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생(小生)
2014년 3월 18일 5호고로가 가동중단되면서, 하이신강철이라는 이 산시성 최대규모의 민영기업의 목숨은 간당간당하게 되었다. 동사장인 리자오후이는 여전히 '신룡견수불견미(神龍見首不見尾)'이다. 재벌2세들은 어떻게 가족기업을 승계할 것인가? 지방기업과 민영기업간에는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것인가? 은행과 민영기업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실업을 하는 것과 자본을 굴리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이신강철사건은 바로 그 거울이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하나하나 나타났으니 각계에서 깊이 생각해볼 만한 사건이다.
남방도시보의 보도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이라는 산시성 최대의 민영강철기업은 산시성 최대의 민영기업이기도 하다. 지금 부득이 전면적인 가동중단과 채권자들의 '상환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하이신강철의 동사장 리자오후이는 10년동안 자본시장에서 빨리 투자하고 빨리 회수하는데 열중했고, 강철 주업은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하이신강철이 엉망진창이 되었는데도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10년동안, 하이신강철은 리자오후이가 자본시장에서 노는데 현금인출기역할을 했다. 리자오후이는 계속하여 하이신강철에서 피를 뽑아가서 자본시장에 투입했다. 그리고 그 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의 부채는 백억위안이 넘는다고 한다. 일찌감치 채무초과상태였고, 빈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고 한다. 천문학적 숫자의 부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채권자들, 만이 넘는 직원들의 생계는 모두 리자오후이가 나서서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뽑아간 돈을 다시 하이신강철에 되넣는 것만이, 하이신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관건적인 순간에 리자오후이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원시현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이신강철이 기침을 하면, 전체 원시현이 감기에 걸린다. 하이신은 현지에서 근 만명의 취업을 해결해주고 있고, 원시현의 근 절반이상의 재정수입을 책임지고 있다. 특히 하이신이 소재한 동진(東鎭)은 전체 진의 인구가 약 6만여명인데, 그중 만명이 하이신에서 근무한다. 80%의 사람이 하이신때문에 먹고 사는 것이다.
하이신강철은 리자오후이의 부친인 리하이창이 혼자서 만든 것이다. 산시성 제2대 철강기업이다. 리하이창은 하이신강철을 경영하는데 능력이 있었다. 그는 '산시강철대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리고 순조롭게 전국공상련 부주석에 오른다. 하이신강철의 소재지인 원시현에 있어서, 하이신은 더더구나 이 현이 경제적 지주이다. 일찌감치 2004년, 하이신강철의 연간생산액이 70억위안에 달하고, 이익,세금이 12억위안에 달한다. 그리하여 납세액이 전국1위인 민영기업이 된다. 2005년에서 2007년까지, 하이신강철은 연속 3년 산시100대민영기업중 1위를 차지한다. 하이신강철의 장문인 리자오후이는 2007, 2008년 연속 2년 후룬부호랭킹에서 산시성의 가장 젊은 최고부자가 된다. 2010년, 리자오후이는 스타인 처샤오(車曉)와 요란하게 결혼을 올린다. 이리하여 리자오후이는 더더욱 오락계와 신문의 주인공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겉으로는 빛이 났지만 속으로는 썩고 있었다. "기실 작년 연말부터, 하이신강철의 생산은 문제가 있었다. 금년 설날이후, 공장의 6개 고로가 연속하여 가동중단된다. 3월하순에 이르러, 하이신은 전면적으로 가동중단된다. 이것은 하이신이 공장을 세운 이래 두번째 나타난 전면가동중지상황이다. (제1차는 2008년 금융위기이후로 당시 하이신은 반년간 가동중단되었다.) 하이신에서 10여년간 일한 원로직원 자오모의 말이다.
현재까지, 하이신은 전혀 가동을 재개할 조짐이 없다. "한개의 고로에 새로 불을 붙이려면, 최소한 수천만위안이 든다. 거기에 원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관련시설도 가동해야 한다. 재가동자금만 1억위안이 넘는다. 6대의 고로를 전부 혹은 일부 재가동하려면, 수억위안 내지 10억위안이상의 자금이 없으면 아예 불가능하다." '나의 강철'연구센터 부주임 쩡제성의 말이다.
