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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저우용캉사건

쟈샤오예(賈曉爗): 저우용캉의 두번째 부인

by 중은우시 2014. 8. 26.

글: 문풍탁탁(文風卓卓)

 

인생은 꿈과 같이 십년을 흘렀다. 지금 나이 44살인 쟈샤오예는 일찌기 CCTV 채널2에 나왔으나, 일찌감치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 신비부호 저우빈(周濱)의 계모 신분으로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쟈샤오예는 일찌기 왕샤오야(王小丫), 예잉춘(葉迎春), 선빙(沈氷)등과 함께 CCTV에서 재직했다.지금 인터넷에서는 예잉춘, 선빙이 이미 중앙기율검사위의 조사를 받기 위하여 끌려갔다는 소문이 돈다. 쟈샤오예는 더욱 조용히 지낸다. 인터넷에서 그녀에 관한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중에 쟈샤오화 본인의 것은 한 장도 없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쟈샤오화는 1970년 출생이라고 한다. 부모는 모두 희극(戱劇) 배우였다. 쟈샤오예는 열심히 공부하여 순조롭게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CCTV에 입사하여 일을 했다. 나중에 쟈샤오화는 CCTV를 떠나는데 거취는 수수께끼였다. 2001년, 쟈샤오화는 현재의 남편(저우용캉)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주로 쟈샤오화가 당시에 CCTV에 재직할 때 아주 조용히 지냈기 때문이다. 나중에 소문에 따르면 쟈샤오화는 너무 조용히 지내는 바람에 CCTV개혁때 하마터면 정리해고당할 뻔했다고 한다. 만일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쟈샤오화는 확실히 조용하게 지내는 성격을 타고난 것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중에 저우용캉과의 결혼에 관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CCTV에 재직할 때 이미 낙마한 공안부 부부장 리동성(李東生)이 소개를 해주었다는 것이다. 당시 리동성은 CCTV의 부사장으로 있었고 마침 실습기간이던 쟈샤오화는 그의 부하였다. 쟈샤오화는 나이도 젊고 예쁘며 재주도 있었다. 그리고 저우용캉은 당시에 마침 홀아비였다. 리동성은 CCTV 부사장으로서 자연히 정치적인 접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저우용캉과 관계를 맺은 후, 쟈샤오예를 저우용캉에게 소개한다. 비록 저우용캉은 자샤오예보다 28살이나 많았지만, 여러가지 복잡한 원인으로, 자샤오예와 저우용캉은 결혼을 하게 된다.

 

또 다른 설도 있다. 당시 쟈샤오예는 인터뷰과정에서 저우용캉을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리동성이 조사를 받았지만, 리동성과 관계가 남다른 그녀는 전혀 연루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중앙의 '호랑이잡기'가 속도를 내면서, 재주넘치는 이 여자아나운서의 앞날은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쟈샤오예는 어디로 갔는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시간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는다. 쟈샤오화 거취의 수수께끼는 시간에 맡겨두는 수밖에 없다.

 

신화사 7월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저우용캉이 엄중한 기율위반으로 중공중앙이 <중국공산당정관>과 <중국공산당기율검사기관사건검사공작조례>의 관련규정에 따라, 중공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입건조사한다고 결정했다.

 

이렇게 하여 그의 두번째 부인 쟈샤오예도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쟈샤오예는 산시(山西)성 다통(大同)시 다통현 펑위향 샤오왕춘 사람이며, 1970년 출생이다. 쟈씨집안과 잘 아는 사람에 따르면 쟈샤오예는 집안에서 둘째이고, 쟈샤오샤(賈曉霞)라는 언니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상인이다.

 

"그녀의 부친은 알후(二胡)를 잘 연주한다" 쟈샤오예의 부친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사람의 말이다. 쟈샤오예의 부친 쟈빙원(賈丙文)은 산시성예술학원을 졸업했는데, 다닐 당시에는 전문학교였다.나중에 다퉁예술학교에서 일을 한다.

 

이 쟈샤오예의 부친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사람에 따르면, 쟈빙원은 아주 조용히 지내고, 집안의 두 딸도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쟈샤오예는 대학에 합격한 후에 거의 다통에서 장기간 생활하지 않았다고 한다.

 

<재경>보도에 따르면, 다통현 샤오왕촌은 궁벽진 곳이고, 다통에서 60여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현지 촌민에 따르면, 쟈빙원이 마을을 떠난지 이미 5,6십년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는 집도 없고 친척도 없다. 쟈빙원은 다퉁예술학교에서 판공실 부주임까지 지낸다. 1996년을 전후하여 은퇴했다. 몇년전에 다퉁을 방문했을 때, 시위의 지도자가 그와 함께 현지의 명소인 "구룡벽(九龍壁)"을 관람했다.

