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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지린방(吉林幇)"의 뿌리가 뽑히는가?

by 중은우시 2014. 9. 2.

글: 임봉(林鋒)

 

2014년 8월 31일, 장더장(張德江)의 전인대가 막 2017년 홍콩특별행정장관 보통선거에서 공민이 지명하도록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을 전후하여, 같은 날 오후, 중국은 공식적으로 왕루린(王儒林)의 지린성위 서기 직무를 면직했고 바인차오루(巴音朝魯)가 지린성위 서기직을 승계했으며 동시에 왕루린은 '별도로 임용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인차오루는 시진핑과 후진타오에 가까운 배경을 지니고 있어, 장더장을 우두머리로 하는 "지린방'은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장쩌민파는 최근 25년만에 처음으로 지린성이라는 근거지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6월 14일, 중국공산당은 전국정협 부주석, 전 장시(江西)성위서기이며, '지린방'에 속하는 쑤롱(蘇榮)이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을 공표했다. 당시에 이는 '지린방'을 겨냥한 정치적 폭풍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여겨졌었다.

 

8월 31일 오후, <신화사>에 따르면, 중공중앙은 바인차오루를 지린성위 서기로 임명하고, 왕루린은 더 이상 지린성위 서기, 상위, 위원직무를 담당하지 않으며 별도로 임용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8월 31일, 지린성은 대회를 개최하였고 중앙조직부 부부장 왕타이펑(王泰豊)이 이 결정을 선포했다.

 

허난의 지식청년출신인 왕루린은 지린에서 40여년간 관료로 있었고, 16세때부터 지린을 떠나본 적이 없다.

 

1997년 12월, 왕루린은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가서 이 도시에서 3년간 주위 서기를 지낸다. 이전에 장더장은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지린성위 부서기 겸 연변주위 서기를 지낸 바 있다.

 

그후 왕루린은 1998년 4월 지린성위 상위로 승진하여, 45세에 부성장급이 된다. 부성장급의 직급에서 왕루린은 연변주위서기, 지린성 정법위서기, 상무부성장, 창춘시위 서기, 지린성 부서기등 5가지 직책을 차례로 맡으며 11년반을 보낸다. 2010년에 지린성 성장에 당선된다. 2012년 12월, 59세의 왕루린은 드디어 지린성위 서기에 올랐다.

 

왕루린의 이직은 이미 전조가 있었다. 8월 19일 오전에 지린성위의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전체회의가를 주재하고, 8월 20일 저녁에 국가연초전매국 국장을 접견한 후, 왕루린의 행보는 전혀 매체에 보도되지 않았다. 해외의 여러 매체에 따르면, 왕루린은 산시성위 서기직으로 옮겨가서 현임 서기 위안춘칭(袁純淸)을 대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왕루린을 대체하여 지린성위 서기를 맡은 사람은 전 지린성장이며 일찌기 공청단중앙에서 여러해동안 일을 한 바 있는 바인차오루이다. 바인차오루는 내몽고 어토크전기(鄂托克前旗)의 사람이고, 10년간 공청단에서 일을 했으며, 그중 8년을 공청단중앙에서 일했다

 

2001년 4월, 바인차오루는 저장성 부성장이 된다. 2003년 12월 바인차오루는 저장성위 상위가 된다. <재신망>의 평론에 따르면, 당시 공청단 출신인 바인차오루는 5년간 저장성위 서기를 지낸 시진핑과 '깊이있게 접촉'했다고 한다.

 

1989년이후, 지린성위 서기직은 계속하여 장쩌민파의 인물들이 차지했다. 역대 지린성위 서기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1988-1993  허주캉(何竹康)

1993-1998  장더장

1998-2006  왕윈쿤(王雲坤)

2006-2009  왕민(王岷)

2009-2012  쑨정차이(孫政才)

2012-2014  왕루린

 

"6.4"사태때 지린성위는 '가장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하여 장쩌민은 '지린의 형세를 안정시켰다'고 인정한다. 그후 지린의 고관들은 장쩌민에 의하여 발탁된다. 당시 지린성위 서기였던 허주캉은 장쩌민의 심복이 된다.

 

그 후의 장더장, 왕윈쿤, 왕민, 왕루린은 모두 장쩌민의 파룬공박해정책을 긴밀하게 따른 경력이 있다. 이를 통하여 장쩌민파의 고위층들의 인정을 받고 발탁된다. 현임 충칭시위서기 쑨정차이는 보도에 따르면, 가장 먼저 자칭린(賈慶林)에 의하여 발탁되어 장쩌민파로 보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다른 계파에 들어갔다.