하이신강철의 생산이 비정상적이라는 소식이 나가자 즉시 각계는 반응을 보인다. 반응이 가장 강렬한 것은 당연히 하이신강철의 채권자들이다.
기실, 일찌기 작년 연말, 현지은행감독부서에서는 경고를 내린 바 있다. 각 행에 이미 여러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철강공장에는 대출을 해주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특별히 하이신강철이 언급되어 있었다. 확실히 이는 하이신강철이 과녁이 되게 만들었다. 어떤 매체에서는 하이신강철에 30억위안의 채무를 상환하지 못했다고 보도하고, 더욱 심한 내용으로는 하이신강철이 민생은행으로부터 차입한 대출금만 58-70억여위안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중 20억윙나가량은 무담보대출이어서, 하이신의 실제채무규모는 100억위안 이상에 이르고 이미 부채초과, 자산부족이라는 것이다.
외계의 소문에 대하여, 민생은행은 일찌기 공고를 내서 밝힌 바 있다: 현재 하이신강철은 민생은행에서의 여신한도가 19.5억위안이고 모두 담보대출이라고. 하이신집단에 대한 채무규모에 대하여, 현지 은행감독국과 통계국에서 답안을 얻고자 하였는데, 취재요구는 모두 완곡하게 거절되었다. 현지 통계국이 한 직원에 따르면, 하이신의 일은 현재 원시현에서 최우선 업무이다. 상하에서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시기에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여러 채널을 통하여 알아본 바에 따르면, 금년3월초, 공상은행 원시현지행 행장 리하이위는 친히 직원을 데리고 하이신에 가서 채무상환을 독촉한 바 있다. 은행행장이 채무독촉을 한 일은 하이신에서 처음 당하는 일이다. 이는 하이신채무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3월 7일, 시장에는 "산시의 모 철강공장이 자금줄이 끊어져 가동중단했다, 장쑤의 철강공장은 은행의 구두통지를 받았는데 신용대출한도를 20% 삭감한다는 내용이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하여 당일자 철광석, 석탄, 코크스탄의 선물가격은 모조리 하락제한폭까지 떨어진다. 이 소문의 '산시의 모 철강공장'은 바로 산시 윈청에 소재한 하이신강철이다. 곧이어 3월 18일, 하이신의 6개 고로가 모조리 가동중단되고, 하이신이 위기는 전면적으로 폭발한다. 3월하순부터, 하이신강철의 각 채권자들은 속속 원시현으로 가서 하이신강철이 본사건물을 에워싸고 하이신이 파산하기 전에 일부 채권이라고 회수하고자 한다.
채권자들이 대문을 막고 있는 외에, 하이신과 현지정부를 괴롭히는 것은 하이신의 만명에 이르는 직원들이다.
공장은 가동중단되고, 채권자들은 대문을 막고 있으며, 직원은 '실업'했다. 3대난제가 몸을 누르고 있으니, 이것은 모두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나서서 위기를 풀어야 한다. 그러나, 하이신강철의 동사장인 리자오후이는 중요한 순간에 '연락두절'이다. 중소채권자, 직원, 매체기자들도 그를 만날 수 없을 뿐아니라, 하이신이 중간간부, 현지정부의 관련부서 사람들도 그와 연락할 수 없다. 리자오후이의 '연락두절'은 하이신강철의 채무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2003년초, 하이신강철의 창업자 리하이창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아직 해외유학중이던 리자오후이는 부득이 가족의 뜻에 따라,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하이신강철의 경영을 맡게 되고, 하이신강철의 동사장이 된다. 하이신강철을 승계한 후, 강철시장은 계속 호경기였으므로, 하이신강철은 순풍에 돛을 단 것같았다. 2004년, 하이신강철이 연강생산액은 70억위안에 달하고 이익세금이 12억위안에 달한다. 그후 몇년간 하잇니강철은 연속 몇년간 산시민영기업의 1위를 차지한다. 하이신강철의 발전이 최고조에 달한 때이다.
