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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

하이신(海鑫) 강철제국의 몰락

by 중은우시 2014. 4. 4.

 

글: 중국경영망

 

 

 

2003년, 산시(山西)의 민영강철기업인 하이신강철의 오너인 리하이창(李海倉)이 총을 맞고 죽었다. 스무살을 갓넘긴 아들 리자오후이(李兆會)가 동사장직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리자오후이가 승계한 후 10년동안, 하이신강철은 옛날에 약속했던, "죽어라 혁신하고, 극한에 도전하며, 부를 초월하여, 세계를 제패한다"는 선언을 실현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하이신강철의 30억위안 채무위기"에 관한 소식으로 이 기업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이신강철이 현재 보유한 6개의 고로는 모두 가동중지상태이고, 자금줄에 문제가 생겼을 뿐아니라, 공상은행은 이미 대출회수조치에 들어갔다. 증권일보의 보도는 소식통의 말을 빌어 하이신강철의 자금줄이 끊어져, 심각한 채무우기에 빠졌으며, 채무리스크금액은 이미 150억위안 내지 200억위안에 달한다고 하였다.

 

승계받은 후의 리자오후이는 빈번하게 자본시장에서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강철주업에 대하여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외부의 보도에 따르면, 갈등이 발행하여, 하이신강철의 리하이창시기의 '노신'들은 하나하나 물러났으며, 하이신강철은 이미 붕괴위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제일재경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씨집안은 이미 가족회의를 열어, 리자오후이의 다섯째 숙부인 리텐후(李天虎)가 다시 하이신을 경영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리텐후는 하이신강철의 총경리를 지냈지만, 리자오후이가 동사장이 된 후에 경영재능을 갖춘 이 실무형 경영자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하이신 내부인사에 따르면, 현재 민생은행, 더롱강철 그리고 리자오후이 본인은 이미 산시성정부에 간 적이 있다. 이번주말 혹은 다음 주에 정부가 앞장서서 은행과 회의를 개최할 것인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가 없다.

 

리자오후이는 어디로 갔는가?

 

리자오후이가 경영하는 하이신집단은 3월 10일부터 대출금을 기한을 넘기고도 상환하지 못했다. 어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미상황대출금이 30억위안을 넘었다고 한다. 하이신집단이 거액의 대출상환불능에 빠졌다는 보도가 나온 이래 사건의 주인공 리자오후이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화샤시보의 보도에 따르면, 3월 20일, 리자오후이의 회사비서실 담당직원은 현재 회사의 경영진이 이 일로 회의를 개최하여 연구하고 있으며, 일부 문제는 당분간 답변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단 결정의 내려지면 바로 대답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리자오후이는 지금 회사에 없고 구체적인 동향은 모른다고 했다.

 

이씨가족을 잘 아는 한 인사에 따르면,금년 전국양회기간동안, 현지의 공상은행행장은 일찌기 은행직원을 데리고 공장으로 찾아와서 대출금상환을 요구한 바 있다. 하이신그룹의 책임자중 한 명이고 리자오후이의 여동생인 리자오샤(李兆霞)는 어쩔 수 없이 직접 윈청(運城)시정부를 찾아가서 협의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출기한도래후 갱신해주는 것은 현지기업에서 드문 일이 아닌데, 은행의 행장이 직접 직원을 데리고 회사를 찾아가서 상환을 요구한 것은 최초의 일이라는 것이다. 하이신강철의 직원들이 말을 하는 과정에서 흘린 정보에 따르면, 이번에 기한도래한 대출금은 2억위안이라고 한다.

 

상기인사에 따르면 리자오샤는 일찌기 금년 전국양회기간동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이신그룹의 6개 고로중에서 3개는 여전히 가동되고 있고, 그중 1개는 캐파가 비교적 큰 연강로이며, 나머지 3개의 고로는 가동중지상태하고 하였다.

 

당해 인사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의 일반직원들 급여도 최근 3,4년간 계속 3개월가량 지연지급되는 상태였다고 한다.

 

리자오후이와 같이 민생은행의 주주였던 스위주(史玉柱)는 3월 20일 발표한 리자오후이를 성원하는 웨이보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은행이 40억대출금을 회수하여 그(하이신강철)의 유동성에 문제가 나타났다. 15%의 대출이자로 부담이 비교적 무겁게 되었다."