 

쟈사요예는 1990년대에 CCTV 경제채널에 입사했다고 한다. 즉, 현재의 CCTV 재경채널이다. 

 

이전에, 그녀는 창사철도학원을 졸업했다. 인터넷에서는 그녀가 중남공업대학을 졸업했다고도 한다.2000년 4월, 중남공업대학, 창사철도학원과 후난의과대학이 합병하여 중남대학이 되었고, 교육부 직속의 전국중점대학이 된다.

 

쟈샤오예는 졸업후 CCTV 경제채널에서 PD를 지냈는데, 그 동안 부서를 여러번 바꾸었고, 평소에 업무하면서 조용했다고 한다. 최소한 CCTV를 떠난지 여러 해가 지나서야 사람들은 그녀가 저우용캉의 두번째 부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또 다른 CCTV의 내부인사에 따르면, 쟈샤오예는 CCTV에 있는 후반기에 비교적 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업무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저 그녀가 CCTV의 또 다른 여자친구와 함께 자주 어느 지도자와 나가서 논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줄은 몰랐다고 한다.

 

쟈샤오예가CCTV 경제채널을 떠난 시간은 현재 확실하지가 않다. 소식통에 따르면 떠난지 최소한 10년이 지났다고 한다. CCTV를 떠난 후, 그녀는 전 직장과 거의 연락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이름은 CCTV에서 거의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쟈샤오예와 그녀의 가족의 소식이 드러난 것은 2014년초이다.

 

당시, 뤼량(呂梁)시 전 시장 딩쉐펑(丁雪峰)이 관련부서에 체포된지 1달도 되지 않아서이다. <중국경영보>는 보도에서 딩쉐펑은 저우빈 계모의 부친과 연결하여 관련인사에 작업을 해서 '뤼량시장' 자리를 따냈다고 했다.

 

<중국경영보>의 보도에 따르면, 딩쉐펑이 뤼량시장자리를 차지하게 된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뤼량시장자리를 얻기 위하여, 딩쉐펑은 과거의 스승인 쟈모를 통하여 꽌시를 뚫었고, 돈을 쨔모의 베이징에 있는 집으로 보냈다. 보도에 따르면 모종 원인으로 쟈모는 이 돈을 나중에 돌려주었다고 한다.

 

딩쉐펑과 잘 아는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 "스승 쟈모'는 바로 쟈샤오예의 부친 쟈빙원이다. 쟈빙원과 딩쉐펑은 다통예술학교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다.

 

<중국경영보>의 보도에 따르면, 1963년 다통시 줘윈현 관쟈바오향에서 태어난 딩쉐펑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다통예술학교에 입학한다. 당시는 쟈빙원이 학교판공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이다. 1990년대, 쟈빙원이 은퇴하고, 2000년을 전후하여 그는 처자식을 데리고 쟈샤오예를 따라 베이징으로 이사간다. 그당시는 30살 가량의 쟈샤오예가 저우용캉에게 시집을 간 때이다.

 

재신망의 보도에 따르면, 쟈샤오예의 언니인 쟈샤오샤는 중석유국제 캐나다회사에서 총경리직을 맡았다고 한다. 그녀는 일찌기 푸단대학 외국어학원을 다녔고, 중석유 에콰도르와 카나다자회사에서 일했으며 장기간 캐나다 앨버타성의 석유도시 캘커리에서 거주했다. 2013년 12월, 쟈샤오예가 인신자유를 잃은 후, 쟈샤오샤의 행적은 불분명하고, 공개된 장소에 나타나는 일이 드물어 졌다.

 

금년 7월, 중석유 해외탐사개발회사 부총경리 송이빈, 중석유 캐나다지구책임자 리즈밍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린 후, 매체의 주의력은 다시 한번 쟈샤오샤의 몸에 집중되었다.

 

재신망의 보도에 따르면, 쟈샤오샤는 현재 여전히 캐나다에 머무르고 있으나 현재 상태는 불명확하다. 봉황망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달 일찌기 캐나다 총경리사무실, 캐나다정부의 기타 관리 및 현지 기업경영진은 쟈샤오샤의 이메일계좌에서 보내진 메일을 받는다. 그녀는 이미 회사를 떠났다고 하였다. 천슈동이라는 사람이 중석유 캐나다업무를 모조리 인수인계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