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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태평천국)

석달개는 어떻게 증국번의 수군을 이겼는가?

by 중은우시 2014. 4. 29.

글: 복녕객(福寧客)

 

 

 

서정(西征) 태평군이 연이어 패퇴할 때, 석달개가 지휘하는 호구전투와 구강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일거에 전체 전투국면을 역전시킨다.

 

상담과 전가진의 두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증국번은 크게 고무되어, 태평군을 없앨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즉시 수륙 상군을 구강으로 보낸다. 상군은 남로, 북로로 방면을 나누고, 청나라 호광총독 양림이 이끄는 한 갈래의 부대가 먼저 광제로 들어가 주둔한다.

 

연전연패하면서, 양수청은 석달개와 나대강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맞이하게 한다.

 

분석을 거친 후, 석달개는 상군의 무서움을 느낀다. 특히 상군 수군은 작금의 대적이었다. 적군은 승기를 틈타 공격해오고 있으므로, 직접 강하게 부딛치는 것은 승산이 없다. 그리하여, 그는 임계용을 보내어 구강을 사수하게 하고, 나대강으로 하여금 호구 서안의 매자진을 지키게 한다. 그 본인은 강물의 동쪽에 있는 호구현성을 지킨다.

 

석달개는 군기를 엄숙히 하여 사병들에게 참호를 깊이 파고 높은 누대를 쌓게 한다. 절대로 가볍게 군영을 나가 상군과 맞부닥치지 말라고 한다. 동시에 태평군은 낮에 적을 교란시키는 외에, 매일 밤에도 그냥 있지 않았다. 강에 2대 5대씩 짝을 이룬 작은 배를 흩어놓고, 그 위에는 풀을 가득 쌓는다. 실은 거기에 화약이 들어 있다. 불을 붙인 후에 강을 따라서 흘러내려가게 한다. 이어서 사병들은 강안에서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면서 불화살을 대거 발사한다. 그리하여 배 위에 있던 상군은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된다. 하루는 괜찮고, 이틀도 괜찮고, 사흘도 괜찮다. 그러나 나흘째가 되자 상군의 두령과 사병들은 더이상 참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잠을 자지 않으면 분명 입맛이 없어진다. 입맛이 없으면 분명 신체가 무너진다. 신체가 무너지면 정신이 초조해지고, 오래 되는 만성피로가 되어 전투력이 급격히 하락한다.

 

이렇게 한달을 대치하다보니 석달개의 '피적계(疲敵計)'는 큰 효과를 거둔다.

 

상군이 급히 전투를 하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석달개는 고의로 호구의 태평군이 전면적으로 퇴각하는 듯한 모양을 보인다. 상군은 그 모습을 보고, 즉시 수상에서 승리를 담보하는 '법보'인 일종의 가볍고 빠른 삼판과 같은 쾌선을 내보낸다. 몇 백척의 쾌선이 한꺼번에 나서서 태평군을 추격한다.

 

인사출동(引蛇出洞)의 계책이 성공했다. 상군의 주력군은 밖으로 나가자 적시에 돌아오지 못한다. 석달개는 매복시킨 태평군으로 하여금 작은 배를 타고 화약을 싣고서 상군의 수군군영으로 뛰어들게 한다. 큰 배를 향하여 화약을 집어던진다. 동시에 강안의 태평군은 미친듯이 불화살을 쏘아댄다. 함성이 하늘을 진동했다. 큰 배 9척이 불에 타고, 나머지 병사운반선 30여척도 불에 탄다. 2천여 상군은 파양호에 수장된다.

 

12일만에 즉 1855년 2월 11일, 석달개의 지휘하에, 태평군은 구강성내에서 몰래 십여척의 가벼운 배를 몰아서 밤이 어둡고 바람이 부는 틈을 타서, 구강성밖에 정박해 있던 상군수사영내로 들어간다. 돌연 불을 지르고, 사방에 불붙은 기름묻힌 장작더미를 던진다.

 

상군의 초소는 놀라서 어쩔 줄 모른다. 앞다투어 돛을 올려 도망친다. 증국번이 타고 있던 배를 미리 알아놓아서, 한 무리의 태평군돌격대는 금방 따라잡는다. 배 위의 사람을 모조리 죽이고, 대량의 중요한 문서를 획득한다. 태평군은 수급을 점검하는데 증국번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화공을 시작할 때, 위병은 즉시 증국번을 다른 작은 배에 태워서 피난시켰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호구, 구강의 두번에 걸친 대승으로, 태평군의 서정은 전패위승한다. 기본적으로 증국번이 힘들게 만들어놓은 '수군'을 전멸시키게 된다.

 

낭패한 나머지, 증국번은 남창으로 도망쳐서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쉰다.

 

상군(湘軍)의 수군이 참패할 때 증국번은 45살의 한창 나이였다. 관료사회의 경험이 많았다.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적수 석달개는 당시 나이 24살이었다. 풍화정무(風華正茂), 마치 주유가 새로 태어난 듯했다.

 

승기를 틈타, 진일강, 진옥성, 위지준등이 태평군을 이끌고 숙송, 태호등지에서 반격을 하고 호북까지 진격한다. 그리고 1855년(함풍5년) 4월 3일 제3차로 무창을 함락시킨다. 이렇게 하여, 남경상류의 3대전략도시인 안경(安慶), 구강(九江), 무창(武昌)은 모조리 태평군이 장악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천경'은 안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