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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삼국시대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0대 영웅

by 중은우시 2015. 1. 21.

글: 복녕객(福寧客)

 

"곤곤장강동서수(滾滾長江東逝水), 랑화도진영웅(浪花淘盡英雄)"

그렇다면, 삼국의 국세에 영향을 가장 크게 준 10대인물은 누구일까?

가헌(稼軒, 신기질)은 "생자당여손중모(生子當如孫仲謀)......천하영웅적수(天下英雄敵手) - 조류(曹劉)"라는 말을 했다. 이 세 사람이 랭킹이 앞선 3명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원곡(元曲)에는 이렇게 썼다: "문인간수시영웅(問人間誰是英雄)? 유시주임강(有釃酒臨江), 횡삭조공(橫槊曹公), 자개황기(紫蓋黃旗), 다응차득(多應借得), 적벽동풍(赤壁東風), 갱경기남양와룡(更驚起南陽臥龍), 편성명팔진도중(便成名八陳圖中), 정족삼분(鼎足三分), 일분서촉(一分西蜀), 일분강동(一分江東)"

 

이 곡은 천하영웅을 노래한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적볃개전은 그저 우연히 이긴 것뿐이고, "사수사성명(使竪子成名)"한 것이다. "동풍불여주랑편(東風不與周郞便), 동작춘심쇄이교(銅雀春深鎖二喬)"는 바로 그런 뜻이다.

 

그리고 필생을 조조와 겨룬 유비는 아예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유씨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서 반평생을 참담하게 경영하였지만 나라를 완전히 회복시키지 못한 공명이다. 그것도 공명을 조조의 조연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나의 "경(驚)"자는 조조의 위세를 말해준다. 천하를 떨게 만들고 와룡을 놀라서 움직이게 하여 황급히 전쟁터로 나서게 만들었다. 이미 고하는 분명하다.

 

이는 물론 편파적이다. 조조가 비록 "비상지인, 초세지걸(非常之人, 超世之傑)"이기는 하지만, 다른 인물의 풍채를 모두 뒤덮을 수는 없다. 어쨌든 "곤곤장강동서수, 낭화도진영웅"처럼 삼국시대에는 영웅호걸이 많이 나타났고, 인재가 배출되는 시대였던 것이다.

 

1. 조조.

 

삼국시대에 국면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인물을 꼽으라면 조조를 꼽아야 한다는데 이론이 거의 없을 것이다.

군웅할거이레 조조는 항상 쟁패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북방의 쟁패전장에서 계속하여 투쟁의 중심이었고, 이런 상황은 적벽대전이 되어서야 약간 바뀌고, 쟁패의 중심이 황하유역에서 장강유역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조는 삼국에서 첫손꼽히는 정치가, 군사가, 문학가이다. 문무를 겸비했고, 당시 사람들 중에서 그에 버금갈 사람이 없었다.

관도지전에서, 약한 군대를 이끌고 강한 군대를 이기니, 이는 전체 북방의 국면을 결정짓는 일전이었다. 또한 삼국시대 최초의 저명한 대전이기도 하다.

나중에 그는 북방을 통일하여, 이미 나중의 삼국국면의 출현을 향하여 첫발걸음을 내딛였다. 그리고 나중에 통일하는데 기초를 닦는다. 삼분천하에서 실력이 가장 강한 조위측은 확실히 조조가 혼자의 힘으로 창건한 것이다.

 

2. 주유

 

삼국의 제2인물은 필자의 생각으로 직접 천하삼분을 가져온 적벽의 총사령관 주유를 꼽아야 할 것이다. 삼국의 전기의 천하국면을 결정한 것은 조조와 주유라 할 수 있다. 한 명은 북방을 통일했고, 다른 한 명은 천하삼분을 가져온다. <삼국명신찬서>에서 주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만절요기(晩節曜奇), 즉삼분어적벽(則三分於赤壁)" .
"탁탁약인(卓卓若人), 요기적벽(曜奇赤壁), 삼광삼분(三光參分), 우주잠격(宇宙暫隔)" 이전의 정통파사학자들은 모두 <융중대>를 근거로 하여 삼분의 공로를 제갈공명에게 돌린다. 그러나 기실 그렇지 않다. <융중대>는 단지 일종의 예견이고, 삼분을 결정한 그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유일한 공헌이라면 손류연맹을 이루는데 앞장선 것뿐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대세가 그러했던 것이다.(누구를 파견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손권측이 주도적이었다.

조.유,손의 적벽대전(208년)은 중고역사상 일대사건이다. 조조가 승리하면 한말20년의 분열의 국면은 끝이 나고 통일이 되는 것이며, 손,류가 승리하면, 삼국정립의 형세가 형성되는 것이고, 전쟁은 다시 70년이 연장된다. 시비와 공과를 별도로 하면, 적벽대전이 총사령관 주유는 확실히 그의 혼자 손으로 삼분국세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는 초기에 손책을 보좌하여 강동을 평정하는데, 그는 동오 개국입업의 최대공신이다.손권이 황제를 칭할 때 이렇게 감탄하여 말한다: "주공근이 아니면, 짐이 황제를 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보면, 동오의 제일인은 바로 주유라 할 수 있다.

