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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중국 고대의 공성전(1): 중국의 수성술

by 중은우시 2014. 7. 17.

글: 단전강(段戰江)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고대의 전쟁사는 성지(城池)의 공방사라고 할 수 있다.

 

수천년동안, "공성발채(攻城拔寨)"는 역대전쟁의 직접 목표이며 관건 동기였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공격하고 방어하는데, 성지는 가장 중요한 전쟁무대였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에, 제후들의 전쟁과 군웅이 봉기하면서, 전쟁이 아주 빈번해진다. 이로 인하여 각 제후국이 할거, 자립하는 다중심 성지축성체계가 갖추어 진다. <춘추>. <좌전>, <국어>에 언급된 성읍(城邑)의 지명만 하더라도 천여개에 달한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전국시대에 규모가 비교적 큰 전투행동만 230차에 이르렀고, 그중 2/3이상은 공성과 관련이 있다. <손자.모공>에 따르면, "살사삼분지일이성불발자(殺士三分之一而城不拔者), 차공지재야(此攻之災也)"라고 한다. 이를 보면 냉병기시대에 공성은 왕왕 아주 높고, 엄청난 사망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동시에 당시의 수성전술과 기구가 아주 완비되고 발달되었다는 것도 말해준다. 그러므로, 병성(兵聖)이라고 불리는 손자(孫子)는 공성은 만부득이할 때 하는 "하하책(下下策)"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한다: "고상병벌모(故上兵伐謀), 기차벌교(其次伐交), 기차벌병(其次伐兵), 기하공성(其下攻城)" 

 

이에 대하여, 동시대의 묵자(墨子)도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그리고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완벽한 수성전략'을 이용하여, 사방에서 자신의 '비공(非攻)' 이념을 전파한다. 그의 저작 <묵자>에서 제14권, 제15권은 전문적으로 수성장비, 전술, 요점을 소개하는데, 모두 20편이다. 비록 현재는 단지 11편만 남아 있지만, 이미 모든 냉병기시대의 성지공방지술을 거의 포괄하고 있다.

 

군사전투의 발전맥락으로 보면, 역대 중원의 통치자들이 특별히 성지방수의 기초 위에서 '비공'의 군사방어수단을 편애한 이유는, 아마도 바로 축성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성방지술(城防之術)이 극도의 효율을 나타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전수대적(專守待敵), 후발제인(後發制人)의 '축성방어(築城防禦)의 군사사상이 크게 유행하였다. 그리고 중국역사문명의 발전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때로부터 지금까지, 역대에 장성방어선을 고도로 중시했건 아니건, 아니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철장성'으로 우리의 국방이념을 형용하든, 모두 충분이 이렇게 성벽을 기초로 하는 전략방어사상이 우리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심원한가를 잘 보여준다.

 

당연히, 이런 '피동방어'의 군사사상은 '다른 사람이 나를 침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침범하지 않는다(人不犯我, 我不犯人)'는 평화민족의 성격적 요소 외에, 중원민족의 생존환경과 경제특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중원민족의 농경경제는 자연히 장강, 황하의 광대한 유역의 옥토를 벗어날 수 없다. 중원민족은 이미 정착의 안락과 풍요에 익숙해졌다. 자연히 유목민족처럼 유격투쟁을 하려 하지 않는다. 평원에서는 험난한 지형이 없다.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면, 자신의 고향을 지키려면, 특히 유목기병부대의 침입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히 견고한 성벽과 보루를 쌓는 것이다.

 

동시에 높다란 성벽은 홍수방어, 강도방어, 맹수방어등 여러가지 안전기능을 제공해준다. "사색이위고(四塞以爲固)' 즉 사방이 막혀 있어야 튼튼하다고 여기는 중국에서는 이로 인하여 네모난 성벽의 비호하에 네모난 글씨를 쓰면서 네모난 발걸음으로 여유있고 체면있는 휘황하고 위대한 황하문명을 건설했다.

 

중국인들의 성지에 대한 편애는 이상의 여러가지 요소들 외에, 또 하나 언급하지 않은 수 없는 심리적 원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自信)이다. 이런 자신은 인구가 많고, 경제가 번성하고, 문명이 발달한 다중의 기초 위에서 건립되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축성의 바탕은 바로 '만들 수' 있고, '막을 수' 있고,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약금탕(固若金湯)'으로 방어를 형용하기를 좋아하고 혹은 '만리장성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다(萬里長城永不倒)"라고 즐겨 노래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모두 이런 민족의 집단적 자부심리가 미묘하게 반영된 것이다. 당시의 역사조건하에서, 성지의 건축이든 방어이근 모두 하이테크이고, 고투입의 산물이다. 누구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더구나 충분히 잘 만들기는 어려웠다. 기세가 등등하게 침범하는 외적을 해결하려면 두터운 성벽뿐아니라, 고도의 문명과 발달한 경제를 지닌 방어측으로서는 자연히 더 많은 '후발제인'의 기술을 가져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의 각도에서, 자세히 수천년동안 중국역사상 나타난 수성기술, 이념 및 경험등 고대군사문화유산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하여 이들 복잡한 기관, 정교한 설계, 풍부한 전술을 새로 인식하면, 고대인들의 무궁한 지혜에 탄복하는 외에 그 먼 옛날로부터 들려오는 조상의 은근한 탄식도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