 

업계인사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이 철강무역업체로부터 대금을 적시에 회수하지 못한데다가 자체적인 캐시플로우에 문제가 있어서, 은행의 기한도래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하려 한 것이다. 이런 삼각채관계는 철강기업에서는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이다.

 

상하이의 한 유명한 철강연구기구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의 대출총한도는 30억위안을 훨씬 넘어선다. 이번에 가동중단된 일부 고로는 만기도래후 상환하지 못하여 차압되었기 때문이다. 하이신강철의 실제 생산량은 300만톤이지만, 생산캐파는 이보다 훨씬 높다.

 

6개의 고로는 모두 가동중단상태이다.

 

연철(煉鐵)공장의 한 직원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이 가진 6개의 고로는 모두 가동중단상태이다. "이전에 5개를 가동중단했는데, 마지막 1개의 고로(5호고로)도 3일전에 이미 가동중단시켰다."

 

제일재경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3월 22일 오전, 입구의 몇명 보안의 검사를 무사히 빠져나가 제일재경일보 기자는 하이신강철 2호문으로 공장지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전체 공장지구에는 이미 기계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내부도로에도 낡은 공장과 먼지가 가득 쌓인 설비만 보이고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제일재경일보의 기자는 옛공장부지의 연료공장에 도착했을 때, 이전에 광석이 산처럼 쌓여있던 곳은 지금 아무 것도 없는 공터로 남아 있었다. "3월 11일에는 공장에 원료가 조금 남아 있었다. 지금은 고로에서 회수된 약간의 광석 이외에는 원료가 없다." 하이신강철 원료배송실의 한 직원이 한 말이다. 하이신강철은 1주일전부터 원료를 반입한 적이 없다.

 

실제로, 하이신강철이 원료공급부족은 연초에 이미 시작되었다.

 

원시(聞喜)현 경무국의 한 책임자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은 작년에 6억달러의 수입(주로 철광석원료)를 완성했으나, 금년의 2달동안 수입한 수치는 제로이다. "원래 금년 3월에 정상단게에 들어선다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런 변화도 찾아볼 수 없다."

 

원료가 없다는 것은 가동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이신강철은 겨우 남아있는 일부 재고를 소진한 후, 마지막 고로까지도 가동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러 직원들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이 이미 가동중단되었으나, 직원들은 휴가를 받지도 않았고, 감원에 대한 어떤 소식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는 원래의 자리에서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다. 여전히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공장이 청소를 하고 있다."

 

이 광경은 하이신강철의 일관된 모습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원료배송실의 직원은 이렇게 회고한다. 예전에 각 생산부서에서는 24시간 사람이 있었다. "전체 공장지구의 기계는 모두 돌아갔고, 기계음이 시끄러워, 사람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하이신강철 에너지통제센터의 한 책임자도 이렇게 말한다. 하이신강철의 철광석은 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오는데, 일반적으로 칭다오항에서 직접 공장지구로 철로운송한다. 가장 활발할 때는 철광석을 싣고 오는 화차만도 36량에 이르렀다고 한다.

 

연간생산량 600만톤에 이르는 철강기업은 리하이창이 혼자서 만들었다. 2003년 그가 총을 맞아 죽은 후, 스무살남짓한 아들 리자오후이는 동사장의 직위를 넘겨받는다. 10년동안, 하이신강철은 여전히 산시 최대의 민영철강기업이었고, 그의 존재는 주변 마을을 부유하게 해주었을 뿐아니라, 전체 원시현 및 윈청시까지 혜택이 미쳤다.

 

그러나 부자 2명의 다른 점이라면, 리하이창은 철강기업에 열중한 실업가인데 반하여, '재벌2세'인 리자오후이는 투자자에 더욱 가까웠다. 리자오후이가 장기간 철강주업을 경시하고 여기에 업종의 상황이 급전직하하자, 하이신강철은 최근 들어 큰 충격을 받는다.

 

"하이신의 고로가 가동중단된 후, 시정부의 지도자들과 우리는 모두 조급해졌다." 상술한 원시현 경무국 책임자의 말이다. 하이신강철은 근 만명의 노동자가 있어, 일단 파산하면, 전체 현의 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족분화

 

1987년, 현임 하이신강철의 동사장인 라자오후이의 부친 리하이창은 하이신을 창업한다. 그는 코크스제련에서 시작한 이 민영기업을 계속 키워간다. '리하이창시대'의 원로직원들이 볼 때, 리하이창의 생전에 하이신강철의 생산량은 전국민영강철기업중 선두권이었다. 그때는 공장의 전성기이고, 현재는 직원들의 수가 당시보다는 최소한 1/3이 적다.