 

3. 유비

 

셋째는 한 손으로 촉한제국을 건립한 유비이다. 그는 조조, 주유와 같이 당시 국면에 결정적인 변경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이릉전투는 촉한에 의하여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가 창업한 기업은 삼국중 가장 약했다(그리고 나라를 훔친 혐의도 있다). 그래서 그는 3위에 랭크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일생동안 남북을 전전하며 계속하여 당시 할거투쟁의 최전방에 있었다. "절이불요(折而不撓), 종불위하(終不爲下)"했고, "수전패함난이신의유명(雖顚沛陷難信義愈明)"했다. 그는 확실히 일세의 영웅이다. 위의 두 사람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

 

4. 손권

 

넷째는 자연히 동오의 주인인 손권이다. 그는 일생동안 비록 수성지주(守城之主)이지만, 그는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에 항거하기고 하고(적벽지전), 위와 연합하여 유에 대항하기도 했다(이릉지전). 그리고 두번 모두 대승을 거둔다.(동시에 당대의 이 두 효웅과 겨룰 수 있었던 자가 그 이외에 또 누가 있었는가?) 강동에 할거하여 결국은 황제의 기업을 이룬다. 조조도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자당여손중모". 그의 웅재는 이로써도 알 수 있다.

하물며 오월은 이때끼지 오랑캐의 땅이었고, 춘추 오월풍운이후, 강동은 비로소 처음으로 다시 한번 역사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5. 제갈공명

 

다섯재는 촉한승상 제갈공명을 꼽아야 한다. 그는 유비가 죽은 후 촉한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내정,군사등 방면에서 모두 성취를 이룬다. 남방 소수민족을 평정하고 북벌을 하여 촉한정권을 공고히 했고, 삼국의 국면을 연장시킨다. 삼국후기에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공적은 후세에 확실히 과장되었다. <삼국연의>에서는 더더욱 일대의 "지성(智聖)"이 된다. 기실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비록 몇번 북벌했지만 모두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다. 단지 이리저리 사우면서 밀고 당기는 지구전을 펼쳤을 뿐이다.

 

6. 사마의

 

여섯째는 제갈공명의 적수인 사마의이다. 그의 최대공헌은 자연히 점진적으로 조위의 정권을 장악한 데 있다. 그의 자손이 결국은 나라를 빼앗아 황제에 오른다. 그의 가장 큰 공로는 오장원에서 제갈공명을 상대하면 시간을 끌어서 그를 죽게 만든 것이다.

일찌기 그를 공명보다 앞에 두는 것을 고민해본 바 있다. 그의 뛰어난 업적은 어쨌든 많지 않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제갈공명만 못하다(특히 나라를 다스리는 점에서 그는 업적이 많지 않다). 그리고 그의 집정은 공명보다 늦다. 공명이 앞의 세번의 북벌에서 만난 것은 조진, 곽준, 장합등이다. 마지막에 사마의와 싸우는데, 그때는 이미 끝마무리시점이다. 하물며 그의 승리는 절반이상 위나라의 웅후한 국력에 기한 것이다. 그의 능력이 남보다 월등히 뛰어나서가 아니다.

다만, 어찌되었건 그는 서위의 창시자이다.그리고 맹달, 공손연등의 반란을 제압하는데도 아주 깔끔했다.

 

7. 손책

 

일곱째는 다시 삼국전기인물로 되돌아온다. 소패왕 손책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군웅할거시기에 그는 많지 않은 풍운인물이다. 부친이 남긴 수천의 인마를 이끌고 동남의 대지를 차지한다. 일생동안 패전이 없었다. 그래서 조조마저도 이렇게 경탄한다: "사아난여쟁봉(獅兒難如爭鋒)". 아쉽게도 그는 젊은 아니에 요절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오나라의 창시자라는 신분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지나칠 것이 없다.

 

8. 육손

 

여덟째는 책의 사위 육손이다. 일대효웅 유비가 그의 손에 패망한다. 그가 지휘한 이릉지전은 삼국이 후기에 접어드는 관건이고, 삼국시대 3대전투의 하나이다.

그는 내정방면에서도 뛰어났다. 오나라의 제갈이라 할 수 있다.그리고 후기에 오나라의 대국에 관련된 핵심인물이다.

 

9. 유언(劉焉)

 

아홉번째로 얘기할 사람은 아마도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바로 <삼국지> 촉서 제1편에서 말하는 익주목 유언이다.

그가 중요한 원인은 자연히 그가 익주의 기업을 처음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는 나중에 유비가 촉한제국을 건립하는 근본이 된다.

그러나 그의 수단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중의 할거세력 장로는 그가 직접 배양한 사람이다. 기타 대소할거세력은 모두 그와 관련이 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한나라말기에 지방을 관리하는 관리는 원래 자사였다. 그러나 유언이 진언하여 그것을 군사,정치,경제대권을 독점하는 주목(州牧)으로 바꾼다. 그후 몇몇 종친이 각각 한 주씩을 차지한다. 그래서 나중에 군벌혼전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가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제왕지기가 있는 익주를 점거하고 촉한기업의 바탕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10. 가후(賈詡)

 

열번째로는 조조측에서 찾아야 하고, 가후를 꼽아야 할 것이다.

그는 비록 조조의 심복은 아니지만, 여러 전투의 기획에서 모두 적지 않게 힘을 보탠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전후로 여러 사람을 위하여 힘을 다한 것이다. 가장 먼저 동탁을 모시고, 경성에서 작란을 일으킨다.나중에 이,곽 2명의 반란을 선동한다. 그리하여 한실의 위망이 철저히 바닥에 떨어진다. 나중에 다시 조조,원소의 핵심투때 장수로 하여금 조조의 편에 서게 만든다. 관도지전에서는 사승원칙을 제안하니, 관도지전의 공헌은 그가 가장 크다.

그리고 여러 모사들 중에서 그가 가장 오랫동안 활욕한다. 조비를 도와서 황위에 오르게도 한다. 나중에는 한헌제마저도 하야시키고, 진정으로 한나라를 끝장내고, 진정한 삼국시대로 접어들게 만든다.

삼국에서 그는 아우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공적은 앞의 9명과 비교한다면 그래도 차이가 크다. 그래서 그를 10대영웅의 마지막에 넣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