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링지화사건

링지화사건의 수수께끼와 신비한 "315" "318" "319"사건

중은우시 2014. 12. 26. 14:49

글: 사달(史達)

 

12월 22일, 사람들이 후진타오의 "대내총관"이라고 부르던 링지화가 조사를 받는다고 발표되었다. 그의 특수한 신분과 예상외의 결말에 사람들은 멍해졌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자는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만일 확실하게 파악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보아야 하고, 확실한 근거가 없는 소식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현재 거의 일치된 견해는, 링지화의 관료생애가 철저히 바뀐 것은 2012년 3월 18일에 발생한 자동차사고이다. 그날 새벽, 링지화의 아들 링구가 몬 검은색 페라리는 베이징 환로에서 자동차사고를 일으키고, 차안에 있던 3명중 2명은 죽고 1명은 부상을 입었다. 링구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다른 두 명의 여자는 중상을 입었는데 그중 1명이 나중에 사망했다.

 

인터넷에 널리 퍼진 한 가지 견해는 링지화는 아들의 자동차사고후 자동차사고와 아들의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저우용캉과 밀약을 맺었다. 나중에 밀약이 들통나서 링지화는 후진타오의 총애를 잃게 된다. 2012년 8월, 링지화는 중공중앙판공청주임의 요직에서 한직인 통전부 부장으로 밀려난다. 11월초, 시진핑이 전면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18대"에서 원래 상임위원에 들어갈 것으로 보였던 링지화는 명단내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미 세력을 잃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다만, 이번 자동차사고의 발생은 실로 신비롭다. 그리고 밀약이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모호하다.

 

2012년 2월 6일, 왕리쥔이 미국영사관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사건이 발발한다. 이로 인하여 시진핑,후진타오파와 장쩌민, 저우용캉파간의 생사가 걸린 정치적 대격돌이 벌어진다. 3월 15일, 보시라이가 면직된다. 3일후인 3월 18일, 페라리사고가 발생한다. 다음 날인 3월 19일 저녁, 민중과 매체는 보편적으로 베이징의 부대이동 심지어 총격전을 목격했다고 한다. 315, 318, 319 이 일련의 도광검영은 '페라리사고'가 그저 보통의 자동차사고라고 해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음모된 정치적 사건이라는 것을 더욱 믿게 만든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현재 널리 알려진 주장(정식 채널로 확인된 바 없는 것)은 일종의 링지화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말로는 그가 보사리이를 낙마시키는데 공이 있기 때문에, 장쩌민, 저우용캉파에서 복수를 하였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아마 이치에 맞는 것같다. 다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시진핑, 장쩌민의 정치대격투의 성격은 권력투쟁이다. 결과는 아마도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하물며, 장쩌민, 저우용캉파는 혈채의 짐을 지고 있다. 그리하여 시진핑, 후진타오파가 이 무거운 짐을 계속 지고가지 않기 위하여, 더 이상 진압노선을 걷지 않을까봐 겁을 낸다. 그래서 장쩌민파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시진핑 후진타오를 사지로 몰아넣고, 심지어 여러번 암살시도까지 한 것이다.

 

다만, 만일 링지화가 보사리이 낙마에 공로가 있어, 장쩌민 저우용캉파가 복수하기 위하여 죽인 것이 상대방 우두머리의 대총관의 가족이라면 이런 격투의 성격이 바뀌게 된다. 아들이 죽임을 당한 상대방은 분명 미친 듯이 장쩌민파 인물의 가족자녀를 암살했을 것이다; 하물며 보시라이는 이미 며칠전에 실각했으므로, 이런 청산은 더욱 피비린내 났을 것이다.

 

이것은 정치상대방에 대한 암살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정치적 암살이 성공하면, 한 파는 정치권력에서 승리를 거둔다. 상대방의 권력과 자원은 일거에 전부 소실된다. 이렇게 서로의 가족자녀를 죽이는 방법은 쌍방이 각자 장악한 권력과 자원을 장악하고 있어서, 길거리싸움식으로 서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다. 이는 정치투쟁의 잔혹정도를 훨씬 초과한다. 거의 기본적인 이성을 잃은 행위로 보인다.

 

그래서, 장쩌민, 저우용캉파에서 315 보시라이의 면직후 3일만에 링지화가 보시라이 낙마에 공이 있다는 이유로 보복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의 장쩌민파는 아마도 '다른 원인'으로 링지화에 대하여 보복을 하려 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그에게 어느 정도 경고를 하려는 것일 것이다.

