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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저우용캉,보시라이,링지화사건으로 본 중국정치제도의 저주

by 중은우시 2014. 12. 28.

글: 하청련(何淸漣)

 

저우용캉은 중앙정치국상임위원(정국급)이고, 링지화는 정협부주석(부국급), 보시라이는 정치국 위원이었다. 그들이 성공한 방식은 서로 달랐다. 그러나 성공한 후에 모두 진성감옥에 들어갔고, 가족구성원도 대부분 영어의 신세가 되었다. 그들의 범죄사실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으로 이는 중국정치의 '제도의 저주"이다. 중국관리가 승진하는 이야기는 각각 서로 다르다. 다만 낙마한 후에 드러난 요소는 기본적으로 같다. 낙마의 도화선은 비록 각양각색이지만, 모두 '제도의 저주'로 귀결된다.

 

중국정치는 극권정치이다. "3개의 독점"으로 유명하다. 정치독점, 경제독점 그리고 여론독점. 관료로서 어느 직급에 이르게 되면 지역을 나누어 자신의 영지로 삼고 하고 싶은 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산동 타이안(泰安)시위서기 후젠쉐(胡建學)는 일찌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다: "관직이 나같은 직급에 이르게 되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이렇게 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것은 관할지역내의 자원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아무런 감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쉽게 중공당내에는 이익체인에 따라 구분되는 방파제계가 형성된다. 이런 이익체인은 지연으로 구성되기도 하고, 업종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이런 방파가 커지게 되면 중공의 중앙집권에는 일종의 도전이 된다.

 

중앙은 중앙집권제도를 실행하고 있고, 최고권력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제도가 그렇게 부여한 것이다. 만일 최고권력자의 능력이 약하면, 예를 들어 후진타오같은 경우, 그저 동료, 부하들이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게 된다. 그리하여 '구룡치수(九龍治水)'의 권력다원화국면이 나타난다. 다만, 만일 시진핑과 같은 강성 최고지도자를 만나게 되면, 이런 방파를 없애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권력권력이 제한을 받지 않는 것과 체재내의 권력분배가 임의적으로 되는 것은 중공전제체제의 태생적인 '제도의 저주'이다.

 

첫번째 제도의 저주: 권력의 자원에 대한 지배로 형성된 이익방파화

 

저우용캉은 비록 농민출신이지만, 관료로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잘 알았다. 그의 관료로서의 족적이 미치는 곳에는 모두 거대한 관계망이 형성되었다. 18대이후 체포된 48명의 성장/장관급관리들 중에서, 절반은 저우용캉 수하의 3개 계열에 속한다: 석유방, 사천방 및 정법계. 모든 사람은 자신이 장악한 국가자원을 가지고 그 가족구성원 및 이익체인상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보낸다. 사건초기에 드러난 상황으로 보면, 이들 관리들은 거의 모두 재산이 수천반위안에서 1억위안이 넘는다. 그중 중석유, 중석화의 부정부패와 관련된 중간관리만 45명이 넘는다. 그리고 많은 석유화학계통의 중견간부는 중앙기율검사위에서 조사하기 전에 해외로 도망쳐 버렸다.

 

매체보도에 따르면, 링지화는 일찌기 베이징에서 '서산회'를 조직했다. 산시성출신의 베이징고위관료로 구성된 것이다. 이처럼 지연에 따라 구축된 방대한 권력-금전제국에서 그중 큰 '자금주'중 하나는 바로 '철로대(鐵老大)' 류즈쥔의 파트너인 딩슈마오이다. 링지화의 둘째형인 링정처는 산시에서 마찬가지로 방대한 고관관계망을 경영했는데, '산서방'으로 불린다. 뤄창핑에 따르면, 이런 류형의 정치방파는 고정된 정관도 없고, 조직절차도 없으며 고정된 장소도 없다. 심지어 특수한 질서나 편제도 없다. 다만 전국각지에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어떤 업종 혹은 지역을 기준으로 하는데, 예를 들어 업종에서는 석유방, 전로호(電老虎), 철로대가 있고, 지역으로는 후난창더, 장쑤얜청, 지린얜벤등이 있다.