 

전환점은 2003년에 발생한다.

 

그때 리하이창은 총을 맞고 죽는다. 리하이창의 부친 리춘위안(李春元)의 결정으로 20살을 갓넘긴 리자오후이가 동사장의 직위를 물려받는다. 당시, 리하이창의 창업파트너 신춘하이(辛存海, 당시 부동사장), 리자오후이의 다섯째 숙부 리텐후(당시 총경리) 그리고 마찬가지로 해외유학경험이 있는 여섯째 숙부 리원제(李文杰)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리자오후이를 '보좌'하여 리하이창의 강철기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리텐후는 실업을 하는 사람이다. 아주 착실하고 재능도 있다. 사람들은 하이신의 후계자로 그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었다." 리텐후와 접촉한 적이 있는 현지관리도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외부의 보도에 따르면, 갈등이 발생하여 리자오후이의 부친대의 사람들은 그후 하나하나 물러났다. 그들은 회사를 떠나거나 주변화되었다.

 

그중 외부에서 가장 경영능력이 있다고 보았던 리텐후는 당시 하이신에서 하이텐(海天)시멘트로 분리해나가서 회사를 키웠고, 결국 지동(冀東)시멘트에 지분참여한다. 그외에 그는 윈청시에서 부동산을 경영했다. 그리고 리자오후이와 비교적 가깝게 지내던 리원제도 몇년전 하이신강철을 떠나서 다른 길을 찾는다. 그외에 리하이창시대의 천진파(陳金發)는 현재 비록 하이신강철의 상무부총경리 겸 당위서기를 맡고 있지만, 실제로는 2선으로 물러났다.

 

제일재경일보기자가 원청에서 취재하는 동안, 리춘위안이 사는 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옛날건물을 본떠 만든 집의 입구에는 이미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두 마리의 석사자가 지키고 있는 외에 주칠대문은 꼭 닫겨 있었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평소에 리춘위안 본인을 거의 보지 못하고, 설날이나 되어야 그가 돌아와서 이틀정도 지낸다고 한다.

 

하이신의 젊은 오너 리자오후이는 철강사업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자금을 빼내어 금융등 분야에 투자했다. 최근 들어, 그는 베이징, 상하이등지에 머무는 일이 많았고, 원시 현지의 정계,상계인사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현재 리자오후이는 하이신강철의 실제업무는 여동생인 리자오샤에게 넘겨서 처리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그녀를 '샤종(霞總)'이라고 존칭한다. 현재 하이신의 집행CEO이다. 매달 정기적으로 와서 우리와 회의를 하며 지시,분석같은 것을 한다." 하이신에너지통제센터의 사람이 하는 말이다.

 

공상은행이 직접 찾아와서 대출금을 상환독촉을 하다.

 

어떤 매체는 이렇게 보도했다. 하이신강철에 30억위안의 대출금을 만기에 상환하지 못하고, 현재 심각한 결손을 보이며, 직원급여를 몇 달씩 지연지급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의 실제채무는 30억위안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자금줄에 문제가 터져 공상은행은 심지어 직접 찾아와서 상환독촉을 하기도 했다. 그외에 금액은 불명확하지만 민간차입금도 있다.

 

중국기업보의 보도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은 일찌감치 은행업의 주의를 끌었다. 작년 연말, 현지은행관리감독기구는 일찌기 경고를 발한 적이 있다. 각 은행은 이미 여러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철강기업에 대출을 해주지 말라고. 그리고 거기에는 특별히 하이신강철이 언급되어 있었다.

 

윈청의 은행감독국은 작년12월에 <윈청강철기업 은행신용대출리스크현황에 대한 조사>를 내놓았는데, "각은행기구간에 상호 연동을 강화하여 특히 하이신강철집단유한공사와 같은 차입액이 거대하고, 여러 기구로부터 모두 대출을 받은 선두기업에 대하여는 기업정보를 상호교류하고, 대출한도를 통제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한도초과여신이 나타나거나, 자금소요를 감독할 수 없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

 

그외에 중국농업은행은 2년전에 현지분행에서 하이신에 대한 대출을 중단했다.