 

만일 이렇게 추리한다면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다. 그렇다면 이 '다른 원인'은 바로 링지화가 어느 정도 일찌기 이전에 장쩌민, 저우용캉의 고위층과 비밀협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협정은 자동차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자동차사고의 원인인 것이다.

 

이 협정은 최소한도로 보면, 링지화가 시진핑, 후진타오의 내막을 누설한 것일 것이다. 완전히 시진핑, 후진타오를 팔아먹지는 않는 조건하에서, 보시라이가 성공한 후에 약간의 관직이라도 업고, 가족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정도일 것이다;  최대한도로 보면, 적극적으로 쿠데타에 참여하여 성공후에 보시라이정부의 총리급 고위직에 오를 것이다. 링지화의 상황으로 보면, 전자의 가능성이 비교적 클 것이다. 심지어 그는 후진타오가 가장 약할 때 어쩔 수 없이 적선에 오르게 된 것일 것이다.

 

다만, 1개월전에 발생한 왕리쥔의 미국영사관도피사건은 이 모든 것을 흐트려놓았다. 원래 거의 승산이 없던 시진핑, 후진타오는 하늘이 도운 것처럼 신속히 우세를 점하게 된다. 원래 팔면영롱의 링지화도 중요한 순간에 움츠려들고 다시 이쪽저쪽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비밀협정의 요구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보시라이가 낙마하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그는 아마도 장쩌민, 저우용캉파로부터 시진핑,후진타오를 암살하는데 관련한 정보제공을 요구받았지만,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제공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리하여 장쩌민파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은 것이다.

 

당연히, 자동차사고경고의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가벼우면 약간의 상처만 입을 것이지만, 무거우면 목숨을 잃게 된다. 장쩌민, 저우용캉파의 집행자는 아마도 이번에 만든 자동차사고가 이렇게 참혹한 결과로 나타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예상했던 경고는 결국 피비린내나는 살인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318" 페라리사건의 또 다른 가능한 해석이다.

 

다음날 3.19일의 군사행동에 관하여, 장쩌민, 저우용캉파에서는 자동차사고로 오히려 링지화가 반대편에 서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자, 부득이 성숙되지 못한 쿠데타를 앞당겨 일으키게 된 것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링지화는 분노하여 장쩌민, 저우용캉파의 쿠데타정보와 증거를 후진타오에게 제공한 후, 지신핑, 후진타오가 장쩌민, 저우용캉파의 쿠데타관련한 군대구성원들을 성공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3.15, 3.18, 3.19의 3건의 사건을 연결시켜서 추측한다면 어느 정도 이치에 맞게 된다. 그렇다면, 링지화가 오늘날 낙마하게 된 것도 이치에 맞는다. 그는 이쪽저쪽 진영을 오갈 때 시진핑과 후진타오를 해치는 짓을 많이 했다. 아마도 심각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또한 약간의 양심이 있어 후진타오와 시진핑을 보호했거나 혹은 후,시의 편으로 돌아서며 공로를 적지 않게 세웠을 것이다. 이런 플러스 마이너스 상황을 모두 종합하면, 오늘날 그가 처벌을 얼마나 강하게 받을지 결정할 것이다. 현재 그의 가족들이 정리되고 있고, 개인의 정치적 생애도 끝난 것을 보면, 상당히 엄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추리에 대하여 필자는 증빙을 거지고 있지는 않다. 많은 친구들의 서로 다른 견해와 의견도 합리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다행히 얼마 있으면 수수께끼의 답이 나올 것이다. 필자의 추리는 그저 한 사람의 말로 여겨주고, 그저 중국공산당 치하의 궤이한 중국정국과 생태를 웃으며 보아주기 바란다.

 

오늘은 2014년 12월 24일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이다. 가슴아픈 일은 링지화라는 이 대내고수를 보면, 중곡체제내의 잔혹한 상황하에서 자신의 정치전도를 보호하고, 가족의 운세를 지키기 위하여 확실히 정치적인 틈바구니에서 이쪽 저쪽을 기웃거리며 살아왔다. 장쩌민, 저우용캉파는 나쁜 짓을 끝까지 하고있는데, 당초에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지 않을까. 시진핑, 후진타오파는 스스로를 지키는 정도인데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내부투쟁은 거의 모든 중국관리들의 생태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게 이렇게 힘든가. 전체 민족이 함께 고통을 겪고 고생을 한단 말인가.

 

이제 옛날의 말씀이 생각난다: 좋은 일을 하면 그만큼 보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그만큼 징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