 

저우용캉 한 사람의 아래에는 3개의 방파가 있다: 석유방과 정법계는 업종으로 구성된 것이다. 사천방은 지역적인 정치방파이다. 이런 방파는 세력이 커진 후, 중앙정책이 그들에게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방파로 형성된 이익송금파이프에 간여할 수가 없어진다.

 

이런 정치방파는 역대이래로 전제정치에서 금기로 하는 것이다. 역대왕조는 일단 역량만 갖추면 평정하게 된다. 한나라때 칠국의 난을 평정한 것이 그것이고, 청나라때 삼번의 난을 평정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두번째 제도의 저주: 가구일체(家國一體)의 이익송출메커니즘

 

저우용캉가족의 검은돈 이야기는 중국관방매체에서 보도한 것만 보더라도, 에너지, 부동산, 정계 및 여러성의 고관이 관련된다. 국계민생에 관련된 에너지부분은 저우용캉집안과 이익관련자간에 이미 일종의 가국일체의 이익송출매커니즘이 형성되어 있었다.

 

저우용캉의 아들 저우빈(周濱)은 강호를 종횡하며 그에게 봉사하는 3개의 '흰장갑(白手套)'이 있다; 외척으로 미국 라구아나해변에 있는 황씨집안은 브로커가 되어 외자설비를 중국석유기업에 팔았고, 또한 일거에 중석유산하 십여개성급 분공사의 8000여개 주요소의 소매관리시스템정보화관련 주문을 따내기도 했다; '중쉬계(中旭係)' 우빙(吳兵)은 수완이 좋았다. 사람들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업적'은 중앙급 국유기업, 5대전력공사중 하나인 궈덴(國電)의 수중에서 다두허(大渡河) 수력발전소를 얻어냈고, 매년 전력판매수입만 9억위안에 달했다; 저우빈의 동창인 미샤오동(米曉東)이 주재하는 석유방에서는 그를 위하여 이익을 보내는 것을 책임졌다. 저우용캉이 여러해동안 경영한 석유계통에서 가(家)가 천하(天下)이고, 천하가 가이며, 집안과 나라가 구분되지 않았다(家國不分). 명의상으로는 '전민소유'이지만, 국가자원은 저우용캉집안과 그 집안사람들이 마음대로 가져가는 자원이 되었다.

 

가국불분의 이익송출메커니즘은 중국국유기업의 외국주재기구가 권력귀족에게 봉사하는 직능에서도 나타난다. 보도에 따르면, 저우빈은 미국유학때, 비용에서 학교연락까지 모두 중석유 부총경리 리화린(李華林)이 처리했다. 그 때, 리화린은 중석유 미국 휴스턴판사처의 부주임이었다. 그는 저우빈을 잘 보살펴서 이후 승진을 거듭한다.

 

이런 가국일체(家國一體)의 이익송출메커니즘은 '한 사람이 성공하면, 개나 닭이나 모두 하늘로 올라간다(一人得道, 鷄犬昇天)". 저우용캉의 둘째형은 우량예(五糧液)의 대리점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간 사람을 꺼내주는 일을 했다. 셋째형은 아우디 대리점을 하고, 중석유와 파트너가 되어 액화천연가스사업을 했다. 현지의 사업을 독점하여 전체가족이 끌어모은 재산은 1000억위안에 이른다(해외자산은 포함하지 않은 것임).