 

한 민영강철기업의 중간층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은행관계를 처리하는 직원의 수가 마케팅을 하는 직원수보다 훨씬 많아졌다.

 

은행의 경계심은 철강기업의 결손이 날로 심각해지는데서 나온다.

 

중국철강공업협회 부회장 겸 비서장인 장창푸(張長富)에 따르면, 금년 1월, 전국대중형철강기업의 결손은 11.34억위안으로 역사최고기록을 세웠다. 현재의 통계수치에 따르면, 금년2월의 결손폭은 근 20억위안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한다. 전2달간 전체 업종의 결손금이 30억위안을 넘어섰다.

 

허베이의 한 민영강철기업 오너인 신(辛)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일부 기업이 파산에 직면하면서, 은행은 기업에 대한 대출을 더욱 조이고 있으며, 여신한도도 축소하고 있다.

 

"원래의 연행여신한도는 지금 실현되지 않고 있다. 계속 심사하는 여신은 아마도 유산될 것이고, 이전에 만기도래한 대출금을 다시 연장해주는 기회도 더욱 적어진다. 은행은 선택적이고 적절하게 대출비율을 축소하고 있다. 이런 특별히 긴장된 상황은 2013년부터 시작되었다." 신여사의 말이다.

 

통계수치에 따르면, 강철업종의 과도한 발전을 우려하여, 여러 은행에서는 강철등 생산과잉업종에 대한 대출을 삭감하고 있다. 최대 삭감폭은 20%에 달한다.

 

신제국의 붕괴

 

하이신강철의 한 중간관리층이 보기에, 리자오후이는 최근 몇년간 확실히 철강을 주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90%의 정력을 다른 일에 쏟았다. "예를 들어, 환경보호, 에너지절약, 배출방지에 1000만위안을 투자하면 3달이면 회수할 수 있는데, 그는 1000만위안도 투자하지 않았다."

 

이와 비교하면, 리자오후이 본인은 자본시장에서 풍생수기(風生水起)했다; 2004년, 하이신은 6억위안을 투자하여 민생은행의 10대주주중 1명이 된다. 그리고 민생인수, 싱예(興業)증권, 산시증권등으로 금융판도를 확장한다. 하이신은 여러번 차이날코등 여러 상장기업의 주식을 사들였다.

 

그외에, 리자오후이는 베이징, 상하이에 허쟈(和嘉)투자, 후이위(惠宇)투자 및 상하이 하이보신후이(海博鑫惠)국제무역회사를 설립한다. 이 3개의 회사는 장기간 하이신강철의 주요 투자플랫폼이 된다. 그중 리자오샤는 장기간 상하이에 머물고, 상하이 하이보의 대주주이다.

 

십여년이 지나자, 서른을 갓넘긴 리자오후이는 하이신을 완전히 새로운 다원화제국으로 만든다. 현재 그 산하에는 5개 산업군이 있다. 아동사업부, 자금관리부, 철강사업부등이다. 그중 세계아동체험센터는 이미 전국에 7개를 만들었다. 그는 심지어 하이신의 공장장급간부의 가족에게 아이를 데리고 직접 가서 체험해보도록 하기도 했다.

 

지금, 하이신강철의 채무풍파로 리자오후이는 다시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번에 그는 버틸 수 없는 것같다. "현재 시장이 직면한 확녕을 보면 그가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도 이번 기회에 물러나려고 할 것이다." 에너지통제센터의 한 중간급간부의 말이다.

 

하이신의 여러 내부인사들이 보기에, 현재 어느 기업도 철강업을 주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이신은 현재 손해를 많이만 보지 않으면 된다. "주업에서 손해를 약간만 보면 된다. 철강의 수익이 좋으면 몇달만에 몇년치 손실을 벌어들일 수도 있다."

 

구조조정파국?

 

현지 통계국의 직원에 따르면, 원시현의 일정규모이상의 공업기업은 개략 32개이다. 철강업종이 좋을 때, 하이신강철의 고로는 모두 가동되었고, 생산액은 전체 현의 80%이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불경기이지만 생산액은 여전히 전체 현의 40-50%를 차지한다.

 

하이신강철이 기침을 하면, 전체 원시현이 감기에 걸린다.