하이신강철이 휘황하는 것과 동시에, 리자오후이는 자본시장에서 제2전선을 개척하여 역시 큰 수확을 얻는다.
2004년 11월 12일, 하이신강철 산하의 하이신실업은 근 6억위안의 가격으로 중써주식이 보유한 민생은행 1.6억주를 매입한다. 그리하여 민생은행 10대주주에 들어간다. 2007년 상반기에 증권시장이 최고호황일 대, 하이신실업은 수중의 민생은행주식 근 1억주를 매각하여, 10억위안이상을 현금화한다. 민생은행의 투자는 리자오후이의 자본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였다. 그후 리자오후이는 선후로 광다은행, 싱예증권, 산시증권등 회사에 투자한다. 그리고 이들 회사가 상장한 후 주식을 매각하고 떠난다. 그외에 2급시장에서 리자오후이는 차이날코, 이민상업, 싱예은행, 루능타이산등 상장기업에 투자한다. 민생은행의 투자에서 거대한 이익을 얻은 것과는 달리, 리자오후이는 그후의 자본시장에서의 투자에서 그럴 듯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자본시장의 거대한 유혹은 리자오후이라는 금융을 배운 재벌2세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이신강철은 리자오후이가 자본시장를 종횡하는데 현금인출기역할을 한다.
"원시현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리자오후이는 근본적으로 강철사업에 흥취가 없다는 것을. 1년중 절대다수의 시간을 베이징, 상하이, 타이위안등지에서 보내고, 원시현에 오는 경우는 드물다. 설사 원시에 돌아오더라도 모두 자가용비행기를 타고 와서 외부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 하이신강철의 중고위층도 1년에 리자오후이를 1번 만나기 힘들다. 공급상, 원시현정부 지도자들도 리자오후이의 행적을 알지 못했다. 동사장은 하이신강철에 대하여는 묻지도 보고를 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계속하여 하이신강철에서 돈을 빼내갈 뿐이다. 여기에 강철업은 요 몇년간 아주 불경기였는데, 하이신강철에 문제가 터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시현 경무위의 한 중간급간부가 리자오후이에 대하여 말하면서 탄식하는 말이다.
중국인민대학 경제학원 교수 장하이양이 보기에 리자오후이는 하이신강철을 승계한 후 처음 몇년간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사업이 잘 되었다. 이것은 그저 행운이었다. 리자오후이 본인에게 그다지 큰 능력은 없었다. "2004-2008년 경제는 기본적으로 괜찮았다. 철강산업은 충분히 발전할 여지가 있었다. 이윤율도 높았다; 리자오후이가 민생은행에 지분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더더욱 그 부친 리하이창의 숨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5-2007년 A주시장의 대호황기를 만났다. 2008년이후 실제경제와 자본시장은 모두 급속히 하락한다. 리자오후이는 그제서야 자신이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이신채무위기가 폭발하고, 하이신강철이 전면가동중단된 후, 동사장인 리자오후이는 여전히 '신룡견수불견미'이다. 비록 소문에 따르면 리자오후이가 3월말 비밀리에 원시현으로 돌아와서 하이신문제를 처리했고, 회사고위층과 소규모의 회의를 문을 걸어닫고 했다고 한다. 회의에는 수명의 현정부 인사도 참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리자오후이는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각 방면의 의문제기에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있다. 하이신강철측과 원시현정부도 어떻게 하이신의 현재 곤경을 해결할지에 대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만일 한걸음 한걸음 버려지지 않았더라면, 하이신강철은 아마도 국내민영기업의 선두주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다만 하이신의 최후는 거꾸로 갔다.
리하이창이 살해된 후, 리하이창의 부친 리춘위안은 리자오후이가 승계할 것을 고집했다. 하이신의 또 다른 창업원로이자 당시 하이신집단 총경리를 맡고 있던 리텐후(리자오후이의 다섯째 숙부)는 총경리 직무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하이신집단의 산하기업인 한 시멘트회사의 책임자가 된다. 이전에, 리자오후이는 창업원로이며 하이신집단 부동사장 겸 당위서기인 신춘하이를 권력핵심에서 빼버렸다. 리텐후는 하이신강철에서 명망이 있었고, 실제업무를 잘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원래 하이신강철의 가장 적합한 후게자였다. 그러나 그는 쫓겨난다. 하이신강철이 오늘날 패망하게 된 것은 기실 이때 그 복선이 깔린 것이다.
