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링지화사건

링지화는 시진핑이 잡은 '여우'인가?

중은우시 2014. 12. 25. 19:26

글: 김언(金言)

 

호랑이는 백가지 짐승을 잡아서 먹었는데, 한번은 여우를 잡았다. 그랬더니 여우가 말한다: "그대는 나를 감히 먹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이 나를 백수의 우두머리로 삼았다.그대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대가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내가 앞장서서 걸을테니, 그대가 내 뒤를 따라와보라. 백수가 나를 보면 감히 도망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호랑이는 말이 그럴 듯하여, 그의 말대로 뒤를 따라갔다. 짐승들이 그들을 보자 모두 도망쳤다.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신을 무서워하여 도망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여우를 두려워하는 줄 알았다.

 

여러분은 아마도 발견했을 것이다. 2014년 중국정부가 부정부패사건을 공표하는 전형적인 방식은 이렇다: "월요일에는 파리(蒼蠅)를 잡고, 금요일에는 호랑이(老虎)를 잡는다". 호랑이와 파리 이외에 세번째 유형의 동물도 있다. 부정부패사건은 올해들어 왕왕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파리와 호랑이 이외에 "여우사냥(獵狐)"도 부정부패단속의 통상적은 형태의 하나가 되었다. 7월 22일 공안부는 "엽호2014"특별행동에 들어갔다.

 

일찌기 9월 17일 신화사는 "호랑이를 잡고, 파리를 잡으며, 여우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10월 3일, 신화사는 다시 글을 실어서 이렇게 지적한다. 사람들은 '호랑이', '파리' 이외에 '여우'라는 족속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우는 아마도 비서이거나, 운전기사이거나, 애인이거나, 친구이다. 그들은 호랑이의 곁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다. 이는 확실히 암사사영(暗沙射影)이고 지상매괴(指桑罵槐)이며, 링지화를 겨냥한 것이다.

 

링(令)씨성은 원래 복성인 "영호(令狐)"일 것이다. 상고시대 주나라때 왕족의 후예이다. 원래는 위씨(魏氏)에서 나왔으며 진(晋)나라 군주로부터 봉지를 받고 봉지로 받은 읍(邑)의 이름을 따서 성씨로 삼았다. 현재의 산서성 윈청(運城)시 린이현(臨猗縣)의 서쪽 일대이다. 호칭이 편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위장을 위해서인지, "링후지화'(令狐計劃)은 '여우 호(狐)'자를 빼고 '링지화'로 간칭한다. 다만 지금 일찌기 '대내총관(大內總管)'이라는 말을 듣는 중공중앙판공실주임으 자리에 있던 링지화의 낙마로 볼 대, 링지화는 아마도 '큰 호랑이' 장쩌민, 쩡칭홍이 비밀리에 중공전총서기 후진타오의 곁에 심어놓고, 후진타오의 일거일동을 감시하던 여우일 것이다. 만일 이러한 추측이 맞다면, 링지화는 명희종(明熹宗)때 권력을 농단했던 엄당 위충현(魏忠賢)과 유사한 점이 있다.

 

국내외에서 공개된 자료를 보면, 링지화는 장쩌민집단과 관계가 있다는 흔적이 있다.

 

링지화의 부친인 링후예(令狐野)는 연안시절에 일찌기 나중에 중공부주석이 되는 왕동흥(汪東興)과 같이 일한바 있다. 그는 진찰기변구(晋察冀邊區, 산서,찰합이,하북성을 가리킴) 제1대 의약국장(醫藥局長)이었다. 그리고 같은 산시(山西) 출신인 보이보(보시라이의 부친)와 가까운 친구이다. 산시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다. 산시의 인사는 보이보의 동의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을.

 

<장쩌민 그 사람(江澤民其人)>이라는 책에 따르면, 1995년초 천시통(陳希同)이 7개 성위와 연합하여, 등소평에게 연명으로 장쩌민을 고발한다. 등소평은 이 서신을 일찌기 장쩌민을 극력 추천하여 후계자가 되도록 만들어준 보이보에게 처리하게 넘긴다. 보이보는 암중으로 기뻐한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장쩌민을 도와주면, 아들 보시라이와 심복들의 관직이 올라가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보시라이는 나중에 계속 승진하였는데, 이는 부친과 장쩌민의 이런 관계때문이다. 사람을 손보는데 능수능란했던 보이보의 뜻에 따라, 장쩌민은 먼저 천시통의 주변부터 손을 대기 시작하여 결국 천시통을 낙마시킨다.

 

블룸버그통신사의 보도에 따르면, 링지화의 막내동생 링완청의 처는 CCTV 아나운서인 리핑(李平)이다. 산시앤베이예술학교를 졸업했는데, 저우용캉의 후처인 자샤오예의 부친이 일찌기 그 학교의 교사를 지낸다. 리핑은 1993년에 CCTV에 들어가고, 2년후에 자샤오예도 CCTV에 들어가고, 리핑가 자샤오예는 동료가 된다.