 

제일재경일보 기자는 현지에서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현정부의 조치로 현재으 경신국, 정부판공실, 공안국등 부서는 이미 기업에 진주했고, 매일 파견인원이 하이신강철에서 당직을 서고 있다. "원시현정부의 고위층도 어떻게 구조조정할 것인지를 고려하고 있다. 다만 현재는 아직 자산통합, 평가의 단계이다."

 

더욱 상층에서도 하이신강철을 구하려는 행동이 이미 개시되었다. 3월 21일, 윈청시정부에서 사람을 산시성정부로 보내어, 의견을 협의했다. "현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안된다. 현지은행도 몇 개 되지 않는다. 하이신은 대부분 외지은행에서 차입했다."

 

이와 동시에, 하이신강철도 경쟁업체들도 서로 앞다투어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3월 21일, 허베이 징예(敬業)그룹의 총경리 리후이밍(李慧明)은 사람을 데리고 하이신강철을 찾아와서 합작을 희망했다.

 

허베이징예그룹은 스자좡(石家莊)에 있다. 생산캐파규모는 1000만톤으로 강철을 주업으로 하며, 화공, 호텔, 부동산, 무역등을 겸영하는 대형그룹이다. 그들은 규모를 늘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허베이성에서는 생산능력을 규제하고 있어, 지역을 넓혀서 구조조정하는 것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중 하나이다.

 

"우리는 하이신의 공장위치에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건재시장도 비교적 광활하다. 합작기회가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구조조정, 위탁관리, 자금투자, 대출상환등 어떤 방식이든 가능하다." 리후이밍이 말이다. 하이신강철의 문제는 주로 유동성부족이다. 만일 자금을 투입한다면, 분명 금방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신이 가동중단된 것은 생존의 기회이다. 만일 누군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한다면 그것은 더욱 좋다. 하이신의 발전에, 원시현에게도 좋은 길이다." 전술한 원시현 경무국의 인사가 한 말이다. 하이신강철이 흐리멍텅하게 살아남으면 세금납부도 줄어들 것이다. 차라리 구조조정을 해버리는 것이 낫다.

 

이전에 타이강(太鋼, 타이위안강철), 셔우강(首鋼, 셔어두강철)도 하이신강철에 추파를 보낸 바 있다. 그러나 가격이 맞지 않아서 결국 진행되지 못했다.

 

21세기경제보도에 따르면, 허베이징예집단이 하이신강철의 구조조정에 흥미를 나타내는 외에, 하이신강철의 중간급간부에 따르면 더롱(德龍)지주의 관련인원도 3월 20일경 하이신강철의 공장현장을 방문하여 상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그 중간급간부에 따르면, "더롱지주가 어느 정도 얘기가 되면 반드시 현장을 와바야 한다. 그들이 와서 보았다는 것은 이미 아주 투명해졌다. 더롱지주는 하이신강철의 위탁관리를 생각하고 있다."

 

하이신강철의 구조조정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허베이징예그룹과 더롱지주만이 아니다. 산시강철업계 인사에 다르면, "현재 산시성의 강철기업구조조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반발이 너무 크다. 그러나, 이 길은 반드시 가야 한다. 어떻게 갈 것이냐의 문제이다. 마침 이 계기가 생겼다. 이전에 타이강은 하이신을 인수하려 했지만, 반발이 너무 거세서 진전이 없었다."

 

원시현 경무국의 한 책임자에 따르면, 원시현정부도 합작,구조조정을 생각하고 있다. 경신국, 정부판공실, 공안국의 몇 개 부서는 매일 하이신으로 가서 당직을 서며, 기업에 진주했다.

 

전야금부관리: 하이신강철의 오너는 집안을 망친 인물이다.

 

텐센트 재경보도에 따르면, 철강업종이 계속하여 불경기인 상황하에서, 산시 최대의 민영강철기업인 하이신강철이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은 신속히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하이신그룹의 연원을 알고 있는 전야금부의 지도자가 보기에, 하이신의 위기는 강철시장의 불경기에서 온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부실로 일찌감치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하이신강철은 장기간 생산이 비정상적이었다. 현장도 아주 혼란스러웠다. 오너인 리자오후이는 기업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것을 자신의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이신강철의 경영이 부실한 것을 보고, 전국공상련 중소야금상회의 전문가팀의 전문가가 일찌기 그와연락하여 도와주려고 한 적이 있다. 이들 전문가들은 모두 전 야금부의 고관, 강철전문가이다 그러나 아예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지도자가 보기에, 리자오후이는 일찌기 해외유학을 하였지만, 그의 행위와 방식을 보면 수준이 높지 않고, 마음을 노는 데 더 많이 쓴다. 전형적인 재벌2세이다.