창업원로들이 선후로 하이신강철에서 배제된 후, 리자오후이는 자신의 하이신강철에서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그 후, 리자오후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과 가장 관계가 가까운 여섯째 숙부 리원제로 하여금 하이신강철을 경영하게 한다. 자신은 정력을 주로 자본시장에 투입했다. 2009년이후, 리원제는 점차 하이신의 경영진에서 사라진다. 하이신강철의 대권을 넘겨받은 사람은 리자오후이의 여동생 리자오샤이다. 다만 리자오샤는 회사의 재무대권을 장악했을 뿐이고, 구체적인 경영에 대하여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하이신강철은 실질적으로 이미 '기아(棄兒)'로 전락한 것이다. 회사직원, 합작당사자들은 일년 내내 진정한 경영진을 만날 수 없었다. 원시현정부의 각 부서에서도 하이신의 고위층에 연락할 수 없었다. 하이신강철은 군룡무수(群龍無首)의 국면에 빠졌고, 그저 관성으로 운영되었다.
"2008년이후, 강철시장은 갈수록 불경기가 된다. 기타 강철기업은 열심히 살아남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러나, 하이신강철에는 경영진이 집단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괴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때의 하이신강철은 바로 자금을 투입하여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 때였다. 리자오후이는 그러나 계속하여 하이신강철에서 돈을 빼내 자본시장에 투입했다. 그리하여 하이신강철의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리하여 현재의 통제불능상태에 빠진 것이다." 오랫동안 하이신강철과 사업왕래가 있던 철강무역상의 말이다. "하이신을 버린 것은 시장이 아니라, 리자오후이 자신이다."
어떤 매체에서는 3월말 이씨집안에서 폐문회의를 열어, 리춘위안이 일찌기 자곡내에서 하이신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출한 바 있다고 한다. 리춘위안과 리자오후이의 몇몇 숙부들은 각자 1억위안가량의 자금을 내놓아, 가족내부에서 자금조달하여 하이신집단의 고로 1기를 먼저 가동하여 현재의 위기를 완화시키자는 것이었다. 다만 이 방안은 리자오후이의 다섯째 숙부 리텐후의 반대에 부닥친다.
하이신강철의 원로직원인 자오모가 보기에 이러한 소문은 신뢰성이 높다고 말한다. "옛날에 리텐후는 회사에서 쫓겨났다. 현재 하이신에 문제가 터졌는데, 그에게 돈을 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니,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리텐후가 다시 하이신의 대권을 잡는다면 몰라도. 당연히, 설사 리텐후가 하이신강철에 호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리자오후이가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하더라도, 지금 하이신이라는 이 엉망진창인 회사를 리텐후가 넘겨받으려 할지도 문제이다."
하이신강철은 원시현의 경제지주이고, 휘황할 때 하이신은 원시현의 대표명함이었다. 지금 하이신강철은 위기일발이니, 원시현 내지 윈청시에게 하이신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다른 지방의 스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하이신강철은 원시현 내지 원청시에서 모두 특별대우를 받았다. 기업용지, 은행대출에서 우대조치를 얻었고, 환경보호등 문제도 하이신강철을 괴롭히지 않았다. 은행측에서 계속 이어지는 자금지원은 하이신강철의 운영을 지탱해주었다. 하이신강철의 채무위기가 폭발한 후, 시장의 소문에 따르면 하이신의 채무규모는 백억위안을 넘고, 이 숫자는 심지어 저명한 태양광기업 우시상더가 파산할 대의 부채규모를 넘어선다.
