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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원세개)

원세개 대총통 즉위식의 3가지 불상사

by 중은우시 2014. 8. 26.

글: 장문서(張文瑞)

 

후의(侯毅)의 <홍헌구문>에 따르면, "항성취임비문(項城就任秘聞)"이라는 글이 한 편 실려 있다. 여기에는 민국2년(1913년) 10월 10일 원세개가 제1대 민국대총통에 취임하는 취임식에 일어난 3가지 불상사를 기술하고 있다. 이 글은 후의가 그해 12월에 쓴 것이다. 10월 10일 당일, 후의는 고향사람인 왕군정(王君正)는 경찰청에서 일을 했고, 취임식현장에 있었다. 그리하여 친히 3건의 경위를 목격하고 그 내용을 후의에게 말해주었다. 이 세 건은 당시에 원항성(원세개, 항성은 원세개의 고향)에게 불리한 내용이어서 널리 알리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신문에는 기술되지 않았고, 그저 세상사람들이 입으로 전하던 내용이다.

 

원세개가 민국의 제1대 정식 대총통에 당선되고 취임식은 민국2년 10월 10일에 거행되었다. 장소는 자금성 태화전 앞이었다. 취임식의 규격은 아주 융중하였다. 단지 3건의 불상사는 불길함을 예견하게 하였다.

 

첫째는 그해 9월 19일부터 경사는 한달여간 날씨가 아주 맑았고, 하루도 흐린 날이 없었다. 10월 10일 당일 취임식전에 경성의 상공에 갑자기 구름이 덮이더니 가을비가 내렸다. 전례때 비가 아주 심하게 내린다. 취임식을 마치자 비가 그친다. 그리고 그후 수십일간은 다시 맑은 날씨로 구름 한 점 없었다. 취임식에 참석한 각계인사들은 비를 맞으면서 행사를 진행하여 아주 낭패스러웠다. 태화전에 높이 건 호주(湖綢) 비단으로 만든 오색국기가 비에 젖어서 머리를 아래로 내려뜨렸고, 색깔도 변했다. "모호하여 마치 비단에 피눈물이 남겨진 것같았다."(후의의 말). 첫번째 행사의 이런 관경을 당시 사람들은 모두 불길한 조짐으로 보았다.

 

둘째, 원세개가 대예복을 입고 취입식장으로 나아가기 전에, 태화문에서 돌연 개 한 마리가 나타나서 마구 짖고 뛰어다녔다. 주재하던경찰이 급히 쫓아내려 했다. 그리고 그 개가 혹시라도 대총통의 행렬과 부딛칠까봐 검을 뽑아 개를 태화전 앞에서 죽여버린다. 개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고, 개피가 땅에 흥건해서 광경이 낭자하고 보는 사람의 간담이 서늘했다. 취임식을 하는 좋은 장소에서 이런 흉악한 일이 벌어지니 당시 사람들은 불길한 조짐이라고 말했다.

 

셋째, 취임식이 끝나고, 원세개는 네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신화궁 총통부로 돌아갔다. 오문을 나가기 전에, 비로 길이 미끄러워 말 한 마리가 실족하여 쓰러진다. 그러나 앞의 말은 여전히 달려나가서, 차원(車轅)이 순식간에 부러진다. 부러진 차원은 칼날처럼 날카로운데, 바로 말의 배를 찔러버린다. 그 말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가마는 길가에 전복된다. 경찰과 가마를 호위하던 자들이 급히 원세개를 구했고 수레를 바꾸어 다시 나갔다. 여러 중국고대사를 살펴보면 국왕이 출행하는데 마차가 전복되는 것은 반드시 "유거불반(有去不返)"을 의미한다. 당시 사람들은 역시 불길한 조짐이라 보았다.

 

이전에 참위가(讖緯家)는 원세개의 이름을 탁자(拆字)해서 "원(袁)"은 "길두애미(吉頭哀尾)"라고 하였다. 이는 처음에는 길하나 나중에는 흉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대통총에 취임한 2년후, 원세개는 민국4년(1915년) 12월 12일 황제에 오른다. 겨우 백일만에, <철소제제령>을 내려서 황제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다시 두달여만에 원세개는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