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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모택동)

모주석은 왜 정면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을까?

by 중은우시 2014. 7. 17.

글: 문사박람

 

"홍장촬영사(紅墻撮影師)" 두수현(杜修賢)은 중남해에 들어가서 뉴스촬영에 십여년간 종사하면서, 지도자들을 위하여 많은 멋진 순간들을 담았다. 거기에는 모택동의 진귀한 사진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1960년대, 천안문의 앞에 모택동의 대형화상을 교체해야 하여, 새로운 표준사진을 찍어 화가들로 하여금 거대한 초상화를 새로 그리게 할 필요가 있었다. 중앙신문조의 몇몇 기자들은 모주석이 인민대회당에서 회의에 참석할 때, 그의 정면사진을 몇장 찍고자 했다. 그날 모두 일찌감치 모주석이 회의에 참석하는 동대청(東大廳) 바깥에 커다란 사진기를 걸어 놓고, 검은색천으로 광선을 가리고 있었다. 정오에 회의가 끝나고, 모주석이 회의실을 나서서 두수현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아마도  판공청주임이 이미 모주석에게 정면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말한 것같았다. 모주석은 사람들을 보고, 다시 비어있는 의자를 보았다. 의자의 뒤에는 삼합판이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모택동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놓여진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는 표정이 엄숙했고, 마치 무슨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같았다. 두수현은 모주석이 카메라렌즈앞에 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촛점을 맞추어 빨리 찍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렌즈를 들여다보고는 멍해졌다. 분명히 카메라렌즈를 정면으로 하여 앉은 모주석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꾼 것같이 측면얼굴이 카메라에 드러났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는 의자가 바로 놓여있지 않았나 의심한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의자는 제대로 놓여 있다. 모주석이 몸을 틀어버린 것이다. 머리만 튼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측면을 향했다.

 

주석은 왜 측면사진을 찍으려 했을까? 정면으로 렌즈를 마주하기 싫어서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두수현은 주석이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표준사진은 모두 정면사진이다. 누구도 감히 모주석의 측면사진으로 찍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모두 한편으로는 조급해 하면서도, 누구도 감히 주석에게 가서 바로 앉으시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두수현은 급한 가운데 머리를 돌려, 아예 카메라를 들고 주석의 자세에 맞추어 반바퀴를 돌아서 렌즈를 모주석의 정면으로 향하게 했다.

 

모주석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으로 렌즈를 가만히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다시 몸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들은 급히 몇 장 찍고는 카메라를 닫았다. 누가 알았으랴 카메라를 닫자 모주석은 서둘러 몸을 일으키지 않고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이때 몇몇 젊은 봉사원들이 서로 떠밀면서 얼굴을 붉히며 모주석의 앞으로 가서, 모주석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모두 그들이 거절당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모주석은 기꺼이 응락했고, 두수현은 급히 카메라를 다시 그들에게 향했다. 이때 모주석은 사람이 바뀐 것같았다. 정면일 뿐아니라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는 카메라를 향했다. 그리고 아주 참을성있게 한사람 한사람의 봉사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두수현은 이 일을 계속 생각했다. 주석은 왜 측면사진을 찍으려 했을까? 어느 날 그는 인민대회당의 담장에 걸려 있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거대한 초상화를 보았다. 그때 확연히 깨달았다. 원래 그들 4명의 사진은 모두 측면사진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뒷머리를 그제서야 내리쳤고, 후회해 마지 않았다. 왜 모주석의 마음을 읽지 못했을까? 왜 모주석을 위하여 측면사진을 하나 남기지 않았을까? 1장이라도 좋았다. 이후 자신의 성급했던 일을 보완하기 위하여 그는 의식적으로 모주석의 측면사진을 많이 찍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표준사진은 아니었다.

 

금방, 모주석의 정면초상화가 천안문의 성루에 걸렸다. 아마도 촬영자의 보수적이고 완고함 때문에 모주석에게는 유감을 하나 남기게 된 것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