"현재 이런 말이 있다. 하이신의 채무위기는 시장에서 해결하게 놔두어야 한다고. 정부부서에서 간여해서는 안된다고. 이치는 맞다. 다만 알고는 있지만 행하기는 어렵다. 원시현에서 이렇게 큰 기업을 하이신강철을 파산하도록 놔둘 것인가. 만명에 이르는 취업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재정수입의 부족분은 어떻게 메울 것인가. 만일 집단사건이 벌어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현재 정부는 진퇴양난이다. 도와주지 않으면 곤란하고, 도와주려면 이렇게 큰 구멍을 원시현은 물론이고 윈청시도 메울 수가 없다." 원시현 경무위의 한 중간층 간부의 원망섞인 말이다.
현재 하이신의 채무위기에 대하여, 은행업무소조와 정부업무소조는 이미 개입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두 소조는 모두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위기처리의 주도권은 여전히 이씨가족의 수중에 있다. 그러나, 리스크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여러 은행이 3월부터, 하이신에서 대출을 회수하기로 한 것이 하이신강철 채무위기의 도화선이다. 다만 하이신강철은 민생은행과 연원이 있고, 여전히 하이신강철을 도와주고 있다.
하이신강철의 채무위기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씨가족이건, 원시현 내지 윈청시이건 현재까지 실행가능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하이신강철의 재생산도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다. 하이신강철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이다.
하이신강철에 채무위기가 도래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자, 허베이의 두 민영기업 더롱강철, 허베이징예집단은 각각 원시현으로 와서 살펴보고, 하이신강철을 인수하겠다고 말한다. 그중 허베이 더롱강철은 일찌기 3월 19일에 사람을 하이신의 본사로 보내어 상황을 파악하고, 하이신강철의 위탁경영을 통하여 공동으로 채무상환을 하는 것이다. 하이신강철의 내부인사에 따르면, 더롱과 하이신은 10억위안의 상호보증이 있다. 하이신강철이 더롱강철에 10억위안가량의 채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롱은 하이신의 위탁경영에 참가할 동력이 있다. 그러나, 어떤 주장에 따르면, 더롱의 사람들은 하이신을 2틀간 실사한 후, 하이신의 5,6호 고로의 유지보수비로 5-6억위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하이신의 거액채무를 고려해서, 더롱은 감히 인수하려고 하지 못한다고 한다.
3월 21일, 허베이징예집단의 총경리 리후이밍의 일행 4명이 더롱의 뒤를 이어 하이신집단의 본사로 찾아왔다. 하이신에 합작의향을 밝힌다. 그러나, 하이신집단의 고위층은 리후이밍 일행을 만나지 않는다. 집단행정부 경리 돤훼후이가 이들을 만나주었다. 확실히 징예집단의 호의를 하이신강철은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 그후 시장에서는 계속하여 하이신의 거액부채문제가 돌아서, 징예집단의 우려도 더욱 가중된다. 징에집단 부총재 루쩡위안은 매체에 이렇게 말한다. 구체적인 원인은 말할 수 없지만, 하이신과의 합작은 가능성이 이미 크지 않다.
하이신을 인수할 의향이 있던 두 기업은 모두 흥미를 잃었다. 그리하여 하이신의 구조조정방안은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것같다. 남은 길은 이제 하나 뿐이다. 파산. '하이신의 최대문제는 채무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지뢰가 얼마나 많이 매설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먼저 파산시키고, 채무를 분리시킨 다음, 기업을 인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모니타강철업종 애널리스트 진하이동의 말이다.
하이신강철은 이미 위기일발이지만, 하이신강철의 '하이신'상표는 여전히 중국의 '저명상표'이다. 고속선재와 나선무늬강은 모두 산시성의 브랜드제품이다. 산시 및 주변시장에서 하이신강철은 여전히 높은 시장점유율을 지니고 있다. 이는 하이신강철의 가치가 있는 점이다. 하이신강철의 대리상이며 채권자의 하나인 왕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리자오후이가 하이신강철에서 빼내간 돈을 다시 하이신에 넣을 수 있다면, 현지정부의 지지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이신강철은 아마도 위기를 넘길 수 잇을 것이고, 하이신의 채권자들도 일부 채권을 회수할 희망이 있다. 문제는 리자오후이가 그렇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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