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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2012년 시진핑의 14일간 신비한 실종

by 중은우시 2014. 12. 28.

글: 서낙(西諾)

 

시진핑은 2012년 9월 1일 중앙당교 가을학기 입학식에서 강화를 한 후, 공중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9월 5일, 시진핑은 보기드물게 미국국무장관 힐러리와의 미리 예정된 회담을 취소하고, 동시에 싱가포르 총리 리셴룽 그리고 러시아대표단과의 접견도 취소한다. 그리고 원래 시진핑이 9월 10일 중국을 방문한 덴마크 여수상을 만나기로 했는데, 그날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행적은 외부에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그 후, 시진핑의 거취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촛점이 된다. 각종 '유언비어', 소문, 추측이 난무한다. 지금까지도 시진핑의 14일간의 신비한 실종은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링지화의 낙마를 선포한 같은 날, 한 폭로자는 시진핑의 당시 신비로운 실종과 관련한 일부 내막을 털어놓았다.

 

시진핑이 업무를 보이코트하기 이틀전인 2012년 8월 29일, 중공고위층은 중공18대이후 중앙정법위서기가 상임위원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9명의 정치국상임위원을 7명으로 줄이기로 하였다. 그 뜻은 정법위계통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저우용캉은 중앙정법위서기직을 사임하는데 동의하고, 그 직무는 멍젠주에게 넘겼다. 외부의 옵저버들은 중국공산당의 정상적인 자리교체로 여겼지만, 실제로는 시진핑이 회의에서 이미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저우용캉이 사임하지 않으면 총서기직에 오르지 않겠다고. 중공원로들은 시진핑의 그런 폭탄선언을 듣고 모두 눈만 동그랗게 떴다.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저우용캉으로 하여금 즉시 사직하게 만든다.

 

원래 저우용캉을 물러나게 하면 시진핑이 만족하여 순조롭게 승계할 것으로 여겼는데, 시진핑은 9월 1일 업무를 보이코트한다. 이번에는 창끝을 링지화에게 겨냥한다. 시진핑은 링지화를 교체하고 리잔슈로 하여금 중앙판공청주임의 직을 물려받게 하라고 요구한다. 시진핑의 이 요구는 중공원로들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9월 1일 오후 시진핑은 당교에서 강화를 마친 후 집에서 나가지 않고, 후더핑(胡德平)과 몇몇 친구를 불러서 브릿지카드게임을 한다. 다음 날인 9월 2일 고위층은 긴급회의를 열어 시진핑의 요구사항을 논의한다. 회의에서는 링지화의 직무를 면직시키고, 통전부부장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귀주성위서기인 리잔슈에게 링지화의 직무를 물려받게 한다. 9월 3일, 링지화의 직무는 정식으로 면직된다. 시진핑의 거의 도박같은 요구가 48시간내에 실현된 것이다.

 

왜 시진핑은 저우용캉과 링지화가 물러나야한다고 요구했을까? 원인은 저우용캉이 보시라이와 결탁하여 시진핑을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는 소식은 이미 시진핑의 귀에도 들어갔다. 당시 보시라이는 이미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었지만, 저우용캉은 각종 역량을 동원하여 보시라이사건을 대사화소(大事化小), 소사화료(小事化了). 즉 큰 일은 작은 일로 만들고, 다시 작은 일은 없는 일로 만들려 했다. 시진핑은 보시라이의 역량을 너무나 잘 알았다. 만일 그를 풀어주어 호랑이가 산으로 돌아간다면, 후환이 무궁할 것이다. 저우용캉이 있는 힘을 다하여 보시라이를 구하려 하 ㄹ때, 저우용캉은 링지화와 결탁하기 시작한다. 링지화는 저우용캉의 뜻에 따라 여러 측면에서 보시라이의 죄를 벗겨주려고 애쓴다. 너무나 많이 간여하다보니, 시진핑이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시진핑이 8월 29일 회의때 돌연 폭탄선언을 하여 큰 효과를 거둔다. 그후 시진핑은 다시 한번 애를 먹인다. 그리하여 정치노인들이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해하면서, 할 수 없이 링지화를 물러나게 하는데 동의하게 된다.

 

저우용캉과 링지화를 제거한 후, 보시라이와 왕리쥔 사건은 신속히 처리된다. 9월 5일 왕리쥔사건이 쓰촨성 청두에서 심리를 개시하고, 9월 28일에는 보시라이가 정식으로 당적을 박탈당하고, 공직에서 면직되며 사법기관에 넘겨져 형사처분을 받게 된다. 이제 시진핑의 큰 걱정거리는 없어졌다. 그가 14일간 신비하게 실종한 것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이다.

 

시진핑의 실종사건은 그가 더 이상 중국정계의 2대진영 즉 공청단파와 장쩌민파에 속하지 않고 그와 태자당은 새로운 일파를 형성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시진핑은 실종기간동안 200여명의 혁명2세대 태자당을 만난다. 그의 거동은 이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낸다. 시진핑은 자신의 방식으로 밀어부쳐서 단맛을 본다. 그가 이후 감히 당내 호랑이들에 도전하는데, 강대한 심리적인 기초를 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