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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상관황후(上官皇后): 중국역사상 유일한 동양식(童養媳, 민며느리) 황후

by 중은우시 2015. 1. 14.

글: 서문(瑞文)


동양식은 대년식(待年媳)이라고도 하며, 고대 민간에는 이런 유형의 결혼이 많이 있었다. 그녀들은 대체로 빈곤한 가정의 어린 딸을 역시 한미한 시집으로 보내고, 성년이 되어 비로소 남편과 정식으로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여자의 집에서는 인구부담을 감소시키고, 남자집에서 대신 기른다. 동시에 남녀쌍방의 가정에 혼례에 드는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는 빈곤한 가정에서 취하는 일종의 혼인방식이다. 동양식은 시댁에서 일을 하면서 학대를 받는 경우가 많아, 힘든 것이 말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 결혼한 후에도 불행이 그녀들에게 닥치는 경우가 많았다.


동양식은 다재다난한 생활을 지내고, 불행한 사람이다. 그러나 한나라때 황실에도 동양식이 나타난 적이 있다. 그녀는 바로 한소제 유불릉의 황후인 상관씨이다. 그녀가 동양식이 된 것은 친정이 가난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아주 부귀한 집이었다. 그녀의 부친인 상관안(上官安)은 한소제의 누나인 악읍개장공주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이 혼인을 추진했다. 그 성격은 민간의 동양식과 전혀 달랐지만, 혼인당사자들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불행했다. 그녀는 비록 황후라는 귀한 몸이었지만, 생황에서는 불행했다. 민간에서와 비슷한 점이 있다.


상관씨의 조부는 좌장군 상관걸(上官桀)이고, 부친은 상관안이다. 외조부는 대사마 대장군 곽광이다. 한무제가 죽을 때, 8살짜리 아들 한소제에게 황위를 넘겨준다. 그리고 곽광, 상관걸, 거기장군 김일제등에게 보정을 하게 한다. 곽광이 상관걸과 사돈이 되었고, 김일제와도 이런 관계에 있었다. 그는 실질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한소제는 어려서 모친이 없어서 큰언니 악읍개장공주가 궁중에서 거주하며 보살폈다. 이때 상관씨는 나이가 겨우 몇 살이었다. 부친 상관안은 그녀를 궁중으로 불러서 황후가 되도록 요구했다.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는 생각이었다. 다만 곽광은 그녀의 연령이 너무 어려서 동의하지 않는다. 개장공주는 애인 정외인(丁外人)이 있었고, 그녀는 애인을 상공주의 제도에 따라 열후로 봉해지기를 원했다. 상관안은 장인, 부친을 통하여 개장공주와 정외인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이런 이익교환을 통하여, 개장공주는 상관안의 딸이 입궁하여 황후가 되는데 동의한다. 이는 시원4년(기원전83년)의 일이다. 한소제가 11살, 상관씨가 6살때의 일이다. 모두 결혼할 수는 없어서, 상관씨는 궁중에서 동양(童養)이 되고, 나이가 든 후에 정식 결혼한다. 그녀가 황후로 될 때 조정은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린다. 그녀는 고조묘에 배알하러 가고, 종친, 귀족 및 고위관료들에게 돈과 비단을 하사한다. 상관안은 표기장군, 상락후가 되어 어느 정도 권력욕이 만족된다.


원봉원년(기원전80년), 상관걸, 상관안부자는 모반을 하여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하나 실패하여 피살된다. 이때 상관씨는 겨우 9살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모반에 참여하지 않아서 연좌되지 않고 계속 황후로 남는다. 아마도 외할아버지 곽곽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어 그녀를 보호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관안의 모반때, 참가자중 누군가가 반란을 일으키면 황후의 안전이 문제될 수 있다고 말하나, 상관안은 그런 것까지 신경쓸 수 없다고 말하고 한황실의 유씨에 반대하는 것이 주요하다고 했다. 사건이 터진 후, 상관씨는 조부와 부친을 위하여 무덤을 세우고, 개인적인 노비를 보내어 묘를 지키게 한다. 한소제는 17세때 면례를 행하고, 정식으로 성인이 된다. 이때 상관씨는 나이 12살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궁중사무를 관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곽광은 한소제와 상관씨 사이에 자식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한소제가 다른 궁녀와 접촉하는 것을 여러가지 장애를 두어 막았다. 황후와만 부부생활을 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자식은 태어나지 않았다.


원평원년(기원전74년) 21세된 한소제가 사망하고, 15세된 상관씨는 과부가 된다. 곽광등은 상관씨의 명의로 한무제의 손자 창읍왕 유하를 황제로 올린다. 유하는 숙모인 상관씨를 황태후로 올린다. 유하는 음란하기 그지없었고, 곽광등이 상의하여 그를 폐위시키고 상관씨에게 아뢴다. 상관씨는 미앙궁 승명전으로 가서 주옥장식의 단오(短袄)를 입고 무장(武帳)에 단정히 앉고, 수백명이 무기를 들고 호위하며 유하를 부른다. 상서령이 여러 신하를 대표하여 유하의 죄상을 읽고, 상관씨는 유하가 "패란이 이정도다"라고 질책하면서, 그를 폐출시킨다. 곽광등의 안배하에 상관씨는 한무제의 증손 유순을 황제로 앉히기로 동의한다. 그가 한선제이다. 한선제는 숙조모 상관씨를 태황태후로 앉힌다. 한선제는 친히 정무를 돌보며, 상관씨는 무슨 정무는 할 줄을 몰랐다. 다만, 궁중에는 그녀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곽광의 처인 동려현은 어린 딸 곽성군을 사랑하여 그녀를 궁중에 넣어 황후로 삼고 싶어했다. 한선제는 입궁전에 이미 허씨를 취해서 한원제를 낳았다. 한선제가 즉위한 후 허씨를 얼마후 황후로 책봉한다. 곽광의 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마침 허황후는 임신후 병이 난다. 곽광의 처는 그 기회를 틈타 여의사를 시켜 황후를 독살한다. 그리고 곽성군을 궁중으로 들여보내어 황후로 삼는다. 이 곽황후는 친정에서는 상관씨의 이모가 되나, 유씨황실에서는 질손며느리가 된다. 이렇게 되어 배분이 뒤집히게 된다.


허황후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오일에 장락궁을 한번씩 들어가서 상관씨를 만나고 친히 음식을 바친다. 이는 아랫대가 윗대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곽성군은 황후가 된 후 허황후의 예에 따라, 시간에 맞추어 시할머니인 이질녀 상관씨를 모신다.


상관씨는 이중관계로 곽황후에게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예절을 갖추었다. 상관씨는 건소2년(기원전37년)까지 살았고, 향년 52세였따. 궁중에서 47년간 지낸다. 과부로 32년을 지낸다. 


상관씨는 15세때 과부가 되고 비록 황태후, 태황태후로 존귀한 몸이 되었지만, 생활에서 무슨 재미가 있었겠는가. 한 여인으로서 47년의 궁중생활은 감옥생활과 다름이 없었다. 그저 물질생활이 죄수보다 조금 좋았을 뿐이다. 그녀와 한소제의 결합은 포판(包辦)혼인(부모가 정한 결혼)이다. 이를 보면 사회의 최고층인 황실의 혼인에서도 포판혼은 당사자들에게 일종의 재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