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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당)

당나라는 왜 아랍에 패배했는가?

by 중은우시 2014. 2. 15.

글: 위금계(衛金桂)

 

중국사서에 아랍에 대한 기재는 많지 않다. 한 가지 개략적으로 적었지만 절대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중국의 4대발명품중 하나인 제지술이 아랍상인에 의하여 서방에 전해지고, 야만상태이던 서방인들이 근대로 발전하는데 중대한 공헌을 했다고 하는 점이다. 마치 아랍인들은 그저 낙타를 몰고 장사나 할 줄 안다고 여겼던 것같고, 세계최강국이었던 대당제국의 눈에 그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은 이러하다: 중국의 제지술은 아랍인들이 대당을 격패시킨 후 군대를 따라다니던 장인들을 약탈해감에 따라 제지술이 아랍으로 넘어갔고, 그들의 문화발전에 큰 공헌을 한 후에, 다시 십자군, 나중에 독립해나간 피레네반도인들에 의하여 서방으로 전해졌다.

 

751년 여름, 대당과 아랍군대는 탈라스에서 교전을 벌이고, 당나라는 대패한다. 실패원인에 관하여, 중국사서에서는 병력차이가 컸고, 변방소국이 발목을 잡았다는 점에 원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아랍군대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당나라사람들은 잘 몰랐다. 전후 그들이 상대방의 사망상황을 잘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쌍방의 국력차이가 컸던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당나라는 시인을 많이 배출하여 노래나 부르고, 아시아 작은 나라들의 조공을 받는데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아랍인들은 가장 휘항한 발전시기를 맞이한다. 세계적으로 이름단 흑의대식(黑衣大食)은 의문의 여지없이 세계최강국이었다. 영토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있었던 점은 차치하고라도, 교육과학문화위생수준이 당나라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심지어 19세기 유럽의 많은 나라들보다 뛰어났다. 당나라는 손사막과 같은 한약사마저도 역사책에 기록하고있었으니, 아랍을 만나서 지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아랍세계의 번성은 이때 여러 방면에서 드러난다. 군대전투와 관련되는 두 가지 방면만 예로 들더라도 당나라보다 어디가 강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고, 당나라가 왜 패배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천문지리분먀에서, 아랍인들은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구는 둥글고, 대칭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방면의 지식이 없으면, 세계는 단지 하늘과 땅만 있다고 여기던 유럽인들이 지리적 대발견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항로의 최초개척자는 스페인, 포르투갈이다. 이곳은 일찌기 아랍제국의 문화중심이었고, 아랍학자들에게 자금을 제공하여 최초의 세계지도를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귀족이다. 이탈리아도 이렇게 하여 신항로개척의 선두국가가 된다. 아랍인들은 천문대도 건립한다. 상한의(象限儀), 성반(星盤), 일구(日), 지동의(地動儀)등을 사용하여 정확한 지구좌표계를 건립하고, 서로 다른 색깔로 표시한 지형도를 알았고 제작했다.

 

청결을 좋아하고 전쟁이 빈번했던 아랍인들은 의학을 아주 중시한다. 그들은 현대 서방식의 마취술을 발명하였고, 세계최초의 정신병원을 세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무상의료를 제공했고, 일백여종의 눈병을 발견하여, 백내장을 치료할 수있었다. 현대병원의 전문과목제도를 도입하여, 전문가들이 진단을 하였고, 의과대학과 학윚도가 있었다. 마풍(麻風)등 전염병을 격리치료해야한다는 것도 알았고, 핀셋, 부인과검사도구들을 발명했다. 위치를 잘못잡은 태아를 교정할 수 있었고, 복합제제처방, 증류수, 알콜소독, 사선지혈(絲線止血), 양내장사용등 감염이 잘 되지 않는 재료를 이용한 상처봉합등등을 알았다. 그들은 가장 먼저 토양오염과 환경보호를 주장한 민족이기도 하다. 아랍의 의학저작은 오랫동안 유럽의학의 교과서였다.

 

다른 분야의 공헌은 세계저명학자와 유명인사의 평가를 보아도 충분하다.

 

헤겔을 말한다: "아랍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락을 습득한 사건은 이런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최초로 이 길을 통하여, 서방은 비로소 아리스토텦레스를 알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에 대한 역주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회편은 서방각국의 철학원천이 된다."

 

영국학자 로버트 브레이포드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랍인이 없었더라면, 현대의 유럽문명은 근본적으로 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없었다면, 유럽은 이전의 모든 진보적인 단계를 초월하는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아랍문명의 영향을 받지 못했다면, 15세기 진정한 르네상스는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전대통령 닉슨은 <기회를 잡아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럽이 아직 중세기의 몽매한 상태에 있을 때, 이슬람문명은 그들의 황금시대를 맞이한다...거의 모든 영역에서 핵심적인 발전은 모두 무슬림이 이 시기에 취득한다....유럽의 르네상스시기의 위인들은 지식의 프론티어에서 앞으로 개척해나가고 있을 때, 그들이 더욱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무슬림세계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렇게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당승 사도가 천신만고끝에 이웃나라인 인도반도로 경전을 구하러 갔을 때, 아랍상인들은 중국으로 와서 장사를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자료를 보면, 그들은 이미 신항로를 발견했다. 인도학자도 이미 그들이 모시고 와서 학술교로를 한다. 대당과 아랍의 차이는 확실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