 

중국의 포탈사이트인 소호재경이 내놓은 <링씨가족의 관계망 비밀을 파헤친다>라는 장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밝힌다. 링지화는 일찌기 베이징에 "서산회(西山會)"를 조직하는데, 산시출신으로 베이징에서 고위관직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하나의 방대한 권력-금전제국을 구축한다. 그중의 한 '전주'는 바로 '철도부장' 류즈쥔의 파트터인 딩슈먀오(丁書苗)이다. 누구든지 알고 있다. '서산회'에 가입한다는 것은 앞으로 비단이 깔린 길을 걸어가게 되는 입장권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아들 링구(令谷)는 북경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관료자제들의 클럽을 만든다. 제1차 관료자제모임에서 링구는 보시라이의 아들인 보과과와 말다툼을 벌인다. 링지화의 둘째형 링정처(令政策)는 산시에서 마찬가지로 방대한 고관관계망을 운영한다. 링씨집안의 막내동생인 링완청은 형들의 비호하에 PE를 설립하여, 창업보드에 상장하는 업무를 통하여 10억위안의 돈을 벌어들인다. 링지화의 처인 구리핑(谷麗萍)도 마찬가지로 협회 및 지방의 여러 자원을 통합하는데 능했다. 관계망을 만드는데 능한 링씨집안은 결국 신비스러운 '페라리사건'으로 인하여 혁혁한 가족은 종말을 맡는다. 그리고 방대한 링씨정상제국은 무너져 버린다.

 

여러 소식통들이 확인해준 바에 따르면, "아들의 사인을 숨기기 위하여, 링지화는 당시의 정법계통 책임자와 모종의 정치적 약정을 달성했다"고 한다. 다만 이 약정이 나중에 누설되고, 링지화의 정치적 앞날은 역전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장제민이 조사를 받은 것은 주로 수천만위안의 금전때문이었는데, 중석유집단에서 페라리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두 여자의 가족은행계좌로 송금된 것이다. 전 미국CIA의 중국분석전문가인 잔썬(詹森)은 이런 말을 했다: "장쩌민은 당초 보시라이를 적극 밀어주었고 한때는 그를 18대 인사배치에 넣었고,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장쩌민은 금방 링지화사건을 판세를 뒤집을 카드로 쓴 것같고, 끝까지 추궁하는 모습이었다."

 

그외에, 당시 지방의 공청단파 고위관리들은 대권을 장악한 링지화의 명이라는 그대로 받들 수 밖에 없었다. 중공 17대에서 18대까지의 5년간, 거의 모든 공청단파 고위관리의 승진은 링지화가 막후에서 운용하였다. 이 시기에 링지화의 곁에는 한 무리의 공청단파 고위관료들을 모여들었다.

 

여기에서 링지화는 장쩌민, 쩡칭홍, 저우용캉과 보시라이등 장쩌민파와의 사이에 여러가지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베이징의 정계에서는 심지어 "호가천하영가당(胡家天下令家黨)"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장쩌민집단은 여러가지 악행을 저질렀고, 특히 보시라이가 체포된 후, 장쩌민파는 아마도 비밀리에 수집한 부정부패증거와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등으로 링지화를 협박하고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였으며, 그가 '대내총관'으로서 중공중앙판공청경위국을 장악하고 있다는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예전에 왕동흥이 화국봉을 도와서 '사인방'을 체포한 것과 마찬가지로 장쩌민파를 도와서 보시라이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도와주고, 그후에 장쩌민파에서는 다음 번에 링지화가 그 자리를 이어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여, 링지화를 매수하는 교환조건으로 삼았다. 최종결과는 아마도 링지화가 득실을 살펴본 후에 외동아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뿐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보전하기 어렵다고 여겨서 계속 미루고 결심을 내리지 못한 것같다.

 

후진타오,원자바오가 집권한 10년동안 소위 "정령불출중남해(政令不出中南海)"로 장쩌민파에 의하여 철저히 허수아비가 되었다. 이는 상당한 정도로 오랫동안 후진타오의 곁에 숨어있던 링후지화(令狐計劃)이 양다리를 걸친 것과 관련있을 것이다.

 

외부에 널리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링지화는 '보사리이를 제거한 키맨'이라는 명성으로 몸값이 수직상승했다. 이는 당시 후진타오, 원자바오가 장쩌민의 적계인 장더장(張德江)을 충칭으로 보내어 보시라이가 벌여놓은 판을 수습하도록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아마도 후진타오, 원자바오가 종규를 빌려 귀신을 쫓은 것일 것이다. 동시에 링지화를 안정시키고,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링지화가 누구의 사람이든간에 시진핑의 호랑이잡기행동이 갈수록 쩡칭홍, 장쩌민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에는 다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