 

링지화의 동생 링완청은 형의 비호하에, 2008년 사모기금 후이진리팡(匯金立方)을 설립한 후, 여러 산시상인을 포함한 '파트너'들을 이끌고 PE를 만들고 운영하여 창업보드에 상장시킨다. 그의 부는 대도시의 여러 업종에 미쳤다. 후이진리팡의 원래 별로 좋게 보이지 않던 회사도 상장시킬 수 있을 뿐아니라, 일부 회사는 상장때 파이 일부를 떼어서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니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는 업계인사들이 모두 탄복할 정도였다. 전해지는 바로는 후이진리팡이 투자한 기업이 성공적으로 상장한  얻은 부는 누적하여 12억위안이 넘었다고 한다.

 

링지화의 처인 구리핑도 수완이 좋았다. 협회와 지방의 여러 자원을 통합하였다. 구리핑은 일찌기 중국청년창업국제계획(Youth Business China, 약칭 "YBC")의 총간사가 되었다. 해외매체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공익조직은 설립한 당일 크고작은 중국외국기업들이 수억위안을 바쳤다고 한다. 기금은 주로 투자나 세금포탈의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권력-금전거래를 감추는데 쓰였다.

 

세번째 제도의 저주: '2세대'들이 '권력의 오만'을 지닌다.

 

개혁개방이래, 중국의 권력귀족 가정의 육아방식은 이미 제1대 홍색권력귀족과 크게 달라졌다. 제1대홍색권력귀족은 건국초기에 아직은 소박한 친민중민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자식들도 그렇게 교육시켰다. 개혁개방이래로 권력시장화하면서 홍색가족은 특권을 이용하여 사업을 하고 부를 거머쥐었고, 관리들은 권력으로 사리를 추구하여 대량의 부를 모았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의 자제는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권력의 오만은 먼저 집안교육에서 시작된다.다음으로는 사회기풍으로부터 온다.최종적으로는 왕왕 그 가족에 화근을 심는게 된다.

 

링지화의 아들 링구는 북경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관료2세대클럽'을 만든다. 이를 통해 특수함을 드러냈다. 그가 조용히 지내지 않았다는 것은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사례로도 알 수 있다: 처음 고관2세들의 모임때, 링구는 일찌기 보시라이의 아들인 보과과와 말다툼을 벌인 바 있다. 2012년 3월 18일 링구는 그 페라리사고때 자신의 목숨을 잃었을 뿐아니라, 부친 링지화마저도 이 자동차사고를 감추기 위하여 부득이 저우용캉과 '결맹'을 맺어야 했고, 가족이 전복되는 화근은 이 때 심어졌다.

 

보시라이도 마찬가지였다. 아들 보과과는 구카이라이가 데리고 해외유학을 간다. 보시라이는 기본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해외유학을 떠난 여러 고관자제중에서, 보과과가 가장 시끄럽게 굴었다. 여러가지 불리한 소식들이 계속 나돌았다. 보과과는 헤이우드와의 사이에 1400만파운드의 커미션분쟁은 결국 구카이라이로 하여금 헤이우드를 독살하게 만들었다. 네티즌들이 하는 말을 빌리면, "뺨 한 대 친 것으로 보씨집안이 날아가고, 자동차 사고 하나로 링씨집안이 날아갔다". 이는 바로 두 아들이 가족이 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말이다.

 

저우용캉의 아들 저우빈의 나이는 링구, 보과과보다 많다. 부친의 권력을 이용하여 돈을 긁어모았다. 전해지는 바로는 중앙기율검사위에서 사건처리하는데, 부패관리의 해외자녀가 왕왕 돌파구가 된다고 한다. 저우빈은 저우용캉사건에서 확실히 돌파구가 되었다."부친의 이름으로", '저우빈의 부친'은 일찌기 국내보도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말이었다.

 

중국정치의 이 세 가지 '제도의 저주"는 가국일체의 이익송출메커니즘을 만들었을 뿐아니라,권력귀족과 관리들이 '한 사람이 성공하면 개나 닭이나 모두 하늘로 오른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결국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몸과 명예를 망치고 집안이 뒤집어지는 고통을 당한다. 저우용캉, 링지화, 보시라이 세 사람은 그저 이 세가지 제도의 저주아래에 있던 대표적인 인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