이다. 천부의 이 두번의 전언은 천왕이 이전에 깨닫고 얘기한 일부 계시가 원래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천왕은 지금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의 통치가 하나님의 의지를 완벽하게 체현하고 있다고 믿게 할 수 있을까? 천당의 '권력모체'와 유리되면 권력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이니, 이미 위기가 이 인간천국 최고통치자의 핵심권력에 미치게 되었다.


천부의 화신인 동왕은 갈수록 안중무인이 되고 모든 것을 눈아래에 둔다. 천부가 양수청의 몸에 붙었을 때 선유를 내리면, 홍수전 본인도 친히 궁을 나와서 영접해야 하고, 천왕부의 문턱에 꿇어앉아 성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양수청은 정좌양신하고 있다. 함풍5년(1855년) 칠월, 천부는 돌연 삼경때 하범하여 성지를 천왕에게 고하라고 한다. 위창휘, 석달개 및 여러 조정관리들에게 동왕을 부축하여 등청하라고 명한다.


여러 사람들이 동왕을 부축하여 천왕부로 가서 조서를 읽는다. 그때는 야심한 시각이었으므로 천왕부의 문은 여러 겹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한꺼번에 즉시 열 수가 없었다. 천부는 화를 벌컥 내며 조서를 내려 말한다: "이렇게 오래동안 여전히 문을 열지 않느냐. 정말 맞아야 하겠구나." 천왕은 급히 나와서 죄를 청하고, "동왕의 금여를 금룡전까지 영접한다."


금룡전에 도착한 후, 천부는 홍수전의 정궁 뇌씨를 앞으로 불러 분부를 듣게 한다: "뇌씨며느리, 그대는 시시때때로 천부를 공경하고, 천주를 공경할 줄 안다. 나머지 여러 며느리들은 가르칠 자는 가르치고, 때릴 자는 때려라. 그러나 함부로 때리지는 말라. 만일 간사한 자가 있으면 고할 것은 고하라. 마음껏 고하라 그러나 함부로 고하지는 말라." 그후 천부는 다시 천왕일가에 당부한다: "전체 궁과 청등내전의 일체의 사무는 나이들고 성숙한 숙녀를 뽑아서 낭낭, 왕낭으로 하여 내무를 관리하게 해서 내조하도록 하라. 너희를은 생각하라. 짐은 하늘로 돌아간다."


천부가 이번에 깊은 밤에 대거 무리를 이끌고 하범하다니 그리고 홍수전의 처자식을 침대에서 끄집어 내어 훈계를 한바탕 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당당한 천왕이 천부가 부체한 양수청의 앞에서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천왕의 아래에 있는 왕후직관은 양수청에 끌려다니는 '천왕의 위엄'에 더욱 황공해하고 불안해 했다. 정승상 진종양은 처와 4,5번 동침하였다가 명찰추호의 천부에 발견되어 참수당한다; 또 다른 정승상 증수원은 동왕에게 태만했다가 천부의 성지로 참수당한다; 북왕 위창휘는 천부하범때, 자녀들에게 명을 전하지 않았다고 하여 곤장 40대를 맞는다; 익왕 석달개는 비록 곤장까지 맞지는 않았지만, 매번 양수청이 천부가 몸에 붙었다고 말하면 황송하여 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