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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스포츠

중국고전소설에 나오는 '축구'

by 중은우시 2014. 7. 17.

글: 고오광생(孤傲狂生)

 

 

 

 

축구는 고대 중국에서 "축국(蹴鞠)"이라고 불렀다. 일찌기, <전국책>과 <사기>에 모두 축국에 관한 문자가 기록되어 있다. 나중에 나온 고전소설에서의 축국에 대한 기술은 대부분 아주 간략하다. 예를 들어, <삼언이박(三言二拍)>, <홍루몽>, <아녀영웅전>에 모두 축국에 대하여 말 한마디로 지나간다. 그렇다면 상세하게 기록한 고전소설은 없을까?

 

<수호전> 제2회 고구(高俅)의 성공사에는 곳곳에서 '축국'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고구의 원래 이름은 고이(高二)이다.그는 축국의 고수여서 사람들이 고구(高球)라고 불렀다. 나중에 그가 성공한 후 이름을 '고구(高俅)'로 개명한다. 한번은 고구가 단왕부(端王府)에서 단왕이 3,5명의 소황문(小黃門, 태감)과 축국을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공이 고구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그는 원앙괴(鴛鴦拐)의 수법으로 공을 단왕에게 차서 돌려보낸다. 원앙괴는 원래 무술동작이다. 좌우의 발로 연속으로 공을 차서 보내는 것을 말한다. 갈자파미(蝎子擺尾) 혹은 신룡파미(神龍擺尾)라고도 부른다.

 

단왕은 그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주 기뻐하며 고구도 경기에 참가하도록 한다. 고구는 공이 몸에 붙어 있는 것과 같았다. 나중에 단왕은 송휘종이 되고, 고구도 태위(太尉)에 오른다. 혹시 송휘종이 정말 엉터리같은 황제여서 고구에게 군사를 관장하게 하였을까? 원래, 고대에는 축국을 군대병사를 훈련시키는 주요 종목으로 썼다. 반고의 <한서.예문지>에도 <축국이십오편>을 병서로 열거하고 있다.

 

축국을 많이 묘사한 또 하나의 책은 <수당연의>이다. 제17회에 진경등 5명이 장안에서 화등(花燈)을 구경하는데, 상서부의 사포(射圃)를 축국장으로 개조하여 우문공자가 자리에 앉고 좌우에 두 명이 평용항(平庸巷)에서 데려온 미인 금봉무(金鳳舞)와 채하비(彩霞飛)를 앉힌다. 제국원이 경기장에 나가서 공을 한번 찼는데 공은 하늘 구름위로 사라져서 바람에 날려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되었다. 이어서 시소(柴紹)가 등장하여 미인 금봉무, 채하비와 함께 경기를 하여 많은 박수를 받는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진경은 예물을 미인들에게 보수로 주며 감사한다.

 

<서유기>제72회에는 당승이 반사동으로 가서 3명의 지주정이 축국을 하는 것을 몰래 구경한다. 오승은은 아주 농염하게 묘사했지만, 몇 가지 축국의 기술을 소개한다. 두구(頭球), 구구(鉤球), 사문(射門), 그리고 전신척(轉身踢), 퇴보번(退步飜), 단창(單槍), 타괴(打拐), 와어(臥魚). 지주정은 축구의 대형스타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금병매>에서 가장 많이 묘사된 체육활동은 바로 축국이다. 제15회에 남녀혼합경기를 소개하는데, 전후로 등장하는 사람이 서문경, 기녀 이계저, 방한 사희대, 원사예인 장소한 등이다. 그중 장소한이 상을 달라고 말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요재지이>에 축국의 귀신이야기를 쓴 <왕사수((汪士秀)>가 있다. 왕사수와 부친은 모두 축국을 잘했는데, 한번은 그가 방메 동정호에 정박했다. 5명이 호수에서 튀어나와서, 반무 크기의 자리를 깔고 술을 마신 후에 축국을 했다. 왕사수는 그중의 노옹이 물에 빠져죽은 부친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공이 날라서 왕사수의 배위에 떨어진다. 그는 유성괴로 공을 차서 부숴버린다. 그들이 와서 그에게 책임을 추궁한다. 왕사수는 노옹이 과연 부친이라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을 칼로 쳐서 죽이고, 석고를 처서 호괴(湖怪)를 쫓아버리고 부친을 구해낸다. 원래 부친은 어정(魚精)에게 붙잡혀 갔는데, 축국을 잘 해서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