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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링지화사건

링지화는 왜 아들의 사인을 감추려 했는가?

by 중은우시 2014. 12. 26.

글: 양녕(楊寧)

 

 

 

 

링지화가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은 최근 며칠간 국내외매체, 민중의 관심촛점이 되었다. 대륙매체에서 보도한 그의 인생전환점은 2012년 3월에 발생한 아들 링구의 자동차사고이후라고 하여, 항간의 두 가지 소문을 확인시켜 주었다: 첫째 링구는 출국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 둘째, 링구의 사망원인은 자동차사고이가. 그는 바로 네티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바오푸쓰 "페라이사건"의 남자주인공이다.

 

대륙의 시진핑, 왕치산을 배경으로 하는 매체 <재신망>의 보도에 따르면, 링지화는 "아들의 사인을 감추기 위하여", "당시의 정법계통책임자와 모종의 정치적 약정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링지화는 왜 아들의 사인을 감추려 했을까? 설마 거기에 무슨 말못할 비밀이 있는 것일까?

 

먼저 이 자동차사고를 복원시켜 보자. 베이징에는 매일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자동차사고로 사망하는 수만 매년 수백명에 이르므로, 페라리사고는 처음에 매체 교통경찰 소방관등의 특별한 주의를 끌지는 못했다. 가장 먼저 이 사고를 보도한 <북경만보>, <신경보>등은 기본적으로 자동차사고의 진상을 보도했다.

 

<북경만보>는 18일 보도에서, 자동차사고가 발생한 것은 그날 새벽4시라고 하였다. 장소는 북사환(北四環) 바오푸쓰교(保福寺橋) 동남쪽이며 사고차량은 검은색 페라리였다. 사고전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운전해가다가 돌연 다리의 남쪽 벽을 받았고, 그후에 다시 북쪽 난간에 부딛쳤다. 통제불능의 페라리가 최종적으로 멈추었을 때, 차량은 심각하게 갈라졌고, 엔진은 도로중앙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미 불이 붙어 연소되었다. 차안에는 1남2녀가 있었는데, 모두 차 밖으로 멀리 내던져 졌다. 보도에 따르면 신고자의 말을 소개했는데, 당시 그가 차를 운전하여 북사환 바오푸쓰교 부근을 지날 때, 이 페라리차량은 이미 부딛쳐서 엉망진창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유일한 목격자라고 할 수 있다.

 

19일 <신경보>도 유사한 보도를 한다. 그리고 목격자이자 신고자인 선(沈)선생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는 백밀러로 보았는데, 한 검은 그림자가 그의 차를 향하여 달려와서, 그는 급히 가속페달을 밞았는데, 차량은 추월해 지나갔다. 차 뒤의 검은 그림자는 직접 보조도로의 시멘트벽을 박았다. 그가 신고한 후, 교통경찰과 소방관이 금방 현장에 도착한다. 남자는 "머리 아래에 피가 고여있었고, 이미 죽었다" 두 명의 부상여성은 금방 병원으로 보내어진다. 보도에 따르면, 병원에서 알아본 부상자의 상황도 덧붙였다. 한 사람은 두피에 부상을 입고 오른쪽다리골절상을 당했고, 다른 한 사람은 목과 안면부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확실히, <북경만보>와 <신경보>가 이때 보도한 것은 외부의 간섭을 아직 받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하게 사건의 진실한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관례에 따라, 기자는 차량사고사망자와 부상자의 정보는 보도하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이 최초 보도는 모두 나중에 해외매체에서 말하는 것처럼 세 사람이 발가벗고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기자이건, 의사이건, 교통경찰이건, 소방관이건 아니면 선선생이든 그러했다. 만일 정말 그러했다면, 이것은 분명 뉴스거리일텐데, 보도에서 언급하지 않았을리가 없을 것이다.

 

그외에, 다른 자동차사고에 관한 보도와 비교하면, 예를 들어, 금년 6월 원저우의 1남2녀 차량사고보도에서는 여자가 발가벗고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도했다. 페라리사고의 보도에서 다른 어떤 압력이 가해진 흔적은 없으므로, 이는 간접적으로 세 사람이 발가벗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세 사람이 해외매체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리를 방증하는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당사자인 여성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2012년 매체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부상당한 여자는 함부로 놀아나는 여자가 아니라고.

 

둘째, 북경의 3월은 평균기온이 10도를 넘지 않는다. 최고기온도 10여도에 불과하다. 3명이 새벽에 어떤 오락장소에서 나왔다면, 기온은 분명 영하였을 것이다. 지나치게 얇게 입었을 가능성은 없다. 최소한 보온용 외투는 입었을 것이다. 이런 온도하에서 3명이 공간이 그다지 넓지 않은 차내에서 옷을 벗고 놀았다는 것은 상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셋째, 도면을 보면, 사고를 일으킨 페라리는 좌석이 한줄밖에 없다. 해외매체가 묘사하는 것처럼 여자 1명은 운잔자의 몸 위에 앉고, 다른 여자는 뒷자리에서 앞의 여자가 놀도록 도와주었다고 했는데, 사실은 3명이 모두 차밖으로 멀리 나가떨어진 것이다. 선선생도 상황을 분명히 보지는 못했다. 해외매체가 어떻게 차량사고전의 광경을 자세히 얘기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또 하나의 주장은 "암살설"이다. 저우용캉이 링지화가 보시라이조사의 진행을 주도하는데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링지화, 저우용캉이 그 후에 달성한 약정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만일 저우용캉이 한 행위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사고를 일으키려고 생각할 것인가.

 

"암살설"은 잠시 놔두고, 더욱 가능성이 있는 상황은 차량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고 ,운전자가 정신을 집중하지 못해서 일어난 교통사고인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마침 보시라이가 붙잡힌후 3일째 되는 날이다. 차량의 앞유리와 덮개가 완전한 것으로 보아서, 3명은 분명히 양쪽 옆창유리로 튕겨나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차량사고에 대하여, 링지화는 왜 사후에 중앙경위국을 동원하여 현장을 봉쇄하고 아들의 사인을 감추려하고, 저우용캉과 모종의 약속을 하게 되었을까?

 

가능성이 있는 원인은 중공 "18대"가 2012년 11월에 개최되며, 의외의 상황이 없다면 링지화는 전임과 마찬가지로 국가지도자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이때 아들의 자동차사고가 났다. 그리고 우전한 것은 가격이 500여만위안인 페라이이다. 두 여자아이와 함께 새벽에 사고가 났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추문이다. 이 일이 폭로되면, 호시탐탐 그를 노래던 장쩌민파에 꼬투리를 잡힐 뿐아니라, 링지화 및 그 가족의 부정부패내막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이정도로 비싼 스포트카는 절대로 링지화본인의 급여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링지화의 관료생애는 부득이 조기에 끝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추문을 감추고, 자신의 승진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링지화는 후진타오를 속이는 것을 선택하고, 저우용캉과 모종의 약정을 맺은 것같다. 저우용캉은 페라리사건의 진상을 감춰주는 것을 도왔고, 그리하여 매체의 보도를 봉쇄할 수 있었다. 차량사고는 금방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다. 그후 링지화가 한 대담한 조치는 결국 자신의 무덤을 판 꼴이 된다. 관료로서 전도가 없어졌을 뿐아니라, 조사까지 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