 

전총서기 장쩌민은 일찌기 13년간 권력을 장악했고, 장더장을 포함한 '지린방'의 고관들을 계속 중용해왔다.

 

현임 중공정치국상위 장더장, 전 길림성위서기 왕루린, 이미 낙마한 전 정협부주석 쑤롱, 장쩌민시대의 중앙판공실주임 왕강(王剛), 전 통전부장 두칭린(杜靑林), 전 국무원 부총리 후이량위(回良玉)등은 모두 '지린방'으로 불리운다. '지린방'은 보편적으로 장쩌민파중의 한개의 지방계파로 인식된다. 방주는 장쩌민파 정치국 상임위원 장더장이다. 이들 관리들의 특색은 지린에서 관리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지린방'이 중국정계에서 흥기한 원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허주캉이 서기를 맡은 후, '6.4'사태때, 지린성위는 지린에서 일한 적이 있는 장쩌민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둘째, 장쩌민은 창춘에서 일을 한 바 있고, 지린에 대하여 원래 '감정'이 있었다. 그르므로 '지린에서 고관이 많이 배출된다.' 장더장, 왕강, 두칭린, 쑤롱은 나중에 중공의 '국가지도자'로 발탁된다.

셋째, '지린방' 장쩌민의 발탁을 받은 후, 파룬공 박해에서 장쩌민의 정책을 강력하게 집행했다. 지린방의 주요 구성원인 쑤롱, 왕루린과 장더장등은 모두 파룬공을 박해한 경력이 있다.

 

8월 31일, 바인차오루가 지린성위 서기를 넘겨받은 후, 실제로 장더장을 우두머리로 하는 '지린방'은 이미 근거지 지린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다. 같은 날, 장더장의 전인대는 2017년 홍콩특별행정장관 보통선거에서 공민지명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하여 홍콩에서 대규모 항의를 불러왔다.

 

6월 14일에는 전 정협 부주석, 전 장시성위 서기 쑤롱의 낙마소식이 들려왔다. 보도에 따르면, 이는 시진핑 진영의 '타호(打虎)'의 또 한 조치라고 한다. 장쩌민파의 현임 상임위원 장더장이 이끄는 '지린방'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쑤롱을 제외하고 해외에서는 계속하여 '지린방'의 중요 구성원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거기에는 전 부총리 후이량위, 전 중앙판공청주임 왕강, 현임 정협 부주석 두칭린등이 포함된다.

 

8월 26일, 중앙기율검사위 감찰부 웹사이트에는 이치(一汽,, 제1자동차를 가리킴)다중(大衆, 폭스바겐을 가리킴)자동차유한공사의 전 부총경리 겸 판매회사 총경리 리우(李武), 이치다중자동차유한공사 아우디판매사업부 부총경리 저우춘(周純)이 '움중한 위법'혐의로 입건조사를 받는다고 통보했다.

 

위의 2명의 이치집단의 고위직의 문제단서는 금년에 진행된 특별순시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중앙순시조가 처음으로 특별순시기간에 사건조사현황을 통보한 것이다. 이전에 중앙순시조는 과기부, 푸단대학과 중량(中糧)집단을 '특별순시'한다. 다만 순시기간동안에 외부에 어떤 문제의 단서도 공개하지 않았었다.

 

8월 29일 저녁, 중앙순시조는 이치를 순시하는 마지막 날에, 감찰부 웹사이트에 공표한다. 이치집단 전 부총경리 안더우(安德武)는 '엄중한 기율위반 및 법률위반'혐의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이치집단은 창춘에 있고, 장쩌민이 성공한 근거지이다. 장쩌민은 1956년 소련에서 귀국한 후 1962년까지 이치에서 동력처 부처장, 부총동력사, 동력분공장 공장장 겸 당지부서기등 직무를 맡은 바 있다.

 

2013년 3월 중국의 재신전매는 일찌기 장쩌민의 심복이자 전 이치집단 총경리, 당위상위, 집단동사장, 중공지린성위 부서기인 쭈옌펑(竺延風)이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조사를 밭고 있다고 밝혔다. 재신망에 따르면, 소식통은 쭈옌펑이 이치집단의 통합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산처분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하였다.

 

이치는 오랫동안 장쩌민이 장악했다. 보도에 따르면, 권력을 장악한 후, 장쩌민은 중앙부문에 많은 이치출신의 고관을 기용한다. 장쩌민이 매번 이치를 방문할 때마다 항상 자신을 "이치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다만 왕루린이 면직되었다는 소식은 여전히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