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왕오군(王吳軍)
청나라때 문인 이문봉(李文鳳)은 <월산총담(月山叢談)>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13개성은 속칭으로 부르는 것이 있는데 유래는 알 수가 없다. 섬서(陝西)는 표(豹)라하고, 산서(山西)는 과(瓜)라 한다. 산동(山東)은 등(藤)이라 하며, 하남은 노(鱸)라 한다. 소절(蘇浙)은 염두(鹽豆)라 하고, 강서(江西)는 납계(臘鷄)라 했다. 복건(福建)은 달(獺)이라 하고, 사천은 서(鼠)라 했다. 호광(湖廣)은 건어(乾魚)라 하고, 양광(兩廣)은 사(蛇)라 하고, 운귀(雲貴)는 상(象)이라 했다.
청나라때 13개 성이 모두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양광(광동,광서)의 외호는 '사'(즉 뱀)인데 이는 양광에 뱀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섬서의 외호는 '표'(표범)인데 섬서의 산림속에 표범이 살기 때문이다; 산서의 외호는 '과'(오이,참외류)인데 과는 산서성의 명산이기 때문이다.
소절의 식당에는 대부분 염두(소금에 절인 콩)를 판다 그래서 '염두'라 했다; 호광은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햇볕에 말려둔다. 그래서 외호는 '건어'가 된 것이다; 운귀(운남,귀주)일대는 코끼리가 자랐다. 그래서 외호도 자연스럽게 '상'이 된다.
단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산동이 왜 '등'(등나무)이고, 하남은 왜 '노'(농어)이며, 사천은 왜 '서'(쥐)가 되었으며, 복건은 왜 '달'(수달)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당시 서로 다른 성에서온 친한 사람들이 만나면 상대방의 성의 외호를 가지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강서 이외의 강남사람들은 강서의 외호인 '납계'를 가지고 농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납계'라는 외호는 원나라때 전체 강남을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얘기하자면, 청나라때 사람들이 성의 외호를 가지고 농담을 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었다. 한번은 과거시험에 운남사람이 광동사람보다 성적이 뒤떨어졌다. 그는 성의 외호를 가지고 농담으로 말했다: "인심부족사탄상(人心不足蛇呑象)'(사람의 마음은 만족을 몰라서 뱀이 코끼리를 삼킬 정도이다). 글은 우우하지만, 그 뒤에 정취가 있다.
그때 관료사회에서 상대방성의 외호를 가지고 불만을 배출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경성에서 관료로 있던 호북사람이 동료인 복건사람이 못살게 굴자 화가나서 욕을 했다: "천리난용달제어(天理難容獺祭魚)" 하늘의 이치라는 것이 어찌 수달이 물고기를 제사지내게 할 것인가. 이 호북의 관료는 화를 내도 귀엽게 했다.
한 사천출신 북경관리는 광동출신의 동료와 사이가 아주 좋았다. 매번 만날 때면 항상 광동출신 동료에게 농담으로 말한다: "위이(委蛇), 위이(委蛇, 뒤의 글자는 뱀사이지만 구불구불할 이도 된다. 위이는 구불구불한 모양을 가리킨다)". 그러면 광동출신동료는 항상 웃으며 답한다: "석서(碩鼠), 석서(碩鼠, 큰 쥐를 가리키는데 시경에 나옴)". 두 사람이 서로를 비웃지만 전고를 교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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