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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링지화사건

링지화가 초고속승진한데는 어떤 남다른 뛰어난 점이 있었는가?

by 중은우시 2014. 12. 26.

글: 학길림(郝吉林)

 

링지화는 보통의 현성(縣城) 간부에서 순풍에 돛을 단듯이 승진하여 50세 갈량이 되어서는 중요한 고위직에 올라간다. 이는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어떤 비바람을 겪었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고,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방관자의 각도에서 그 변화의 근거를 찾아내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큰 대배경으로부터 개인의 운동변화의 규율과 특징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이를 통하여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링지화의 상세한 이력을 분석해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1978년 그가 산시 핑루(平陸)에서 산시 윈청지위(運城地委)로 옮겨간 것은 첫번째 큰 계단을 오른 것이다. 1년후, 공청단중앙으로 옮겨가서 일을 하는데, 이것은 두번째 계단을 오른 것이다. 하층에서 업무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첫번째 계단은 기실 순조롭게 두번째 게단을 오르기 위하여 한 충분한 준비라는 것을.

 

이 두 계단을 어떻게 오를 수 있었을까? 누가 그를 도와주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 그 사람은 분명 어떤 글에서 언급한 당시 공청단중앙서기처 서기 한잉(韓英)은 아닐 것이다. 한잉이 핑루현까지 손을 뻗어 보통간부 1명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때는 아직 그런데 흥미가 없을 때이다.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현재는 아마도 링지화와 당시 그와 잘 알던 사람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관건은 국가기관에 들어간 후 링지화는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면서 계속 순조로웠으며 매번 중요한 순간마다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다.

 

강자들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 그와 같은 배경이 젊은이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발전하려면 단순히 다른 사람이 도와준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최소한 다른 사람이 갖추지 못한 장점과 특징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근본적으로 발전하는 관건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1980년대초기는 국가가 간부연경화를 대거 제창하던 때이다. 젊고 우수한 간부를 중요한 업부직위에 많이 보내던 시기이다. 정치적으로 절대 믿을 수 있고, 업무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풍격은 성실하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마음 속으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눈은 항상 잘 살펴보며, 손에는 힘이 있어야 한다. 중앙에서 지방까지 수천수만의 간부들은 이러한 표준하에 선발되어 각자의 자리에 앉혀진다.

 

링지화도 예외는 아니다. 링지화에게는 어떤 뛰어난 점이 있었을까?

 

배우기를 좋아했다: 링지화는 비록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그당시 대학을 다니지 않은 사람은 정말 적지 않았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문화수준이 떨어진다. 보완해서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시급한 일이다. 링지화는 산시 핑루현에서 인쇄공으로 일할 때, 공부를 좋아했다. 사무실에서 일이 없으면, 단정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퇴근한 후에도 탁자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었다. 공청단중앙으로 올겨갈 때까지, 그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 따르면, 링지화는 열심히 연구하는 정신이 있었다. 저녁과 주말에도 일을 했다. 거의 매일그러했고,매주 그러했다.

 

아주 근면하다: 약간 나이있는 사람이면 다 알 것이다. 그 시대에는 공장에 있던 기관에 있던 부지런하고 깨끗한 것이 첫걸음이다. 부지런하고 깨끗하다는 평을 받지 못하면 거의 너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링지화의 부지런함과 진지함은 명성이 있다. 산시에 있을 때 사무실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했다. 자신의 물건뿐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것도 도와서 정리했다. 인쇄공장에서, 그가 막 검자공(撿字工)으로 일할 때도 그려했다. 당시 인쇄하려면 글자 하나하나를 뽑아내어 판에 배열하여야 한다. 그는 업무에 성실했고, 글자를 골라내는 것도 빨랐다. 그래서 모두 그를 아주 좋아했다. 옛날 동료들은 그를 평가할 때 이렇게 말한다: "아주 특별히 부지런한 아이였다. 뭘 하라고 하면 바로 했다. 일도 아주 제대로 해냈다. 윗사람들이 보면 바로 만족해 했다."

 

재능이 있다: 근면함은 성공의 충분조건이다. 재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일찌기 산시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링지화가 글을 잘 쓰고, 말솜씨가 좋고, 문장이 좋다고 칭찬했다. 1975년 9월 13일에 발송한 공청단 핑루현위원회문건을 보면, 문건작성자로서, 링지화는 최소한 해서체, 방송체 및 행서의 3가지 펜글씨를 쓸 줄 알았고 모두 단정하고 예쁘게 썼다. 그가 손으로 쓴 원고는 근 10페이지인데, 필적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공청단중앙에서 근무할 때, 링지화는 연구보고서를 잘 쓰는 것으로 신임과 인정을 받았다. 그가 신문잡지에 기고한 첫번째 글은 1992년 단중앙 중앙판공청부주임으로 있을 때 발표한 장편의 문장 <제3대중앙영도집체의 담략과 안목 - 1989-1991 중앙영도동지의 공청단간부와 청년대표 접견시의 강화실록>이다. <중국청년연구.잡지에 3기로 나누어 연재되었으며 모두 3만여자에 달한다.

 

안목이 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그는 볼 줄 알았다.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산시에 있을 때 많은 사무실의 동료들이 그를 좋아했을 뿐아니라, 상사도 그를 좋아했다. 공청단중앙에 왔을 때, 그가 사람들에게 준 인상은 관료사회에서 각종 인간관계를 처리함에 있어서 더욱 원숙하고 적절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3가지를 잘한다"로 평가했다: 각방면의 인간관계를 잘 처리하고, 상사의 의도를 잘 받들고, 종합하고 결론을 내는 것을 잘했다. 이는 확실히 진정한 실력이다.

 

책임을 진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두 열심히 한다는 것은 링지화의 업무에서 또 하나의 특징이다. 2005년 9월 항전60주년기념때, 어떤 홍콩기자가 지도자가 천안문광장에서 헌화의식을 진행할 때 취재를 했는데, 링지화는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친히 경위 1명을 데리고 인민영웅기념비를 자세히 검사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겸손하고 다투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그는 겸손함을 유지했다. 소수의 문장과 매체에 이름이 나오는 것 외에 그에 관한 내용은 거의 제로(0)이다. 기자를 만나면 한 마디만 한다: "고생많습니다." 자주 기자들에게 하는 또 다른 말은 "나를 선전하지 말아주십시오"

 

이상의 분석을 보면, 필자는 생각한다. 일찌기 링지화는 확실히 비범한 점이 있었다. 당시 백락이 그를 선택하고 기용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 문제는 링지화의 계획에 심각한 잘못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이상과 신념이 바뀐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잘 계획하지 못했고, 이것이 그의 실패원인이다.

 

한 대의 페라리는 그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가족과 그의 비호를 받던 부하들이 저지른 여러 건의 추악한 행동은 그로 하여금 깊이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탐관오리들이 법정에서 통곡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자주 보았다. 나는 믿는다 그 눈물은 진실한 것이라고.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눈물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들이 그들의 과거를 떠올리면, 그들은 먼저 자신이 고생하며 근면하게 일했던 옛날에 미안하게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