 

부친 리하이창과는 달리, 해외유학파인 리자오후이는 정부와 업게조직과는 그다지 교류가 없었다.

 

원시현 선전부관리는 매채의 취재에 응하여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현장이 일찌기 리자오후이를 만나고자 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리자오후이는 하이신을 넘겨받은 이후 매년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의 말을 전술한 전 야금부 고위층의 말과 일치한다.

 

부친이 생전에 교류를 많이 가졌던 전국공상련 산하의 중소야금상회에도 리자오후이는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리자오후니는 상하이, 베이징에 상주하고 원시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개인전용비행기가 있어서, 매번 원시현에 올 때면 비행기를 타고 윈청의 공항에 내린다. 그러므로, 외부인들이 그의 행적을 알기 어렵다. 정계,상계와의 관계가 냉막했을 뿐아니라, 하이신강철은 현지기업들과의 관계도 예전같지 않았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2005년이전, 하이신은 산시싼웨이(三維), 산시관뤼(關鋁)주식등 여러 상장기업과 관계가 밀접했고, 상호보증계약을 체결했었다. 서로 상대방의 기업에 담보를 제공해준 것이다. 그러나, 2005년이후 이런 협력은 거의 없어진다.

 

이런 변화에 대하여, 전술한 전 야금부 고위층이 보기에, 이 재벌이세는 마음을 사업경영에 두지 않고, 비행기를 사고, 여배우와 사귀는데 쏟았다. 창업의 어려움이나 돈을 벌기 어렵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패가자(敗家子)이다.

 

2012년 한 매채는 하이신이 소재한 원시현을 심층취재하였는데, 여러 직원들이 이렇게 말했다: "리자오후이는 최근 몇년간 거의 이름만 걸어놓았다. 그의 흥미는 근본적으로 강철에 있지 않다." 이것도 그 고위층의 견해를 방증해준다 할 것이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촨커우촌(川口村)의 촌민과 촌위원회 주임은 하이신을 얘기하자 얼굴색이 어두워진다. "우리는 요 몇년간 기본적으로 하이신과 교류하지 않고 있다."

 

철강사업은 날로 하락하는데, 하이신 산하의 일련의 자본운영은 외부에서 그가 '실업을 좋아하지 않고 투자를 좋아한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다만 또 다른 하이신 내부인사에 따르면, 이번 투자의 공로는 주로 리자오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친인 리하이창에 있다고 한다.

 

리자오후이가 자본시장에서 가장 잘했다고 인정받은 것은 2004년 11월, 하이신 산하의 하이신실업주식유한회사가 5.9억위안의 가격으로 중쩌(中色)주식이 보유한 민생은행 1.6만주를 인수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이신은 민생은행의 제10대주주가 된다.

 

2007년 후룬부호랭킹에서 리자오후이는 민생은행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재산이 85억위안을 넘어, 랭킹78위에 오른다. 재산은 2006년보다 11%가 급등한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젊은 산서최고부자가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리자오후이의 가장 성공한 투자이다. 하이신실업은 2007년 상반기에 고점을 찍을 대 민생은행주식 근 1억주를 팔아서, 10억위안이상을 현금화한다.

 

다만, 이 거래를 위한 여러가지 조치를 추적해보면, 그의 부친 리하이창이 생전에 준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리하이창은 생전에 전국공상련 부주석이고, 민생은행의 최초 '배경'도 공상련이다. 리하이창은 일찌기 민생은행 동사를 맡은 적이 있다. 그리고 하이신의 현재 가장 중요한 자산은 민생인수인데, 마찬가지로 공상련 '배경'을 지니고 있다.

 

민생인수는 보감회가 직접 관할하는 7개의 전국적인 보험회사중 한 개이다. 2002년 전국공상련이 앞장서서 설립한다. 당시 3대주주는 각각 완샹(萬向)재무유한공사, 중국판하이(泛海)지주집단유한공사 및 하이신강철이었다.

 

여러번의 지분변동을 거쳤지만, 하이신강철은 여전히 민생인수의 13.15%지분을 가지고 제4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